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중 도도한 생활, 김애란, 문학과 지성사, 2007
<도도한 생활>의 주인공 ‘나’의 엄마는 만두집을 한다. 가게이면서 살림집인 그 공간에 엄마는 피아노를 들여놓는다. 나는 그 공간에서 이따금 피아노를 쳤고, 엄마는 그 모습을 좋아했다. 엄마에게 피아노는 아마도 지키고 싶은 ‘도도함’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가끔 유행가를 연주하는 정도였고, 고등학교에 간 후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고3 겨울 방학, 나의 집은 아빠가 선 빚보증 때문에 망했다. 그즈음 나는 서울권 대학의 컴퓨터 학과에 합격하고, 피아노와 함께 언니의 반 지하 방에 도착한다. 피아노를 못마땅해하는 주인집에는 피아노는 절대로 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는 피아노가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 뜯어낸 달력으로 막고, 마른걸레로 닦았지만 반 지하방의 습기와 곰팡이를 막아내진 못했다. 그러던 중 피아노가 이대로 망가지면 억울할 것 같아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도--.”
안 괜찮았다. 집주인은 귀도 밝았다.
‘도’ 음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쿵, 네 번, 주먹으로 두드렸다.
현관문을 여니, 주인집 가족이 외식이라도 갔다 오는지 나란히 서 있었다.
“학생 좀 전에 피아노 쳤어?”
“아닌데요.”
“친 거 같은데….”
주인 남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았지만, ‘나’가 곰팡이 얘기를 꺼내자 ‘지하는 원래 그렇다’며 2층으로 올라 가버렸다.
저녁에 폭우가 내렸다.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했고, 나는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비가 흘러들고 있었다. 걸레로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나는 물을 퍼냈다, 걸레로 닦고, 짜내고 훔쳐내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빗물은 끊임없이 고였다. 언니는 오지 않았고, 주인집에 얘기하기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빗물을 퍼내던 중 아빠가 전화해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다. 그 뒤 낯선 사내가 찾아오는데 언니의 이름을 부른다. 언니의 예전 애인이다. 술에 취한 그가 현관에 엎어져 있어서
물을 퍼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를 질질 끌어 피아노 의자에 끌어다 놓았다. 정신없이 물을 퍼내고 있었는데 피아노가 물에 잠겨가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물에 잠긴 페달을 밟으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언니의 옛날 애인은 무슨 꿈을 꾸는지 웃고 있다.
도도한 생활을 지켜나가려던 ‘나’의 도도할 수 없는 반지하 방이었다.
반지하 방. 통풍과 채광의 기회가 적은 방이다. 대신 상습적인 습기와 곰팡이와 함께 살아야 하고, 배수 또한 잘 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반지하방의 주인들은 반 지하이니 원래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아저씨처럼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원래 그런'방인 것이다. 피아노가 못마땅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반지하방에 피아노가 무슨 소용이냐는 의미일 것이고 행여나 피아노를 치는 소리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았던 거다.
'반지하 방'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규정이 정해진다. 습기나 곰팡이, 통풍과 채광에 대한 이의를 재기하지 말 것. 피아노와 같은 도도한 취미생활도 해서는 안 됨. 원래 그런 방이니까.
'나'의 고단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폭우가 내려 물에 잠겨가는 방에서 물을 퍼내는데 언니는 돌아오지 않고, 아버지에게는 돈이 필요하다는 전화가 오고, 언니의 옛 얘인이 술에 취해 들어온다. 도움 될 것이 없다.
나는 바란다.
습기와 곰팡이가 피아노의 도도한 음들을 삼키지 않도록 피아노를 계속 치기 바란다.
반 지하방의 곰팡이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언니는 빨리 돌아오고, 술에 취한 언니의 옛 애인은 일어나 ‘나’와 함께 물이라도 퍼내기 바란다.
주인집 아저씨는 헐레벌떡 내려와 물을 퍼내 주고, 새는 곳을 막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아빠는 제발, 빚보증 서지 말고, ‘나’에게 전화해 돈 얘기는 꺼내지도 말기를 바란다.
스무 살 ‘나’의 도도한 생활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