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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그런 눈빛으로 보고 싶지 않아(4)

가로등 불빛에 해인의 입술이 반짝였다. 그래서 입을 맞추었다. 해인의 손이 내 등을 타고 내려왔고, 해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쌌다. 손길이 너무 간지러워 숨이 떨렸다. 그러자 해인이 입술을 떼고는 내게 물었다.


"안 건드릴 거라면서?"

"너가 날 내버려두지 않는데 어떡해."


난 다시 입을 맞추며 해인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고, 그걸 더 느끼고 싶어 꽉 움켜쥐었다. 움찔거리는 해인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났다. 


"좋아?"

"죽을 것 같아."


난 벅찬 숨을 가다듬으며 해인에게 말했다. 그러곤 해인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다시 해인의 입술에 다가갔다. 그런데, 이번엔 해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내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었다. 해인의 샴푸 냄새가 나를 더 흥분시켰다. 

해인을 꽉 껴안았다. 마치 연인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나를 설레게 했다. 해인은 그런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갤 돌려 한 빌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내가 해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해인이 내 손에 깍지를 꽉 끼고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우리 집이야."


빈손으로 가기는 좀 그래서, 편의점에 들러 과자 몇 개와 맥주 두 캔을 샀다. 그러곤 해인의 손을 꽉 잡고, 해인이 가리켰던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그 층의 센서등이 켜졌고, 그때마다 난 조금씩 술이 깨고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콘돔은 아까 책을 챙길 때 같이 챙겼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거니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해인이 302호 앞에 멈추어 도어락을 눌렀다, 나도 해인 뒤에 서서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문이 열려도 해인이 들어가기를 머뭇거렸다. 집이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런가 싶어 해인에게 물었다.


"밖에서 기다릴까?"

"아냐, 들어가자."


해인이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방안에서 새어 나오는 따듯한 공기와 시트러스 향기가 내 코에 기웃거렸다. 해인의 몸에서 나던 향기. 그게 내가 진짜 해인의 집에 왔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신발장에 들어서서, 난 해인의 손을 놓지 않고 한 손으로 낑낑대며 신발을 벗었다. 그러다 들고 있던 맥주가 든 봉지를 놓쳤고, 캔맥주가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놓고 벗지. 바보 같아."

"손이 따듯하길래."


그 말에 해인이 깔깔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나왔다.


우린 해인의 침대로 향했다. 겉옷을 벗으면서도,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침대에 다다르자, 해인이 침대에 걸터앉아 두 팔을 벌렸고, 나는 해인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해인이 내 옷을 머리 위로 잡아당겼고, 나도 해인의 니트를   벗기고는, 해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해인의 몸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내 볼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미치겠어."

"나도."


난 갓난아기가 된 것처럼 해인의 가슴을 주무르며 혀를 가져다 대었다. 해인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거칠게 숨소리를 내었다. 그러다가, 해인이 내 볼을 꽉 잡고는 물었다.


“오빠.”

“어.”

“나랑 하고 싶은 거지?”

"응."


갑자기 당연한 걸 묻나 싶어 해인을 슬쩍 보았다. 

그런데, 해인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워 몸을 일으켰다. 해인의 표정에서 보이는 감정을 알 수가 없었다. 해인은 눈물을 닦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말했다.


"미안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해인을 안아주었고, 해인은 내게 안겨 엉엉 울었다. 해인의 눈물이 내 가슴을 타고 흘렀다. 난 그렇게 가만히, 해인이 진정될 때까지, 해인의 등을 어루만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행히 해인의 눈물이 멈추었고, 해인은 민망하다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안심이 되어 해인 머리를 쓰다듬은 뒤, 널브러져 있는 해인의 옷을 가져와 입혀주었다. 그러곤 내 옷을 대충 입고는 겉옷을 챙기며 말했다.


"얼른 자. 피곤하겠다."

"같이 나가자. 집 앞까지만 데려다줄게."


해인도 주섬주섬 겉 옷을 입었다. 


집 앞까지만 데려다준다던 해인은 계속 나를 따라왔고, 우리는 손을 잡고 조용한 밤거리를 산책했다. 밤공기는 선선했고, 우린 서로를 알고난 뒤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오빤 날 맨날 울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내 말에 해인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좋은 사람이야. 오빠는."

"우리 안지 이틀 됐거든."

"오래 봐야 아나. 그냥 느껴지는 거지."

"들어가. 춥다.”

"저기 횡단보도까지만 데려다줄게."


횡단보도 앞에 선 우리는 파란불을 기다렸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해인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해인에게 또 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까 봤던 해인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너무 서두르고 서툴러서 실망을 한 걸까? 

아니면, 나와의 인연을 딱 여기까지만 하고 싶은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어제 해인에게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의 결말과, 나와의 이야기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횡단보도는 어느덧 파란불이 되었다.


"갈게."

"잘 가."


난 해인의 손을 놓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해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 옷소매를 잡으며 물었다.


"오빠."

"응?"

"나 또 안아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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