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 수확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20

by 소라

엄마가 놓친 가을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겨울에 먹는 음식은 대부분 가을에 준비해 놓은 것이다. 엄마는 가을에 수확하는 일을 ‘가을걷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감, 밤, 대추, 콩, 팥 등이 모두 가을걷이 때 수확하는 작물이다.

가을의 가장 큰 이슈는 김장이다. 김장을 위해 모든 작물을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추, 무, 파는 김장의 필수 준비물이다. 엄마가 잠시 내려갔을 때 심은 김장 트리오들은 가을 내내 김치가 될 준비를 마친다. 엄마가 가을의 부여에 있었다면 아마 이 작물들을 키우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올해는 큰 외삼촌과 작은 외삼촌만 모여 김장을 했다고 했다. 배추김치를 담그고, 동치미도 담갔다. 무장아찌도 이때 담가야 하지만 외할머니도, 엄마도 없어서 그런지 올해는 생략되었다. 무장아찌는 내 최고 애정 반찬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드신 외할머니의 빈자리가 내게는 너무 크다.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엄마가 몇 년 전부터 엄마가 대신 장아찌를 담가줬었지만, 엄마가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그것도 힘들어졌다.

인터넷에서 무장아찌를 샀지만, 외갓집의 맛이 아니었다. 외갓집의 맛은 조금 더 간장 맛이 강했는데 인터넷 무장아찌는 피클 같이 신맛이 강했다.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엄마한테 상의를 하니, 엄마는 양조간장과 멸치액젓을 넣고 쿨하게 말했다.

일주일 뒤에 열어봐

놀랍게도 엄마가 손 본 무장아찌는 외갓집의 맛과 거의 비슷했다. 엄마가 멸치액젓을 넣을 때 의아했지만 그게 비법인가 보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엄마 덕분에 무장아찌를 채 썰어서 밥에 물 말아서 올려먹고, 참기름과 깨와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해서 먹고, 비빔밥에도 넣어 먹고 야무지게 먹었다.


배추와 무는 겨울에도 주요 식량이 된다. 김장을 담고 남은 배추와 무는 말려서 시래기를 만든다. 그러고도 많은 양의 무와 배추가 남아서 땅을 파서 묻어놓는다. 입구는 신문지로 막아 놓고, 꺼내고 싶을 때 신문지를 빼고 손을 넣어 배추와 무를 꺼낸다. 나는 무와 배추를 뽑아서 땅에 다시 묻는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심는 게 아니라 묻는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배추랑 무는 땅 파서 묻어놔. 겨울 내내 먹으려고.”

“잠깐만, 뽑은 걸 왜 다시 묻어? 그럼 더 커져?”

“아니 그냥 묻는 거야.”

“왜 묻는데?”

“놓을 데가 없어서.”

“냉장고에 넣으면 되잖아”

“우리는 그렇게 했는걸.”


땅에 묻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많은 양의 무와 배추를 보관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고, 뭔가 더 맛있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는 겨울 무가 맛있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가을에 수확했으니 가을 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하여튼 이 배추와 무는 겨울 내내 하나씩 꺼내 먹는다.

겨울에는 무를 깍두기 담가서 먹기도 하고 뭇국도 많이 끓여 먹는다고 한다. 배추는 쌈을 먹기도 하고, 쪄서 간장을 찍어 먹고, 된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가을에 만들어 놓은 시래기를 이용한 요리를 하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무와 배추 꼬리를 깎아서 간식으로 씹어 먹기도 했다. 배추 꼬리는 콜라비의 맛이 나는 겨울 간식이라고. 이 정도면 겨울 내내 무와 배추가 밥상을 책임진다고 봐도 되겠다.


배추와 무 이외에도 외갓집에는 감나무와 밤나무가 있었으니, 열매를 수확해서 겨울을 준비한다. 감은 옷장이나 창고에 잘 보관하면 홍시가 되고, 말려서 주물주물 만져주면 곶감이 된다. 이것들도 겨울 간식이 될 것이다.

가을에는 겨울에 잘 쉴 수 있도록 식량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바쁘다. 엄마는 월동준비를 생략했으니 올해 겨울을 좀 밋밋하게 보내게 될 수도 있겠다.




부여로부터 온 소식


추석을 앞두고, 엄마는 언니와 같이 살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부여에 내려가기엔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번 달에도 검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더 나빠졌다.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아빠 집으로 들어가기도 무서웠다. 집에서 살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마에게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엄마는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다시 요양병원에 가는 일을 말이다. 엄마는 사람들이 싫다고 했다. 그런데 남이나 다름없는 환자들과 방을 같이 쓰고 생활한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단체생활을 하기엔 엄마가 너무 지쳤다고 했다. 아파서 다시 병원에 들어왔다는 것도 창피하다고 했다. 갈 곳이 없어서 떠돌다가 병원에 다시 온 기분도 든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엄마는 떠돌이였다. 엄마에게 오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엄마에게는 불편한 남의 집이었다. 어디에도 엄마가 쉴 곳은 없었다. 일 년 동안 벌써 몇 번이나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지쳤고, 불안했고, 부끄러웠다. 아빠도, 딸들도, 사실 부여집도 불편했다. 엄마는 부여집을 물려받은 큰 외삼촌 내외의 눈치를 봤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지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치 보고, 미안해하고, 주눅 들고.

큰 외삼촌 내외가 오기 전에는 물건들이 제 위치에 있는지 확인했다. 시장도 미리 봐 두고 어떤 핑계를 대고 집을 비워줄까 고민했다. 자신 때문에 큰 외숙모가 주말에 놀려 와서도 편히 못 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럴수록 엄마는 밭일을 열심히 했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엄마는 몇 주를 고민한 끝에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엄마의 몸은 회복이 필요했고, 엄마 스스로 몸을 챙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병원에서 집중 관리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추석이 끝나면 입원을 하기로 병원에 연락을 취해 놨다. 그러면서도 우울하고 답답해했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반가운 소식이 왔다. 부여에서 연을 맺었던 아주머니들이 가을걷이를 했다고 연락을 준 것이다.

“왜 안 와? 얼마나 걱정했다고”

“저도 너무 가고 싶은데, 몸이 안 나아서요.”


엄마는 몸이 낫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을 생각해줬다는 것에 고마워했다. 너무 그립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들은 엄마를 위해 밤이며 감이며 대추 등 가을걷이 한 작물들을 큰 외삼촌 편에 보내겠다고 했단다. 엄마가 부여에 있었던 날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시골 사람들의 정은 서울까지 길게 이어졌다.

한동안 우울해했던 엄마에게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엄마는 밤을 쪄서 매일 “먹어 볼래?” 하며 들고 다녔다. 나는 멈춰있었던 것 같은데, 부여는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수확을 했다. 엄마의 올해 가을걷이는 아마도 부여에서의 추억인 것 같다.

나는 이 가을을 기준으로 일한 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1년 동안 내가 추수한 것은 어떤 것인지 몰랐다.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고 느꼈다. 올해는 나보다 엄마의 가을걷이가 더 성공적인 듯하다. 엄마는 용감했고, 나는 안주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내 생각을 읽으면 엄마는 조금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날 불쌍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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