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츠 카프카 지음, 오용록 옮김 , 솔 출판, 2000
우리는 가끔 미로에 갇힌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일상적인 미로가 더 공포스럽다.
길 안에서 길을 잃는 경우가 그렇다. 미로 구조의 대표적인 소설 카프카의 <성>은 견고한 성에 도달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애쓴다. 주인공 k의 경험은 마치 꿈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독자는 k의 꿈의 세계를 함께 체험한 느낌이 된다.
이 소설은 측량 기사 K가 성을 둘러싼 마을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K를 부르지 않았으므로 계속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고, 머물기 위해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불합리한 현실이다. 그 현실은 과정만 존재하고 끝은 없다. 길이 없는 길에서 길 찾기의 과정이다. 처음과 끝도 구분되지 않으며 도달할 수 없는 길에 머문다.
소설 『성』의 각 장을 잘 살펴보면 마을 사람들이 이방인 K를 둘러싸고 성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초에 짜인 각본처럼 말이다. k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한다. 그러나 각종 시도에도 불구하고 입구를 찾지 못하며 빙빙 돌고 있다. 어쩌면 성과 마을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K가 도착하려는 성. 성을 둘러싼 마을의 비밀은 실체는 있지만 혹은 있다고 믿지만, 막상 본 적은 없는 ‘클람’이라는 상징에 있다. 물론 성에 살고 있다는 백작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과 실제로 연결된 것은 클람이다. 아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정작 그들도 클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있다고 믿고 있을 뿐. 그래서 미로에서 헤매는 K의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그가 성을 찾는 과정 자체를 방해하려는 목적이라면 마을 사람들이 k를 대하는 태도는 일종의 딴전, ‘주의 돌리기’ 인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주의 돌리기의 과정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요소들이 발견된다.
K와 프리다의 대화다.
“날 보고 클람을 아느냐고 물었는데 – 내가 그의 애인이거든요”
“나에게 매우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군요”
“당신만이 아니에요.”(51)
클람을 알고 있고, 클람과 애인이란 사실 때문에 프리다는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 된다. ‘클람’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며, 마을에서 나흘 동안 만날 수 없었던 ‘클람’을 찾아다닌 K에게 프리다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K는 올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올가를 중심으로 춤을 만들어 함께 빙빙 돌며 원무를 추었다. 일제히 소리 지를 때마다 한 사람이 올가에게 가까이 가서 한 손으로 허리를 잡아 서너 바퀴 맴돌렸다. 원무가 갈수록 빨라지고 울부짖음, 탐욕스러운 색색 거림이 점점 하나가 될 무렵, 아까 웃으면서 원을 뚫고 나오던 올가는 머리가 풀어헤쳐진 채 이 사람 저 사람을 옮겨가며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었다.
“누구죠?”
“클람의 하인이에요.”(52)
“그는 그들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요?”
“예” 프리다가 말했다. “자거든요” “뭐라고!” K가 소리쳤다. “자고 있다고?”
(…)
“당신이 그를 봤을 때도 그는 자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들여다보게 했겠어요? 그게 그의 자는 자세예요. 나리들은 잠을 아주 많이 자요.”(53)
프리다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클람은 ‘나리’이고 ‘나리들은 잠을 아주 많이 잔다’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녀는 클람을 모든 것을 지배하는 완벽한 인물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나리’는 그녀의 애인이란다. 다음의 장면을 보면 K를 놓고 프리다가 던지는 농담, K는 웃을 수 없지만 프리다나 다른 인물들에게는 어쩌면 그저 재미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면 말이다.
“측량사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요.” 하며 프리다는 K의 가슴에 작을 발을 얹었다.
“간 지 벌써 오래된 것 같아요.” “난 못 봤는데” 주인은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그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데.”라고 말하자 프리다는 K가 그런 대담한 짓을 할 사람은 못 된다며, K 위에 올려놓은 발을 더 세게 눌렀고, “그가 여기 밑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는 K에게 ”나와, 이 아래선 숨 막혀 죽겠어" 하고 그를 끌어당긴다. 두 사람을 서로 껴안고, 정신없이 뒹굴었다. 그리고 클람의 방에서 프리다를 찾는 낮고 명령하는 듯한 덤덤한 소리가 들려오자 K는 ”결코 그에게 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프리다의 매무새를 고쳐 주기 시작했으나 프리다를 자기 손에 가진 게 너무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고 말한다. (55)
이날이 K가 마을에 머문 지 나흘째 되는 날이다.
마을의 비서와 만났던 장면도 그렇다.
클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비서를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K는 클람과 숨바꼭질하듯 엇갈리며 결국은 만나지 못한 채 비서와 만난다. 클람이 마차에 있을 때는 기다리고, 마차가 떠났을 때는 마차로 가는 클람은 결코 자연스럽거나 우연히 만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클람을 만나기 위한 K의 선택지는 비서를 통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비서를 통하는 방법 역시 확실한 방법은 아니란 사실을 독자는 알게 된다. 클람과 면담하려면 조서를 써야 한다. 그 조서는 클람이 읽을 수도 있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조차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조서라도 작성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늘 허망한 결과를 가져온다.
“클람을 보았는가?”
올가와 아말리아는 바라바스는 성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클람을 보았을까. 그들은 자신 위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하며 자신 위에 있는 누군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다. 클람에 대한 외모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클람은 기본적인 모습을 같지만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이 궁색하다. 모호하고 애매하다. 본질은 같으나 현상은 다르다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클람을 보지만 클람은 바뀐다. K는 이 애매한 상황에서 바라바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미궁이지만 바라바스는 클람과 K을 이어줄 유일한 메신저다.
그는 깨닫게 된다. 성과 마을은 예속적 관계이며 이에 융화되어야 함을. 클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마을을 지배하는 거대한 손이란 점을. 다음의 장면도 역시 ‘주의 돌리기’의 한 면이다. K를 바라보면 팽팽하게 긴장된 내면의 세계가 예민하게 날이 서 있지만, K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이방인 K에게 마치 ‘긴장 풀어!’라고 말하며 어깨를 툭 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결코,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웃으라고 말하는 그런 상황이다.
결국, K가 이 마을에서 존재하려면 존재 증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디에 소속될 것인지, 학교 소사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K. 그는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늦은 저녁 눈 속에 깊이 묻혀 있는 마을.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 자리를 맴돌고만 있는 것이다. K는 성을 보면서 계속 걸어갔지만, 성이 가까이 다가가는 듯하다가 구부러져 버리는 것처럼 멀어지는 것도 가까워지는 것도 아닌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마을은 한없이 한없이 기다랗게만 뻗어있는 것이다.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애초에 길이 없어 성에 이를 수 없으므로 미완성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K로 살고 있고, 또 다른 K를 무심하거나, 얕은 관심을 보이거나, 그런 K를 이용하거나 죄도 짓지 않은 K에게 스스로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K.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클람을 찾아서. 오늘도 미로 찾기에 골몰해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