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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그런 눈빛으로 보고 싶지 않아(3)

첫 만남

-오빠 나 진짜 안 건들 거야?

-야, 난 그런 성욕에 지배당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아? 


30분 뒤면 해인을 본다. 

새벽 내내 해인과 통화를 한 탓에 잠을 한숨도 못 잤지만, 피곤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핫식스를 들이부은 것처럼 정신이 또렷했다.

그런데, 머리에 왁스를 잘못 발랐다. 거울을 보니 완전 깻잎머리다. 나는 서둘러 머리를 감았다.


어젯밤 prey라고 자기를 소개했던 해인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엉엉 울며 통화를 했다. 그리고, 그런 해인을 지금 만나러 간다. 내가 어젯밤 틴더를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사람. 솔직히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 해인에게 카톡이 왔다.


-작가오빠 책 가져와! 궁금하니까!


난 서둘러 책장에 꽂힌 내 책을 가방에 넣고는 다시 머리를 만졌다. 이번엔 성공이다.


걸어서 20분. 해인의 동네는 산책할 때 많이 걷던 길이었지만, 오늘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애플워치에서 알림이 울렸다. 심박수가 높단다. 솔직히 쫄려 죽겠다.

근처에  도착했다고 카톡을 하자, 해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다 왔어. 네이비색 후드에 왕통바지 보여?"

"안 보이는데? 아, 저기 보인다."


저 멀리, 베이지색 니트에 통이 큰 청치마. 누가 봐도 해인이 서있었다. 내 생각만큼 이뻤고, 마음에 들었다. 해인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팔을 휘저으며 내게 뛰어왔다. 애플워치는 자꾸 울려대었다.


"우리 진짜 가까운 곳에 살았구나."

"그러게, 몇 번 마주쳤겠다."


해인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무 가까워서 해인의 바디워시 향이 느껴졌다.


"흠~"

"왜, 뭐, 뭔데."

"생각보다 괜찮은데?"


해인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자기 단골집이라며 조그마한 포차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다니면서 오다가다 봤던, 간판만 익숙한 곳이었다. 우린 구석테이블에 앉아 어묵탕에 소주를 시켰고, 술이 나오자마자 한잔을 들이켰고, 우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해인이 혼자 술을 들이켜고는 말했다.


"나 아까 걔한테 연락 왔다?"

"어제 그놈?"

"어, 오늘 뭐 하냐고."


그 얘기를 듣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 했는데?"

"답장 안 했지~ 오늘은 오빠랑 놀아야 되는데."


2년을 하루가 이기는 순간. 묘한 짜릿함이 있었다.


"근데, 처음 사귄 것도 아니면서 왜 첫사랑이야?"

"몰라, 그냥 그렇게 생각이 돼."


해인은 이 얘기는 그만하자며 주제를 돌렸고, 우리는 꽤나 진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주된 대회주제는 '연애'였다. 


"섹스는 쉬운데, 사람 마음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연애는 더 어렵고."

"그래서 난 연애 안 할라고. 어차피 인생은 혼자거든."

"오빠 내가 지켜본다. 평생 하나 안 하나."


해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맞다. 난 이래놓고 또 연애를 할 거다. 연애가 아니라면 연애 같은 만남을 하겠지. 그러니까 틴더를 깔았고, 오늘 해인을 만났겠지.


"외롭기는 한데, 내 감정을 내가 책임지기가 너무 어려워."


언제부턴가 ‘인생은 혼자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내 오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가 바람이 났을 때 알게 된 것 같다. 그때부터 난 다짐했지만, 연애를 시작하면 또 영원한 사랑을 바랐다. 변해가는 상대에를 보며 힘들어했고, 식어가는 내 감정에도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게 되었다. 감정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 말이다.


"책임 없는 관계가 있나?"


해인이 내 왼쪽 눈을 지그시 보았다. 그러더니 내 입술을 보았고, 이번에는 오른쪽 눈을 지그시 보았다. 해인의 눈빛이 나를 쫄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해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분홍빛이었다. 


"오빠를 오래 안 건 아니지만, 오빠가 너무 착해서 그래. 뭐... 그래서 내가 오늘 오빠 만난  것도 있지만."


해인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쩔 줄 몰라 술을 마셨는데, 그와중에도 자꾸 해인의 입술에 시선이 갔다. 그때 해인이 말했다. 


"책 준다며!"

"아 맞다."


나는 가방에서 내 이름이 적힌 책을 해인에게 주었다. 열심히 썼지만 잘 팔리지는 않았던, 내 20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해인은 책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한장 두장 읽기 시작했다. 


그때 해인이 내 책을 보고 울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해인에게 입을 맞추었고, 해인의 입술이 벌어졌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때, 해인이 


"여기서 이러면 안 돼.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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