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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Mar 16. 2024

20억 저축 프로젝트

"Health is wealth."

회사에서 정리해고돼 돈걱정이 산더미라고 한지가 불과 얼마 전인데, '20억 저축 프로젝트'라니 드디어 이 '아줌마가 미쳤나' 싶으신가요? 아니면 '다단계'나 '비트코인'에 현혹된 게 아닌가 걱정되시나요? 걱정 붙들어 매세요. 아직 정신 멀쩡하고, '세상에 공짜 없다'는 믿음은 여전하니까요. 다만 최근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인 정희원 교수가 나온 유튜브를 봤어요. 정희원 교수님 말씀이 "노년기에 가장 많이 드는 지출이 의료비와 간병비이고, 근육을 잃어 노년에 24시간 간병을 받으면 그 비용이 현재 가치로 약 20억 상당에 해당한다"라고 하시네요. 


매달 나오는 실업급여로 근근이 살고 있는 제겐 '유레카'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재취직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65살에 은퇴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전에 20억을 모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미국의 세금은 어마무시하거든요. 세후 월급은 참 초라한 데다 제 통장은 월급이 잠깐 머물러가는 정류장 같은 곳이에요. 공과금, 생활비 등 미국은 정말 싼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 와중에 정희원 교수님의 말씀은 '가뭄의 단비' 같았어요. 제가 건강만 잘 관리하면 일 안 하고도 20억을 버는 거잖아요. 이건 '무조건 해야 하는 게임'이지요. 나름 한 추진력 하는 저는 바로 계획을 짜봤습니다. 잠은 잘 자고 있으니, 식단관리와 운동만 잘 챙기면 되겠더라고요. 저 참 세속적인 사람인가 봐요. 돈 벌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합니다.


'투자에도 공부가 필요하지'를 핑계 삼아 건강 관련, 특히 식단관리에 대한 유튜브를 엄청 많이 찾아봅니다. 대개 "당신은 탄수화물에 중독됐나", "간헐적 다이어트가 답이다"류의 비디오인데요. 굶는 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못할 것 같아 간헐적 다이어트는 패스하고 그나마 실현가능할 것 같은 당뇨인을 위한 식사법을 시작했습니다. 당뇨는 없지만 우선 굶지 않아도 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에요. 당이 적게 든 토마토, 브로콜리, 셀러리 같은 야채를 먼저 먹고, 달걀, 닭고기 등 단백질을 충분히 먹은 후 약간의 잡곡밥이나 잡곡빵 등 탄수화물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죠. 간식은 무가당 그릭 요구르트에 견과류와 베리류의 과일을 좀 넣어 먹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먹던 아이스크림, 과자 같은 가공식품도 자제하려 합니다. 솔직히 제 결심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패하면 그다음 날부터 다시 1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정기검진을 예약하며 병원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종합검진을 마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의료 시스템이 낙후돼 진료 예약을 바로 잡기 어렵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환자가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합니다. 다행히 정기검진은 예방치료에 해당돼 보험으로 다 커버가 되는 데다, 제가 회사를 안가 시간적 여유가 있다 보니 예상보다 빠르게 예약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1년 반 만에 제 주치의를 만났어요. '벌써 노화가 시작됐나 봐요. 잘 자도 피곤하고, 감기가 2-3달째 계속되며 최근엔 극도의 어지럼증까지 겪었어요'라고 온갖 걱정을 늘어놨습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피검사 결과도 다 정상이고 건강이 아주 좋으세요"라고 합니다. 제 귀는 정말 팔랑귀가 맞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위약(placebo)으로 작동했을까요? 그날 오후엔 컨디션도 최상이고, 나이도 한 10살은 젊어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정기검진 마치고 다음 날 유방암 검사(80살 될 때까지 매년 해야 한다는 비보를 접함)를 했고, 피검사를 한 번 더해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것으로 판명돼 주사를 앞으로 3차례 더 맞아야 합니다. 45살이 넘으면 대장내시경을 추천한다고 해, 가장 빠른 날인 5월 초로 예약했습니다.  


저는 운동을 싫어합니다. 걷는 건 좋아하는데, 저희 남편은 "걷는 건 운동이 아니라고" 하네요. 남편은 권위자의 말은 잘 받아들이는 편인데, 의사 선생님이 "소파에만 앉아있는 것보다는 걷는 게 좋고, 숨차게 빨리 걸으면 운동이 된다"라고 말했다고 전하니 바로 수긍을 합니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긴 어렵겠고 해서 도서관 방문을 1일 1회에서 2회로 늘렸습니다. 도서관만 하루 두 번 왕복해서 8000보는 나오더라고요. 계속 걷다가 어쩌다 한 번 20초쯤 잠깐 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저 아줌마는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니고 저게 뭐지?'라고 생각할 법한 아주 느린 속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얼마나 숨이 차던지요. 잠 자기 전 10-15분 정도 유튜브를 보며 줌바를 살랑살랑 따라 합니다. 1주일에 한 번씩 필라테스, 요가, 발레를 결합한 근육 운동인 바 메서드(bar method)를 다닙니다. 바 메서드 안 가는 날에는 덤벨로 운동을 합니다. 이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니 저는 근육이 정말 쉽게 붙는 체형이었던 거예요. 운동 얼마나 했다고 벌써 어깨가 딱 벌어지고 이두근육이 엄청 커져 벌크업이 됐어요. 몸무게는 계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데, 근육이 무겁다잖아요. 다 근육 무게일 거라고 제 스스로를 속이며 위안합니다. 겉모습도 몸무게도 살짝 신경은 쓰이지만, '근육이 자산'이라니 타협할 수밖에요. 


'20억 저축 프로젝트' 시작한 지 겨우 3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꽤 긍정적이에요. 운동도 하고, 햇빛도 많이 봐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고 기분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현금은 못 벌어도 건강을 저축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감도 많이 줄어들었어요. 여러분도 저랑 함께 '100세 시대를 대비한 근육 부자되기 프로젝트'를 해보시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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