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더에서 만난 그녀는 아름다웠고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닉네임 ‘prey’의 그녀.
prey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얼굴 대신 가슴이 부각된 프로필 사진과 친해지면 FWB라는 소개문구.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prey가 뭐예요? 먹이? 배고프단 소리예요?
- ㅋㅋㅋㅋ 놀리는 거예요?
- ㅋㅋ진짜 몰라서 물어본 거예요.
- 먹이가 되고 싶다고요 ㅋㅋ 제 성적 취향!
첫마디에 성적 취향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훅 들어오는 그녀의 멘트는 내 오늘 밤을 특별하게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 저는 섹스할 때 목 졸리는 게 제일 좋아요.
- 목을요? 거친 거 좋아하시나?
- 네. 진짜 죽지 않을 만큼, 핏대 설 만큼요.
- 오우... 멋지십니다.
틴더를 꽤나 했지만 이 정도 수위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맞장구만 치고 있었는데, 그녀도 내 대답에 무안했는지 내게 물었다.
-저한테 더 궁금한 거 없어요?
자기 취향에 대해 더 물어주기를 바라는 눈치. 사실 이 밤에 틴더를 한다는 건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었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거나, 섹스를 할 누군가를 찾는 것. 그게 그녀가 나와 매칭을 한 이유였고, 내가 그녀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난 그녀의 프로필을 다시 한번 눌렀고, 사진 속 그녀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볼따구가 뜨거워지고, 아랫도리가 딱딱해져 가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난 그녀의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성적인 것 너머에 존재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가면무도회 속 그녀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본다는 묘한 흥분감. 내 취향은 이쪽이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지 성욕 때문일까?
평소엔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몇 명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까?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궁금증과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녀는 톡방을 나갈 게 뻔하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섹스 토픽을 나눌 수도 없는 것이지 않는가.
뭐 사실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 끝에 나는 미숙한 척 그녀에게 배려를 부탁했다. 조금은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고 싶었다.
- 제가 이런 게 처음이라 잘 몰라요... 먹이님이 알려주세요!
- ㅋㅋㅋㅋ제 이름이 먹이예요?
- ㅋㅋㅋ그럼 뭐라 불러요?
- 해인. 제 본명이에요.
해인. 평범한 이름이었다.
- 이렇게 본명 막 알려줘도 돼요?
- 뭐 어때요. 아는 사이도 아닌데.
- 잊지 마요. 우리 1킬로 떨어진 사이라는 거.
- 그래서 그쪽은 이름이 뭔데요.
- 현웅이에요.
내 이름을 말하고 나니,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되었다. 내가 틴더에서 야한 대화나 하고 다니는 사람이란 게 밝혀지면 안 되는데...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해인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헉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왜요?
-혹시 김현웅???
-최현웅인데요.
-아 그럼 모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을 알고 나니 해인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1 킬로미터면 해인은 우리 동네 사람일 거다. 그렇다는 건 나와 언젠가 한 번 마주쳤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이 생각이 들자 해인이 더욱 궁금해졌다. 해인도 내게 흥미를 가져야 대화가 이어질 텐데, 어떻게 하면 흥미를 끌 수 있을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난 내 직업을 깐다.
- 사실 저는 글을 쓰고 있어요.
- 진짜요? 작가신가?
- 사실 이것도 영감좀 받을라고 깔았거든요.
- ㅋㅋㅋ 틴더가 영감이 돼요?
틴더가 영감이 되냐고? 해인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목적이 섹스 파트너나 만드는 곳인 틴더에서 영감을 찾겠다니. 나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 그러게요ㅋㅋ 이제 지워야죠 뭐
그런데 해인이 미끼를 던졌다.
- 내가 영감이 되어줄 수도 있는데 ㅎㅎ
- 어떻게요?
- 뭐... 더 친해지면?
- 그럼 카톡 할래요? 뭔가 여기서 끝내기는 아쉬운 사람인데
나는 쫄리는 마음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해인이 던진 떡밥을 얼른 물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막상 톡을 보내고 나니 긴장이 되어 손이 떨렸다. 해인에게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이 시간이 너무 허무할 것만 같았다.
- Haeeeiny99 카톡해요~
해인은 예상보다 쉽게 카톡 아이디를 내게 주었다. 난 서둘러 카카오톡에 들어가 친구설정을 누르고 [아이디로 친구 추가하기] 버튼을 눌렀다. Haein99를 입력하자 이름 대신 점 하나 찍혀있는 프로필이 내 친구목록에 추가되었다.
해인의 프로필엔 3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한 장은 자연을 배경으로 한 해인의 전신사진, 한 장은 강아지 사진, 나머지 한 장은 친구들과 찍은 인생 네 컷 사진이었다. 난 직감적으로 해인이 오른쪽 여성임을 알 수 있었고, 처음 보는 해인의 얼굴을 제대로 살폈다. 해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평범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는 인사말과 함께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그때, 해인이 다짜고짜 내게 보이스톡을 걸었고, 나는 급하게 목을 풀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ㅋㅋ목소리 왤케 깔아요?"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