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니콜라이 고골, 문학동네, 2011
<외투>는 러시아 작가 고골(1809-1852)의 소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고골 이후 러시아 작가들이 고골이 창조한 주인공 ‘작은 인간’ 아카키에 대한 연민과 동정, 사회도덕적 풍자와 사물과 인간에 대한 세밀한 묘사 등에 영향을 받았음을 뜻한다.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
그를 만나러 페테르부르크로 가보자.
그는 9급 문관으로 서류를 베껴 쓰는 일을 한다. 크게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일이고, 그다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직무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애정을 가지고 일했다. 그러나 페테르부르크에는 강력한 적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 아닌 북쪽의 한파였다. 페테르부르크에 살기 위해서 ‘외투’는 필수품이었고 비쌌다. 우리의 주인공 아카키는 가난했고, 외투를 산 지는 너무 오래되어 낡을 대로 낡아 동료들은 ‘실내복’이라 놀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나마도 이젠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여러 번의 수선을 맡아주었던 페트로비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고칠 수 없어요. 옷이 닳을 대로 닳았어요!”
결국 가엾은 주인공 아카키는 새 외투를 맞춘다.
그는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적어도 일 년 동안 일상의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를 끊고, 촛불도 켜지 않고, 길을 걸을 때도 구두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발끝으로 돌과 관석을 밟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속옷마저 오래 입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세탁 횟수를 줄이기 위해 집에 오면 속옷 대신 실내복만 걸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엔 그런 절약하는 생활에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지만, 어쩐지 차츰 익숙해졌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저녁을 굶는 것은 습관이 되었고, 그 대신 앞으로 입게 될 외투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배고픔을 잊었다. 그러면서 존재 자체가 완전해짐을 느꼈고, 자신의 삶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은 든든한 반려자마저 얻은 느낌이었다. 그 인생의 반려는 다름 아닌 두툼하게 솜을 두고, 닳지 않는 튼튼한 안감을 댄 바로 그 외투였다. 새 외투에 대한 욕망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새 외투를 입고 관청에 출근한 날, 그의 새 외투를 기념하기 위해 부유한 동료가 대신 열어준 파타에 들렸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을 느꼈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나 우리의 아카키에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으니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페테르부르크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선 외투는 필수품이었다. 더구나 새 외투임 에랴. 강도의 눈에 번쩍 뜨일 것이 뻔했다. 절망한 우리의 주인공 아카키. 우선 경찰서장을 찾아가지만 소용이 없다. 관료주의가 강했던 그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아카키 따위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을 것. 주변의 충고를 듣고 이번엔 고관을 찾아가 외투를 찾아달라고 호소하지만 심한 면박만 당하고 돌아온다.
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길을 잃고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을 걸어갔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흔히 그렇듯 바람은 사방에서 모든 골목에서 그를 향해 불어닥쳤다. 순식간에 그의 편도선이 부어올랐다. 그는 간신히 집에 도착했지만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온몸이 퉁퉁 부은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다음 날 그는 심한 열병에 걸렸다.
페테르부르크의 겨울에 외투 없이 길을 걷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하루 반이 지나면 그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선언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마차에 실려 나가 매장되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외투를 잃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 작은 인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방이었다.
그가 죽은 후 페르부르트의 칼린킨 다리 근처에 아카키의 모습을 한 유령이 나타나 다른 관리들의 외투를 빼앗는다는 소문이 나돌고 마침내 아카키에게 모욕을 주었던 고관이 외투를 빼앗긴 뒤로 유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죽어서야 잃어버린 외투를 찾을 있었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그러나 아카키는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가 다시 나타날지 누가 알겠는가.
아카키의 외투를 빼앗고, 외투 이상의 것을 빼앗은 이들은 추위와 밤길을 조심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물 속의 웃음이라고 가여운 아카키가 그토록 외투를 사랑하고, 다른 삶을 꿈꾸는 아이러니에 슬며시 웃음이 나긴 하지만, 어찌 가볍게 웃고만 넘길 수 있겠는가. 모두가 꿈꾸는 ‘외투’ 하나쯤을 마음속에 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