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 책세상, 2010
소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작품이다.
1947년 발표했다. 전염병이 창궐한 고립된 도시 오랑에서 보이지 않는 적 ‘페스트’와의 싸움으로 극한의 절망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출간 즉시 초판 2만 부가 매진되는 등의 기록을 세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소설은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페스트가 발생해 1년 4개월 동안 인간이 페스트를 어떻게 겪어나가는지를 그렸다. 페스트가 창궐해 외부와 차단된 오랑 시에 영웅은 없었다. 그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성실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의 연대기적 구성을 따라가며 닫힌 도시 오랑의 변화되는 모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오랑 시는 어떻게 닫힌 도시가 되었을까?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연대기가 다루고 있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오랑시는 열광적이면서도 무심한 사람들이 산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4월 17일 8시에 수위는 지나가는 의사를 붙들고 어떤 짓궂은 장난꾼들이 죽은 쥐 세 마리를 복도 한복판에 갖다 놓았다고 푸념을 했다.
며칠 후 수위가 죽었다.
도시엔 쥐들이 나와 죽었고, 쥐들이 사라지자 고양이도 사라졌다.
며칠 후 당국에서 발표한 포고문에는 몇 가지 예방조치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오랑 시의 시민들에게 ‘극도의 청결’을 요구했으며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경우, 가족들은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격리에 동의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변한 것은 없었다.
겉으로 보면 변화가 없었다. 때마침 찾아온 봄, 꽃장수들은 수천 송이의 장미를 팔기 위해 인도에 나앉았으며 꽃들은 시들어갔지만 달콤한 향내는 온 도시에 퍼졌다. 러시아워가 되면 전차는 여전히 만원이었고 낮에는 텅 비고 더러웠다. 사망자의 수는 늘어났고, 당국에선 도시를 폐쇄했다. 이제 페스트는 그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변화는 그렇게 찾아왔다.
그들에게 찾아온 변화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 감정이 모든 사람들의 전체적 감정이 되었고, 공포와 귀양살이가 주된 고통 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감정은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며 배우자에게 질투하거나 성실해지거나, 무관심했던 부모에게 관심을 갖는 등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고통에 대한 상상이었다.
“페스트가 발생한 지 3주일 만에 302명의 사망자가 나타났다.”
늘어나는 사망자 수에도 일시적일 것이라는 낙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거리로 나왔고,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있곤 했다.
그러나 월말이 가까워지자, 오랑 시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차량 운행과 식량 보급은 제한되고 배급제로 바뀌었다. 몇 차례의 정전도 있었다. 차량 운행은 줄어들다가 끊겼다. 거리의 사치품 가게들은 나날이 문을 닫았고, 진열장 창문에는 ‘절품’이란 쪽지가 붙었다. 하지만 각 가게의 문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오랑 시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했다.
보행자들의 수가 늘었고, 사람들은 카페에 득실거렸다. 그들은 당분간 ‘휴가 중’이었다. 영화관의 수입도 감소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포도주를 비롯한 알코올 음료의 재고품을 모두 마셔댔다. 어느 카페에서 ‘양질의 술은 세균을 죽인다’라는 광고문을 써 붙였던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리 모두 미치고야 말 거예요. 틀림없어요.”
오랑 시 전체의 삶이 우울한 투쟁을 계속 이어갔다.
맥주홀에선 ‘커피 매진’, ‘설탕 지참’ 등의 패를 붙였고, 상점들이 열리면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아무 할 일 없는 사람들이 한길에 나가 시간을 보냈고, 그들은 사치를 과시해 페스트를 쫓아 보내고자 애를 썼다. 정오의 식당은 눈 깜짝 사이 만원이 되었고,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그늘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돈을 흥청망청 썼다.
8월 중순쯤에는 페스트가 모든 것을 뒤덮어버렸다.
오랑 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밖에 없었다. 개인의 감정은 사라졌다. 가장 뚜렷했던 것은 생이별과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 거기에는 공포와 반항이 내재되어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시민들의 난폭함, 사망자의 매장, 헤어져 있는 애인들의 고통 같은 것들이 도시를 묘사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밤이 깊어갈수록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는 자주 들렸고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페스트를 태워 죽여버린다는 환상으로 자기네 집에다 불을 지르기도 했다.
사망자가 늘어나자 시는 효율성을 위해 격식과 같은 것들은 모두 없애버렸다. 시민들은 그런 처리방식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식량 보급 문제가 더 직접적인 관심사여서, 줄 서고 수속 밟고, 서식을 갖추는 일 때문에 주위에서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또는 앞으로 어떻게 죽어갈는지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게 되었다.
당국은 두 개의 구덩이에 시체를 처리했다. 시체를 빨리 나르기 위해 전동차를 이용했다.
사람들은 전동차가 지나갈 때면 유람차 안에 꽃을 던지곤 했다. 전동차가 꽃과 시체를 실어 나르는 소리를 듣는 여름밤이 잦아졌다. 이러한 것들이 그 질병이 가져온 극단적인 결과였다.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지배했다.
그해 처음으로 레인코트가 거리에 등장했는데 고무를 입혀서 번들거리는 천을 이용해 만들었다. 시민들은 그것에서라도 면역을 얻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페스트는 오랑 시의 시민들의 가슴속에서 타올랐고, 화장터의 화덕에 불을 질렀고, 맨손의 허깨비 같은 사람들로 수용소를 가득 차게 만들었다.
쥐들이 돌아왔다.
페스트는 당장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약화되어가고 있었다. 하강 상태에 있었고 시체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수개월 동안 축적해놓았던 힘을 단시일 안에 거의 전부 잃고 있었다.
그러나 시내에는 변화가 없었다. 낮에는 조용한 거리, 저녁이 되면 군중으로 가득 차고 영화관과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얼굴은 한결 더 느긋해지고 간혹 미소까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연대기는 승리의 기록일까?
시내에서는 환희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환희는 위협받고 있었다. 군중은 모른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지금까지 페스트가 지배하던 1년 4개월 간의 오랑 시의 기록이었다.
리외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숨어있던 페스트균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공포와 단절, 낙관과 비관, 희망의 또 다른 모습을 현실로 겪어내고 있다. 오랑 시의 페스트 연대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코로나19의 연대기에도 기록될 법한 사건들이 많다. 오랑 시의 풍경이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오랑시의 페스트 연대기와 코로나 19의 연대기가 나란히 기록되는 느낌이다.
우리도 대체로 무심히 살다가 충돌하고, 휩쓸리고, 동요하며, 분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보듬고, 희망을 품고, 평온을 갈구하니 말이다. 삶의 풍경은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비슷한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끝냈고 치료제도 나올 예정이고, 여행사에서는 유럽여행 상품 안내를 풍선 다발 사진과 함께 보내와 들뜬 마음에 여권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리외의 말이 던지는 무게감 때문은 아닐는지.
하지만 기억한다. 리외를 비롯한 페스트를 이겨낸 사람들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성실한 삶의 모습을.
우리의 연대기는 어떻게 기록될까?
소설 <페스트>의 일 년 4개월의 기록을 훌쩍 넘어, 2년에 가까운 시간의 기억을 되새겨 본다.
닫힌 도시 ‘오랑’의 연대기를 통한 이해와 연민, 각성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