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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Mar 02. 2023

영화비평. 돌처럼 굳은 계층과 물처럼 흐르는 불행

2019 영화. <기생충>

기생충 PARASITE, 2019 제작

한국 드라마 | 2019.05.30 개봉 | 15세이상 관람가 | 131

감독 봉준호



서론.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의성 있는 텍스트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은 신자유주의적 새 질서를 외치는 때가 아니라 그것을 반성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의해 우리 삶의 원리가 되어 버린 자유 경쟁의 원리가 약속한 행복은 공동체가 생산한 상품들과 축적한 부(富)에 비하면 신기루 같기만 하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성의 목소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켄 로치(Ken Loach)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와 <미안해요, 리키>(2019)에서 경쟁에서 낙오한 이웃의 이야기를 사실적인 방식으로 전해준다. 비슷한 시기에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켄 로치가 바라본 사회의 모습 중 다른 양상에 주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실체를 직시하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경쟁에 참여하는 우리의 비참한 모습을 마주하게 하고 경쟁에 관한 새로운 표상을 우리 의식에 제안한다. 경쟁은 우리의 잠재 능력을 최대로 개발하고 공동체에 생산적으로 기여하게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전체의 역동적인 발전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일으키는 것인데, <기생충>에서의 경쟁은 연대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절박하게 행해지며 상호 파괴라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즉,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공정한 기회와 자유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표상을 붕괴시키고, 이 이념과 체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현상학적으로 폭로함으로써 그 실체를 명료하게 밝혀낸다.     

      




  본론낙하하고고이고굳다 _ (), 냄새무계획      


  <기생충>의 내용 소개 기택(송강호) 가족은 전원 백수이다.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은 기택에게 막막함을 토로하지만, 기택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피자 가게로부터 하청받아 피자 상자를 합심하여 열심히 접는 것뿐이다. 피자 가게 직원에게 상자를 제대로 접지 않았다고 지적받아도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생업은 이것뿐인 탓에, 가장인 기택이 나서서 어린 직원을 달래며 그 일을 이어 나간다. 생계가 막막해도 기택 가족은 사이가 좋아 무슨 일이든 함께 한다. 그러던 중, 장남 기우(최우식)의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이 찾아와 기우(최우식)네에게 할아버지에게 받은 수석(水石)을 선물하면서 박동익 사장(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딸 다혜(정지소)가 받던 고액 과외 자리를 넘겨준다. 기우는 고정 수입을 벌 기회를 얻게 되고, 이후 동생 기정(박소담)에게 다혜의 동생 다송(정현준)의 미술 과외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기우와 기정은 아버지 기택에게 동익의 운전기사 자리를 연결하고, 기우와 기정과 기택은 연대하여 충숙에게 살림 도우미 자리를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기택 가족은 연대하여 기존에 일하던 동익의 기사와 살림 도우미 문광(이정은)이 해고당하게끔 한다. 이후, 동익 가족이 캠핑을 떠난 사이, 문광이 지하에 숨겨 두었던 남편 근세(박명훈)를 살피러 오고, 동익 가족의 집 전체를 즐기던 기택네는 그동안 동익네 지하에서 기생하던 문광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다. 하지만 기택네는 문광네를 돕지 않고 제거해야 할 경쟁 상대로 대한다. 두 가족은 충돌하고 결국 문광은 죽게 되며, 기택네는 당장 이를 은폐한다. 다송의 생일날, 기택네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생일파티를 준비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택은 서서히 동익과 연교의 시선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동안 자기 가족에게 나는 냄새를 문제 삼았던 동익 가족에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송의 생일에서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한창 생일파티가 진행될 때, 근세가 지하에서 올라와 아내를 죽인 충숙을 죽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근세도 다치게 된다. 그때 동익이 자동차 열쇠를 챙기려고 근세 옆에 갔다가 근세의 몸 냄새에 불쾌해하며 근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그 장면을 보고 기택은 충동적으로 동익을 살해한다. 이후, 근세를 죽이려다가 오히려 근세에게 돌로 공격당해 머리를 크게 다친 기우는 다치기 전보다 부(富)를 향한 허황된 꿈을 더 크게 꾸게 된다. 동익을 죽인 기택은 동익의 집 지하에 숨어들어 이전의 근세처럼 그 집에서 기생하며, 기우는 그 집이 잘 보이는 산에서 문득 아버지 기택이 보내는 모스 부호를 받게 되고, 그것을 해독하기 시작한다.     


  구별 당하다_사람들 간 실재하는 선()│ 박사장이 말하는 ‘선(線)’은 우리 사회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선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각을 통해 감별할 수 있다. 다음은 동익이 기택 가족에게 나는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가만 있어봐. 어디서 그 냄새가 나는데. ···(중략)··· 뭐야 그거... 아, 그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아, 아니다.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 그런 거랑 비슷해. 암튼 그 양반, 전반적인 말이랑 행동이,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도, 결국은 절대 선을 안 넘거든. 그건 좋아. 인정.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차 뒷자리로 졸라 넘어와. 냄새가... ···(중략)··· 암튼 말로 설명은 힘들고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그런 거랑 비슷해. ···(중략)···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 

(봉준호 외, 기생충 각본집, 플레인아카이브, 2020, 104~105쪽)


  그런데, 후각은 이전에 남부 백인들이 흑인을 자신들로부터 구별짓고 배제하고 차별하던 수단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Eric Arthur Blair, 1903~1950, 영국의 소설가·수필가·비평가)은 ···(중략)···“서양의 계급 구분의 비밀”은 구역질나는 네 마디, 바로 하층 계급의 냄새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의 코는 대단히 둔감한 한편, 지배층은 후감에 대한 예민함이 극에 달한다는 주장이 펼쳐졌다. 그러나 동물들이 냄새에 몹시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다.” (마크 스미스 지음, 김상훈 옮김, <감각의 역사>, 사람의무늬, 2007, 130쪽)


  <기생충>보다 한 해 전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린 북 Green Book>(피터 페럴리 감독)은 백인에게 차별당하는 흑인 소외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 돈 셜리는 남부로 내려갈수록 화장실을 따로 써야 하는 등 공간적으로 차별받는다. 이는 백인의 뿌리 깊은 선입견 때문인데, 백인은 흑인에게는 그들만의 특별한 냄새가 나며 그 냄새는 어떤 질병과 관련이 있으므로 공간적으로 구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흑인을 구별 짓고 통제하려는 수단에 불과한 선입견이긴 했다. 일 년 뒤, 봉준호 감독은 백인이 흑인을 구별 짓던 방식을 우리나라의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그대로 차용한다. 


  경쟁하다_경쟁자로서의 이웃│ <그린 북>에서 돈 셜리라는 흑인과 토니 발레롱가라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서로를 구별짓고 배제하다가 이후에 유대감을 느끼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것과 달리, <기생충>에서 기택네와 문광네는 경쟁하고 대치하기만 한다.


충숙 : 어쩔 거야 이제. (핸폰 꺼내며) 나는 전화를 할 수 밖에 읍써! 경찰한테! 

문광 : 언니 제발!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언니야. 

충숙 : 나 불우이웃 아니야! 

문광 : 저희는 불우해요!!! 집두 없구 돈두 없구, 빚만 있어요! 

(봉준호 외, 기생충 각본집, 플레인아카이브, 2020, 83~84쪽) 


  기택네는 문광네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면서도 문광네의 어려운 사정에 공감하기보다는 문광네를 제거해야 하는 경쟁 상대로만 대한다. 기택네와 문광네는 서로 유대감을 느끼고 연대하여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기보다는 서로를 무시하며 동익네를 동경할 뿐이다. 즉 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혹은 경쟁의 대상만 존재할 뿐이다.       


  낙오 당하다_대안으로서의 무계획│ 기택네는 문광네를 제거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오는 사다리를 걷어찼지만, 그들도 행복하진 않다. 폭우로 인해 큰 수해를 입게 되고, 동익의 집에서 짧게 맛본 만족스러운 생활로부터 오는 행복감 때문에 현실의 비참함은 더욱 짙게 밀려온다. 홍수 피해로 기택네 동네 사람들은 모두 실내체육관으로 대피하는데, 그날 밤 다음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 기우에게 기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 여기도 봐. 이 많은 사람들이 오늘 떼거지로 체육관에서 잡시다, 계획을 했었겠냐? 그런데 봐. 지금 마룻바닥에서 쳐 자고 있잖아. 우리도 그렇고. 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아무 상관이 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씨발 다 상관없다, 이 말이지. 알겠어?” 

(봉준호 외, 기생충 각본집, 플레인아카이브, 2020, 114~115쪽) 


  기택에 따르면 계획 중 가장 효용이 큰 계획은 무계획이다. 기택이 무계획론의 교훈을 아들에게 전한 것은 낙오자들의 삶의 원리, 즉 계획을 짜고 경쟁해도 절대 보상이 없다는 삶의 원리를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기택은 오랜만에 무언가를 소망하고 계획하고 실천했지만, 현실은 더 비참해졌고 그 과정에서 사회 속 자기 위치만을 처절하게 직시해야 했다. 이렇게 <기생충>은 모든 인물이 실패의 서사 구조에 놓여 있다. 동익은 충숙에 의해 죽은 문광을 위한 근세의 복수극에 휘말리는 과정에서 기택에 의해 살해되고, 근세와 기정 역시 죽게 되며, 기우는 머리를 크게 다쳐 망상에 사로잡히며, 기택은 가족과 함께 살던 지하 방보다 더욱 깊은 지하로 숨어들어 살게 된다. 기택은 그곳에서 이전처럼 가족과 함께 소박한 노동을 하면서 생활할 수 없게 되었고, 집주인 몰래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훔쳐 먹으며 생존해야 했다. 


  낙하하다_돌처럼 굳은 계층과 물처럼 흐르는 불행│ <기생충>에서 인물들 외에 눈에 띄는 것은 민혁이가 가져온 수석과 쏟아지는 비이다. 돌과 물은 아래로 운동한다. 특히, 돌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으며, 물은 흐르지만 계속하여 낮은 곳으로 흐른다. 민혁이가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며 수석을 가지고 왔을 때 기택은 그것을 감탄하며 감상하면서 시의적절하다고 말한다. 감독은 이 돌을 통해 고착화된, 그래서 이동하지 않는, 오늘날의 부(富)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경쟁을 통해 모두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꿈꾸지만, 민혁이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조건처럼 부(富)는 폐쇄적으로만 전승되므로, 오늘날 사람들은 계층이동의 꿈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독은 돌을 통해 상징한 것이 아닐까. 또, 폭우가 쏟아진 날, 빗물은 기택네 반지하 집으로 밀려 들어와 큰 피해를 입힌 반면, 동익네에겐 놀이 혹은 감상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즉, 영화에서 돌은 소수 집단에 고착된 부(富)를 의미하며, 물은 일방향적으로 유전하는 불행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의심하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야기하듯, 오늘날 요청되어야 하는 일은, 경쟁과 공정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기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 공적 담론의 주제가 되는 일일 것이다. 마이클 샌델에 따르면 공정한 경쟁과 그로 인한 보상에 대한 믿음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믿음은 행운과 불운의 작용을 배제함으로써 승리자는 낙오자에게 냉혹한 태도를 취하고 승리의 원인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다는 오만한 마음을 품게 되고, 패배자는 열패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며,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은 이웃 공동체에 대한 연대감을 상실하며, 사회 복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생충>을 보면 기택(송강호)의 자식들과 박동익(이선균)의 자식들은 태생적 조건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지위 상승의 꿈을 향한 다른 출발선에 있다. 한편, 기택네는 아들 기우(최우식)의 취업으로 운 좋게 연교(조여정)가 믿는 “믿음의 벨트”로 연결된 ‘지인 추천’이라는 행운을 이용하여 나머지 가족 모두가 취업에 성공한다. 또, 문광(이정은)의 남편인 근세(박명훈)는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대만 카스테라 본점이 부도를 당하는 불운을 겪는 바람에 아무런 잘못 없이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즉, 인간의 조건 자체가 선천적·후천적 운의 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자유 경쟁은 애초에 공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기생충>을 통해 감독은, 공정한 기회와 자유로운 경쟁의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믿음과 그로 인한 사회적 지위 상승의 꿈의 실체를 폭로한다. 이렇게 이제껏 지녀온 믿음의 실체를 마주함으로써, 관객은 영화를 본 후 현실의 생경한 인상과 불쾌감을 얻는다. 또, 그들의 이야기가 상호 파괴되는 실패의 서사 구조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대안으로서 연대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이러한 이질적인 반응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게 한다. 

  이를 통해 감독이 겨냥한 것은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마련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당연한 것, 그리고 좋은 것으로 수용해오던 것을 낯설고 충격적으로 마주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새롭게 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은 예술 작품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기생충>은 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는 전 지구적인 문제를 지역적인 방식으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한국인의 방식으로 체험하게 하였다. 그래서 세계 관객들은 주제 의식에 공감하면서도 낯선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또, <기생충>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 다만, 관객이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을 뿐이다. 차라리 관객을 혼란하게 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혼란할 때야말로 기존의 선입견과 정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질문할 수 있는 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생충>은 관객에게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믿음을 향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예술 장르를 막론하고 좋은 작품이란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한다면, <기생충> 이 전 세계에서 호평받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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