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태풍의 나날 - 태풍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18

by 소라

그 해의 태풍


엄마는 부여를 그리워했다. 서울에 올라오고 그 그리움은 점점 커지는 듯했다. 오기 전에 심은 콩도 팥도 궁금해했다. 비가 오는 날은 더 그립다고 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밭을 구경했었다. 그 풍경과 그 여유,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비가 오면 밭에 나가보고 싶어서 잠이 오질 않았어.

눈을 반짝이며 비가 올 때의 밭을 설명했다. 비를 머금은 잎사귀들, 흙, 나무들을 구경하며 빗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장작불을 때고 불멍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딸들과 함께 있는 건 불편했다. 딸들을 좋아하지만 혼자 있는 편안함을 그리워했다. 우리들의 잔소리를 못 견뎌했다. 우리의 잔소리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손을 쓰지 마라, 살림을 하지 마라, 무리해서 힘든 일을 하지 마라 등등. 엄마에게 노동 금지령이 떨어졌다. 엄마는 자기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엄마는 원래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는데 집착했다. 더더더 딸들의 살림을 대신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살림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도움이 되어야만 해! ‘얹혀 사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어!’ 엄마는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따로 살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나 되어가는 딸들은 그것대로 불편했다. 엄마는 딸들이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방을 치워주지 않았다. 딸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유지하는 방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간섭하지 않던 엄마의 교육방식대로 자라난 우리이기에,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당황했다. 서른이 넘어 찾아온 엄마의 양육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보리굴비를 내 집에서 구웠다. 부여에 있을 때 부여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엄마의 원래 고향인 서천의 장에 갔다가 사 온 것이었다. 작은 원룸에 쿰쿰한 보리굴비 향이 퍼졌고, 나는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좁은 집안이 온통 보리굴비 향이었다. 엄마는 눈치를 봤다. 엄마가 살았던 탁 트인 부여의 주방은 이렇지 않았을 텐데. 좁은 원룸은 엄마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이거 왜 여기 놨어?’ ‘이렇게 하지 말랬잖아.’ ‘가만히 좀 있을 수 없어?’ 불편함은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언니는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종종 울기도 했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살 수는 있을까.” 엄마에게 하소연하기도 하고 잔소리는 날로 심해졌다. 모두 힘들었다. 엄마는 점점 더 있을 자리를 잃었다. 엄마가 도망쳐온 섬을 딸들까지도 갉아먹어 작게 만들었다. 엄마는 한 발만 디딘 채 서있는 것 같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역시 혼자 있고 싶어

엄마는 부여에 너무 가고 싶어 했다. 혼자 있고 싶어서 가고 싶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것은 언니와 나도 비슷했다. 우리 집 여자들은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타입이었다. 힘이 들수록, 누군가가 필요하면서도 혼자 있고 싶어 했다. 엄마랑 같이 산다는 것은 혼자 있는 소중한 시간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도 우리도 그 시간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개인주의적이었다.

엄마는 부여에 잠시만 다녀온다고 했다. 언니와 나는 불안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있는 동안 더 아파서 돌아올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가 아빠를 못 믿고 걱정하듯 우리는 엄마를 믿을 수 없었다. 태풍을 핑계로 엄마를 잡았다. 긴 장마가 끝나고 태풍이 세 번 지나갔다. 꽤 늦게까지 온 태풍에 우리는 엄마를 조금 더 서울에 잡아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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