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방: 지옥은 타인들이야

<닫힌 방>, 사르트르, 민음사, 2017

by 아침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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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방은 사르트르의 희곡이다.

시작은 이렇다.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상상하는 지옥의 모습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고문도 없고, 펄펄 끓는 유황불도 없다.

방 하나만 덜렁 있다.

조건은 그들이 그 방에 영원히 같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사적 공간- 없다.

서로의 과거와 생각-그대로 드러난다.

응시하는 시선에 포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사형집행인이 된다.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도 없다.

물론 죽을 수도 없다. 이미 죽었으니.

이곳이 지옥이다.


그들은 왜 지옥에 오게 된 걸까?

에스텔은 자신이 왜 지옥에 왔는지 모르겠다면서 고상을 떤다.

잠시 후 독자는 알게 된다.

그녀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호수에 내던진다.

그 결과 정부도 자살하고 그녀도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식 조차 없는 죄인이다.

가르생은 어떤가.

그는 제법 이성적인 인물인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도 사실은 아내를 학대하고 평화주의적 신문 운영을 핑계로 전쟁이 발발하자, 멕시코로 도망가다가 잡혀 총살당한 인물이다.

이네스 또한 마찬가지다.

동성애를 자처하며 에스텔에게 은근히 구애한다.

그녀의 거울이 되어주겠노라며.

그녀는 사촌 남동생과 함께 살며 남동생의 여자를 동성애의 상대로 삼아 괴롭힌다.

결국 사촌은 전차에 치여 죽고 그의 여자를 자살로 몰고 가 함께 죽은 인물이다.

이렇듯 닫힌 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허위와 위선, 기만과 위장들이 뒤섞여 진정성이 없다. 예측 또한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이런 이중적 성격이 드러나는 과정이 이 희곡의 중심을 이룬다. 바로 2:1로 진행되는 사형집행인과 희생자 놀이다.

이들은 적대적 관계 속에 2대 1로 번갈아 짝을 이루면서 서로를 공격한다.

이네스와 가르생은 에스텔을 궁지에 몰아 죄를 실토하게 한다.

가르생과 에스텔은 이네스 앞에서 도발적이고 작위적인 사랑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 닫힌 방의 문이 갑자기 열렸을 때, 에스텔은 가르생에게 제안한다.

이네스를 같이 내던져버리자고.

이에 반대하는 가르생, 그는 이네스가 자기와 같은 부류라고 말한다.

이들의 관계는 이렇듯 이합집산을 이룬다. 이들을 보며 독자가 발견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 따위는 없는 그들의 작위적 관계이다.

“(…)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회…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가르생의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웃는다.

그녀, 이네스가 웃는다.

그녀들, 이네스와 에스텔이 웃는다.

가르생이 웃는다.

그리고 그들은 웃기를 멈춘다.

가르생의 마지막 대사다.

“좋아, 계속하지.”

사르트르의 ‘닫힌 방’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아 있는 우리는?

“지옥은 타인이다: 타인의 시선”

사르트르에 따르면 이 말은 말 그대로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망가지면 타인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인간에 대해 혐오의 의미 같은 건 없다.

실존하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본질을 규정해나가며, 타인의 시선이 나를 규정하기도 한다. 타자가 나를 객체화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시선으로 타자를 객체화한다.

타자를 바라본다.

타자도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타인이 지옥이 된다.

그렇게 닫힌 방은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는 벗어날 ‘자유’가 있다.

그러니 이 모든 고통과 싸워 자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