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양탄자라 부른 남자의 방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예담, 2001

by 아침놀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나이 들고 지친 남자다. 그는 건물 꼭대기 층에 산다. 그의 방에는 의자가 둘, 책상이 하나, 양탄자, 침대, 옷장 하나가 있다.

작은 책상 위에는 자명종 시계가, 그 곁에는 오래된 신문과 사진첩이 있다.

벽에는 거울 하나와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이 나이 많은 남자는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산책을 하고

이웃과 몇 마디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달라지고 싶었다. 달라지기 위해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한다.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부르고 침대를 침대라고 하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모든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불렀다.

침대는 사진이라고 불렀다.

책상은 양탄자라고 불렀다.

의자는 시계라고 불렀고, 신문은 침대, 거울은 의자라고 불렀다.

남자는 이 일에 재미가 들어 온종일 연습해 새 단어를 암기했다. 그리고 노트에 적어가며 새로운 단어를 만들기에 몰두했다. 이제 모든 것의 이름이 달라졌다. 그 자신도 이제는 남자가 아니라 이 되었다.

너무나 많은 이름을 바꾸다 보니 그는 이제 원래의 명칭을 잊어버렸다.

그는 이제 완전히 혼자만 알고 있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했고, 더 이상 인사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정한 언어 체계로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말.

완전히 고립된 한 남자의 서글픈 방이었다.




말에 대해 우리는 생각한다.

말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의 의미가 원래부터 존재했다기보다는 우리가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체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사고가 아니듯이 소통이 불가한 말은, 말이 아니라고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마음이 서러워 언어를 잃어버린 것 같은 이 남자를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를 위한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안아주기

나호열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를, 책상을, 모르는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이

물컹하게 가슴과 가슴이 맞닿은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대, 어둠을 안아 보았는가

슬픔도 안으면 따뜻하다

마음도 안으면 따뜻하다

가슴이 없다면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타인의 슬픔>, 연인 M&B, 2008


나이 많은 남자, 지친 남자, 온통 잿빛의 옷을 입고, 온종일 방 안에서 단어를 바꾸는 남자.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안아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