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너를 그런 눈빛으로 보고 싶지 않아 (1)

틴더에서 만난 그녀는 아름다웠고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닉네임 ‘prey’의 그녀.

prey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얼굴 대신 가슴이 부각된 프로필 사진과 친해지면 FWB라는 소개문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prey가 뭐예요? 먹이? 배고프단 소리예요?

- ㅋㅋㅋㅋ 놀리는 거예요?

- ㅋㅋ진짜 몰라서 물어본 거예요.

- 먹이가 되고 싶다고요 ㅋㅋ 제 성적 취향!


첫마디에 성적 취향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훅 들어오는 그녀의 멘트는 내 오늘 밤을 특별하게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 저는 섹스할 때 목 졸리는 게 제일 좋아요. 

- 목을요? 거친 거 좋아하시나?

- 네. 진짜 죽지 않을 만큼, 핏대 설 만큼요.

- 오우... 멋지십니다.


틴더를 꽤나 했지만 이 정도 수위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맞장구만 치고 있었는데, 그녀도 내 대답에 무안했는지 내게 물었다. 


-저한테 더 궁금한 거 없어요?


자기 취향에 대해 더 물어주기를 바라는 눈치. 사실 이 밤에 틴더를 한다는 건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었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거나, 섹스를 할 누군가를 찾는 것. 그게 그녀가 나와 매칭을 한 이유였고, 내가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난 그녀의 프로필을 다시 한번 눌렀고, 사진 속 그녀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볼따구가 뜨거워지고, 아랫도리가 딱딱해져 가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난 그녀의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성적인 것 너머에 존재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가면무도회 속 그녀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본다는 묘한 흥분감. 내 취향은 이쪽이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지 성욕 때문일까? 

평소엔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몇 명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까?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궁금증과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녀는 톡방을 나갈 게 뻔하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섹스 토픽을 나눌 수도 없는 것이지 않는가.

뭐 사실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 끝에 나는 미숙한 척 그녀에게 배려를 부탁했다. 조금은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고 싶었다.


-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 잘 몰라요... 먹이님이 알려주세요!

- ㅋㅋㅋㅋ제 이름이 먹이예요?

- ㅋㅋㅋ그럼 뭐라 불러요?

- 해인. 제 본명이에요.


해인. 평범한 이름이었다. 


- 이렇게 본명 막 알려줘도 돼요?

- 뭐 어때요. 아는 사이도 아닌데. 

- 잊지 마요. 우리 1킬로 떨어진 사이라는 거.

- 그래서 그쪽은 이름이 뭔데요.

- 현웅이에요. 


내 이름을 말하고 나니,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되었다. 내가 틴더에서 야한 대화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란 게 밝혀지면 안 되는데...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해인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헉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왜요?

-혹시 김현웅???

-최현웅인데요.

-아 그럼 모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알고 나니 해인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1 킬로미터면 해인은 우리 동네 사람일 거다. 그렇다는 건 나와 언젠가 한 번 마주쳤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이 생각이 들자 해인이 더욱 궁금해졌다. 해인도 내게 흥미를 가져야 대화가 이어질 텐데, 어떻게 하면 흥미를 끌 수 있을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난 내 직업을 깐다. 


- 사실 저는 글을 쓰고 있어요. 

- 진짜요? 작가신가?

- 사실 이것도 영감좀 받을라고 깔았거든요.

- ㅋㅋㅋ 틴더가 영감이 돼요?


틴더가 영감이 되냐고? 해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목적이 섹스 파트너나 만드는 곳인 틴더에서 영감을 찾겠다니.  나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 그러게요ㅋㅋ 이제 지워야죠 뭐


 그런데 해인이 미끼를 던졌다. 


- 내가 영감이 되어줄 수도 있는데 ㅎㅎ

- 어떻게요?

- 뭐... 더 친해지면?

- 그럼 카톡 할래요? 뭔가 여기서 끝내기는 아쉬운 사람인데


나는 쫄리는 마음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해인이 던진 떡밥을 얼른 물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막상 톡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되어 손이 떨렸다.  해인에게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이 시간이 너무 허무할 것만 같았다.


- Haeeeiny99 카톡해요~


해인은 예상보다 쉽게 카톡 아이디를 내게 주었다. 난 서둘러 카카오톡에 들어가 친구설정을 누르고 [아이디로 친구 추가하기] 버튼을 눌렀다. Haein99를 입력하자 이름 대신 점 하나 찍혀있는 프로필이 내 친구목록에 추가되었다. 


해인의 프로필엔 3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한 장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해인의 전신사진, 한 장은 강아지 사진, 나머지 한 장은 친구들과 찍은 인생 네 컷 사진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해인이 오른쪽 여성임을 알 수 있었고, 처음 보는 해인의 얼굴을 제대로 살폈다. 해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해인이 다짜고짜 내게 보이스톡을 걸었고, 나는 급하게 목을 풀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ㅋㅋ목소리 왤케 깔아요?"



-2부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