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 게임
어릴 적 생각이 났다. 골목길에서 늦도록 ‘무궁화 꽃이 피었’다 지고, 다시 피던 그 밤.
내가 살던 동네의 언니 오빠 누구누구가 썸을 타는지 알 정도로 무궁화 꽃은 느리게 피거나 때론 빠르게 피었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으면 술래에서 구해 주기 위해 일부러 빠르게 간다거나, 느리게 가곤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순박하게들 놀았다.
하지만 ‘오징어 가이상’이라 불린 오징어 게임은 한 발 뛰기로 하다가 균형을 잃어 넘어지거나 옷을 잡아당겨 넘어지는 등 운동신경 부족한 내가 하기엔 역부족인 게임이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차라리 해 질 무렵에 시작해서 초저녁 별이 뜨기까지 하던 무궁화 꽃을 피우는 일에 더 열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라 해서 반나절을 투자해 모두 봤다.
잘생긴 공유가 등장해 딱지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설마 진짜 게임에서 사람이 죽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누워 있다가 점점 몸을 일으켰다. 무궁화 꽃이 피는 속도와 사람이 죽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평소 피가 흥건한 영화는 즐기지 않는 편이라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공포심은 아니었던 것 같고 의외의 내용 전개에 대한 낯설음이랄까. 호기심에 이끌려 계속 보기로 했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참여했던 이들 중 게임을 포기하겠다는 참여자가 나왔다. 당연하다. 그런 게임을 계속할 순 없으리라 생각했다. 과반수가 찬성해서 게임은 무산됐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곳이 더 지옥이었다. 그들은 빚지고, 쫓기고 내몰린 자들이다. 갈 곳이 없다. 다시 돌아간다.
침실의 구조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닮았다. 콜로세움은 검투사와 맹수의 전투 경기가 벌어졌던 원형경기장이다. 그곳이 그들의 침실이다. 456개의 침대가 있다. 침실의 역사를 보면 개인 침대를 갖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커다란 침대에 5~6명을 수용했고 근대 이후 ‘개인’의 의식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공동 침실을 꺼렸다. 사적인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갖고 싶었던 거다.
페레크는 “침대는 탁월한 개인 공간이요, 몸의 기초적인 공간으로 빚투성이의 남자도 가질 권리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침대 하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라며 철제 침대의 보급에 대해 침대의 승리라 칭했다. 사적 공간의 확보가 그토록 중요한 사건이었던 거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다시 등장했다. 거대한 공동 침실이.
456명이 모두 한 침실을 쓰고 있다. 그들은 각각의 침대만을 받았다. 그들은 번호로 불린다. 자신의 번호에 하나의 잠자는 공간을 얻었을 뿐이며 감시와 통제의 체계로 들어간다. 총 여섯 개의 게임에 참여하게 되며 모두 어릴 때 한 번쯤을 해봤을 게임이다. 문제는 게임에서 탈락하면 실제로 ‘죽는다’는 것. 그들은 게임에 참여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상시 감시체제에 노출되어 있다.
방이 없다는 건 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방을 쓰는 타인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며 더구나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에서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것은 경쟁과 견제를 넘어 폭력으로 치달을 것이란 것쯤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모여 있는 것이 곧 '위험'이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도 그랬다. 어둠이 오면 서로를 죽인다. 죽일 수만 있다면, 많이 죽일수록 경쟁자는 줄어들고 상금은 커진다. 폭력이 난무하고 어둠 속에서 서로의 공격을 두려워하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침번을 선다.
이토록 폭력적인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의 방’이며 익명성을 보장하는 공간에 불까지 꺼졌다. 어쩔 것인가.
죽이거나 죽거나다.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공포의 밤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개의 게임을 치르며 많은 번호가 사라졌고,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게임을 눈앞에 두고 세 명이 남는다. 그들에겐 저녁 만찬 후에 살며시 놓고 간 스테이크 칼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그 밤, 누군가는 죽게 될 것이다. 부상당했던 탈북자 '새벽’이 죽는다.
이젠 둘이다. 한동네에서 어린 시절 오징어 게임을 하며 놀던 사이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
456억을 눈앞에 둔 게임은 마지막 순간, ‘나 안 해’라는 주인공의 낮은 목소리로 무산될 뻔 하지만,
결국 한 명의 승자만이 남았다.
게임은 끝났고, 456억을 받은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운수 좋은 날’이란 소제목처럼 평생 쓰고도, 무엇에 쓸까 고민할만한 456억을 번 날, 어머니가 죽었다. 그러나 456억을 가진 주인공은 만원을 빌려 쓰는 무기력한 삶을 산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456억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쥐었지만, 456명이 함께 했던 공동 침실에서 일어났던 일을 잊게 하진 못한 모양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측해 보건대, 다음 편에서 주인공은 아마도 ◯△□의 정체를 밝히려 다시 게임을 시작할 생각인듯하다.
456명이 함께 한 공동 침실, ‘오징어 게임’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