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예전부터 니체가 가진 병증이 니체에게 사상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니체, 그의 철학과 건강의 메타포 - 이상범, 2023>을 리뷰하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뻐했다. 그 후 나는 니체의 여러 도서를 참고하며 '니체의 사상이 왜 태어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찾고자 했다. 그런데 니체의 책이 워낙 많아서 지쳐갈 때쯤 이 책을 발견했다.
책 정보
<니체, 건강의 기술>은 니체의 저서들 중에서 건강과 병에 관련 있는 구절들을 엮은 책이다. 엮은 사람은 현재 니체하우스에서 큐레이터 및 연구자로 활동하는 미렐라 카르보네, 요하임 융 두 명이다. 그리고 울산대학교 철학과 이상엽 교수님이 번역하였다. 니체에 대한 전문가들이 참여한 책이라 참고 한 책들이 방대하고, 번역도 깔끔하다. 따라서 이 책은 독자들이 다양한 서적에 숨어있는 니체 사상의 근본을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독일에서는 2012년에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에 번역되어 들어왔다. 약 250페이지 되는 분량이라서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표지에 있는 니체 그림이 다른 책들보다 귀여워보이고 약해보인다. 그가 가진 병증, 그로 인한 고통이 좀 더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제목 밑에 부제를 보니 니체에게 건강이란 운명적 삶을 긍정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주는걸까? 어쨋든 그가 가진 모든 사상의 근본적 질문은 '삶'을 향하고, 니체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운명인 병을 긍정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북리뷰의 부제를 '니체 사상의 근본적 이해를 위한 안내서'라고 해보았다.
서론은 꼭 읽기
이 책은 니체를 향한 독자의 관점을 아예 바꿔버릴 수 있다. 엮은이들이 '건강'을 중심으로 니체의 철학을 엮어두었기에 왜 니체 철학을 건강의 관점에서 생각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서론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엮은이들은 이렇게 '건강과 병'의 관점에서 니체가 취한 섭생학과 생리학을 통해 새로운 자기 시도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형이상학 지식과 감각적인 몸의 관계를 전복시킨다. 그전까지 건강과 병이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건강한 상태만을 바람직하다고 여겼다면, 그 관계를 전복시켜서 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건강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전통철학을 전복시킴으로써 그동안 인간이 숭배했던 사고와 이성이 얼마나 우리의 감각과 몸에 많은 영향을 받는지 사고하게 했다.
사실 '건강과 병'의 전복은 위에서 말한 니체의 자기 시도 중 하나이다. 병으로 가득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니체는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 - 종교, 관습, 철학, 음악, 취향 등-중 가장 근본적인 '자신의 병'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니체의 사상 전복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 스스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와 조건을 벗어던지고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 지금 기분이 어떤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싶은지 성찰하게 된다.
책의 형식
이 책은 총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3개의 주제는 '건강과 병'이라는 주제 아래에 각각의 다른 소주제로 니체의 저서들에 나오는 구절을 엮어두었다. 그런데 니체의 구절을 설명하기 전에 소주제의 전반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요약 부분이 있다. 독자가 보았을 때 다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엮은이들이 왜 이 구절들을 하나의 소주제로 엮었는지, 다른 소주제와 어떤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지 신경 쓰면서 읽어야만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챕터의 앞부분을 꼭 읽고 어떤 관점으로 니체의 철학 구절들을 받아들일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중간에 손을 놓기 쉬운데, 끝까지 다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철학이 '병으로부터 태어난 삶을 긍정하는 삶'으로 전개되어 간다는 관점만 정립되면 니체의 해석이 굉장히 일관성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니체가 왜 그 시대를 '병든 시대'라고 생각했으며, 바그너의 음악이 '병든 음악'이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왜 '노인의 철학'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해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원문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페이지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래서 니체의 책에서 찾아보고 싶은 독자들이 편하게 앞, 뒤 맥락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읽어도 되지만, 시집처럼 훑어가며 좋은 문장을 얻어가거나 아이디어를 얻기에도 좋은 발췌독이 더 효과적인것 같다.
니체의 시대적 배경 - '개인'의 탄생과 혼돈
이 책을 좀 더 즐기기 위해서는 니체의 시대적 상황을 조금은 알면 좋다. 당시 유럽 사회는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으로 많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졌으며, 계급이 무너졌다. 뿐만 아니라 부패한 종교의 권위도 추락함과 동시에 진화론 등 자연과학에 대한 믿음이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19세기 유럽에는 물질주의, 과학만능주의, 낙관주의, 평등주의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당시 유럽에서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은 대부분의 개인들은 그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니체에게 근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자긍심과 신성함을 잊고,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신분은 사라지고, 자유를 얻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가와 민족, 관습들에 의해 묶여있어서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니체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니체는 어떻게 해서 시대정신에서 빠져나와서 그 시대를 진단할 수 있었을까?
병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자유정신"
니체가 추구했던 당시 모든 시대정신의 전복은 결국 그의 개인적인 병과 회복의 무한한 반복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피할 수 없는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받아들여야만 살아낼 수 있었다. 니체의 병은 그가 살아왔던 모든 조건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기회 속에서 니체는 그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었고, 그것들이 모여 니체의 사상을 만들어갔다.
만약 니체가 아프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니체는 그저 어린 날의 소원처럼 목사가 되었거나, 잘 나가는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지 않았을까? 어떨지는 모르지만, 시대는 또 다른 니체를 만들어냈을 것임에는 분명 하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이 니체를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자신의 삶 둘러싼 모든 조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니체의 철학을 알아보는 것을 떠나서 자신을 둘러싼 조건들을 뒤로하고 진정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접하는 데 조금 걸리는 게 있다면 니체에 대해 배경지식이 아예 없는 독자는 니체의 구절들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따라서 완전 입문자보다는 니체의 전기 한 권 정도 읽은 사람이 읽는다면 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니체를 공부하는 사람, 취미로 니체를 읽는 독자뿐 아니라 니체에 관심이 없더라고 삶에서 자신을 찾고자 하는 독자나 무언가 방황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