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현진건, 문학과지성사, 2008
김첨지는 인력거 꾼이다.
소설가 구보가 산책 길에 나섰던 경성 거리를 그는 인력거를 끌고 누빈다.
소설에서 그에게 운수가 기막히게 좋았던 그날 아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픈 아내에게 약도 한 번 못 쓰고, 먹고 싶다는 설렁탕을 사주지 못한 마음이 게운치 않다.
“오늘은 나가지 말라”며 붙잡는 아내에게 “젠장맞을 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한다”며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으니 마음이 편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은 좋았다.
첫 번째 손님에게 1원 30전, 두 번째 오십 전, 세 번째 1원 50전을 받았다.
거기에 또 60전, 그가 그날 번 돈은 2원 90 전이다.
월세가 1원이니 월세의 3배가량 되는 돈을 하루에 번 거다.
“집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칸을 빌렸고, 물을 길어대는 조건이 붙었다.”는 김첨지의 방을 지금의 가치로 계산한다면 대략 월세 30만쯤으로 치고, 하루 동안 90만 원을 번 셈이다. 김첨지의 표현대로 ‘기적에 가까운, ’억세게‘ 운 좋은 날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많이 번 우리의 김첨지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린다.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아내에게 일어났을 그 불길한 일, 죽음의 예감이었다.
이상하게도 슬프거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가 돌아왔을 때 감돌던 그의 방을 둘러싼 기운, 괴괴한 침묵, 젖먹이 아기 개똥이의 젖 빠는 소리만이 김첨지의 방을 감싸고 있었다.
"하여간 김첨지가 방문을 왈칵 열었을 때,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 떨어진 삿자리에서 나온 먼지 내,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은 똥내와 오줌 내, 가지각색 때가 켜켜이 앉은 옷 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김첨지는 불길한 예감을 물리치기 위해 목청을 있는 대로 내어 호통을 친다.
오라질 년, 그만 일어나라고.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냐고….
이상하게도 운수가 좋았던 김첨지의 하루였다.
빈곤의 방, 1920년, 일제가 ’ 산미 증산 계획‘으로 쌀 수탈 정책을 폈을 때,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던 소작농 김첨지가 경성에 올라와 온 몸으로 하루를 살아 내던 방이었다.
그 방은 아마도 평온을 주는 방은 아니었을 것이다. 월세 1원에 주인집과 멀리 떨어진, 물을 길어다 주기로 하고 얻은 방이니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이름뿐인 방이었을 터다.
아픈 아내를 의원에 보이거나 약조차 쓸 수 없는 가장, 그 비극적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욕설뿐인 김 첨지의 목소리는 어쩌면 오래 묵은 울분 덩어리가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