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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Dec 27. 2021

영화비평. 뺨 맞기와 뺨 때리기를, 극복하는 일

2021 영화. <노트르담>

노트르담 Notre dame , 2019 제작

프랑스 외 | 드라마 외 | 2021.12.22 개봉 | 15세이상 관람가 | 90분

감독 발레리 돈젤리


  프랑스 영화들 중 많은 영화들은, 삶의 감각을 탁월하게 일깨운다. 그 영화들이 삶의 어떤 감각을 어떻게 일깨우는가를 들여다보면, 삶에 대한 두려움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일깨운다, 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무엇을 통해 은유하는가를 들여다보면, 연애 감정을 통해서 은유한다, 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삶을 다루든 세계를 다루든 사랑스럽다, 라는 인상을, 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사랑하는 이가 되면 주체적으로 결단하며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새로운 것을 결단하는 것은 어쩌면 기존의 것과 결별하는 것이 되어 버리므로, 새로운 것을 결단하기보다는 기존의 것과 타협하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전하고 덜 힘들다.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은 기존의 것이 놓은 덫 안인 것만 같고, 내가 사는 세상에서 주체성은 허구적인 개념인 것처럼 느껴지는 섬뜩한 기분이 들어도, 새로운 것을 결단하기란 영 두렵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나를 주체적인 존재로 실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사이에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이 둘 중 하나를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그러다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릴 까봐 불안해한다. 결국 두려워하는 사람은 타인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그런 애매한, 그래서 산다고 할 수 없는 그런 곳에, 있게 된다.  


  <노트르담>은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사이, 라는 애매한 상황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는 모드(발레리 돈젤리, Valerie Donzelli)라는 여자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프랑스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바대로, 즉 사랑스럽게, 보여준다. 모드는 바깥에서 보면 늘 덤덤하고 조용하고 별 문제가 없는 여자지만, 안에서 보면 세 층위에서 엄청난 전쟁을 겪고 있는 여자이다.  


  모드가 벌이는 첫 번째 전쟁은, 애인과 사이가 틀어지면 자신을 찾아오는 전남편에게 느끼는 감정과 불쑥 나타난 옛 애인에게 느끼는 감정 사이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새로운 애인이 생긴 전 남편이 자기를 찾아오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녀는 불쑥 찾아오는 그를 습관처럼 받아준다.


  두 번째 전쟁은, 성품이 매우 좋지 않은 대표일지라도 그가 정기적으로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회사를 다닐 것인지, 아니면 독립해서 스스로 역량을 발휘해 볼 것인지, 라는 생각 사이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그녀는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독립적으로 일하기를 꿈꾸지만 언제나 종국엔 대표의 지시와 제안에 순응한다.


  세 번째 전쟁은, 그녀가 노트르담 성당 산책로 복원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가톨릭적이며 관념적이며 정신적인 이미지에 맞서 물리적이며 육체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그녀는 노트르담 성당 산책로 복원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독창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것대로 설계했지만, 가톨릭 교구와 파리 시민들은 그녀가 노트르담 성당의 정신을 훼손하고 성당을 흉물로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전쟁에서 그녀는, 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만나게 된 옛 애인과 새롭게 시작하기를, 뜻맞는 동료와 건축사무소를 차려 자율적으로 일하기를, 완전히 새로운 성당 산책로를, 꿈꾸지만 그 뜻을 표현하고 실현하기란 너무 두렵다.

 

  그런데, 모드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을, 영화는 ‘뺨 때리기’‘뺨 맞기’로 은유한다. 영화에는 행인에게 갑자기 뺨을 때리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모드를 비롯한 시민들은 그에게 갑자기 뺨을 맞을까봐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누군가에게 뺨을 맞는 일은 수치스럽기도 하다. 뺨을 때리는 일과 뺨을 맞는 일이 두렵고도 수치스러운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버리고 다른 무엇을 선택하는 일 역시 매우 두렵다. 기존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선택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지지받지 못할까봐 미리 부끄럽기도 하다.


  어느 날 모드는, 만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불시에 뺨을 때리는 그 남자를 마주한다. 두려워하며 모드는 헌병 둘에게 저 남자를 잡지 않고 뭐하느냐, 라고 따져 묻는다. 하지만 두 헌병이 별 일이 아니라고 하자, 모드는 두 헌병의 뺨을 연이어 때려본다. 당연히 모드는 헌병들에게 붙잡혀 간다.


  불시에 뺨을 맞는 일이 자신에게 닥쳤을 때에야말로, 그 일은, 그에게 비로소 별스러운 일이 된다. 불시에 누군가가 뺨을 맞는 일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되는 일, 그 다음 타겟은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직면하고서야, 모드에게 그 일은 별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또 모드에게 뺨을 맞고서야 헌병들에게도, 타인들이 불시에 뺨을 맞는 일이, 별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불시에 뺨을 맞는 일뺨을 때릴 때엔 때려야 하는 일이, 삶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수용적이고, 그러므로 결단하지 못하는, 모드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 일이 너무도 힘들다. 맞지도 못하겠고, 때리지도 못하겠는 상황이, 차라리 가장 큰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즉, '뺨을 때리는 일-전 남편과 완전히 결별하는 일과 직장을 그만두는 일', 그리고 '뺨을 맞는 일-노트르담 성당 복원에 대한 새로운 착상으로 인해 파리시민들에게 비난을 당하는 일'보다는, 항상 있어온 상황을 유지하는 일이 그녀에게는 그나마 안정감을 준다.  


  이 영화는, 모드가 던져진 여러 층위의 전쟁들을 사랑스러운 무드로 묘사함으로써,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형성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영화의 제목과 그녀가 맡았던 프로젝트는, 그녀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적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과정을 은유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여성이 우선 학습해야 하는 이상적인 정체성은, 아무래도 성모 마리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여성은 성모 마리아라는 이상과 자신의 실제 모습 사이에서 내밀한 전쟁을 벌인다. 그 전쟁에서 살아내며 자신을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뺨을 때리고, 누군가로부터 뺨을 맞는 일이 꼭 필요한데, 모드는 옛 관습을 의미하는 헌병과 노트르담 성당의 옛 모습과 전 남편의 뺨을 때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성모 마리아를 구시대적인 여성상으로 설정하고, 그러한 여성상을 은밀하게 비판하는 여성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성모 마리아는, 파리의 뺨 때리는 남자처럼, 누군가의 뺨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를 담은 말을 통해 율법학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정신의 뺨을 때리는 삶을 살도록,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기를 기도했다. 또 자신의 불가해한 삶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아들의 뺨을 때려도 견디며 살아냈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 ‘노트르담’은 파괴하고 해체해야 하는 고착된 옛 것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뺨을 때리고 뺨을 맞는 것을 허락하라, 라는 메시지의 은유적 상징물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맥락에서라면 <노트르담>은, 여성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삶의 감각이 죽어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뺨을 후려치는 영화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한 채 애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드뿐만이 아니라 모드의 전 남편과 전 애인 및 직장 동료 등 남자들로 대변되고 있다.


  아테네의 등에가 되어 불편한 질문들로 귀찮게 캐묻던 소크라테스를 많은 아테네 시민들이 불쾌해 했던 것처럼, 파리의 뺨 때리는 남자를 파리의 시민들은 불쾌해한다. 소크라테스가 논법적인 질문들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게 했다면, 파리의 뺨 때리는 남자는 불시에 뺨을 후려치는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육체와 각자에게 주어진 생을 발견하게 한다. 뺨 때리는 남자라는 장치를 통해 감독은, 삶의 감각이 죽은 사람의 각성을 기도(企圖)한 것이 아닐까.


  각성한 모드-감독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안하는가. 모드는 자신의 애매한 태도로 인해 다시 한 번 이별하게 된 남자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편지에서 그녀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한다. 다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다고. 기존 것과 결별하여 새로운 것을 결단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은, 성경의 유명한 구절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마르코 복음서, 9장 17절) 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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