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간 - 지금은 어디에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21
시간의 속도
내 시간의 속도는 얼마일까. 벌써 일을 한 지 1년이 넘었다. 요즘 들어 아픈 원인이 여기에 있는 걸까. 몸도 마음도 참 아프다. 여기저기 안 쑤는 곳이 없어서 운동이 절실한데 시간 내기는 힘들다. 그것도 핑계지만.
하루는 참 안 가는데, 지난 시간은 빨리 사라진다. 하루를 버티는 느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느낌이다. 엄마는 매일이 똑같다고 말하지만, 엄마의 일상을 글로 옮겨 적으면 매일 차곡히 무엇을 했다. 그것이 모여 1년이 되고, 세월이 되는 것이겠지. 나의 세월은 무엇을 적고 있는지 모르겠다. 엄마만큼이나 열심히 혹은 의미 있게 살았을까. 자신이 없다.
시간은 모두에게나 공평한 것 같지만, 또한 상대적이다.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달라지는. 나는 내 시간을 가성비 있게 쓰는 걸까. 아니면 길에 뚝뚝 흘리고 다니는 걸까. 내 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내 서른을 정의 내릴 수 있게 될까.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를 하게 될까, 그때가 참 좋았다고 추억을 하게 될까.
쉬는 시간
부여의 겨울은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했다. 땅은 휴경기, 사람도 할 일이 없다. 그야말로 쉬는 시간이다. 겨울이 되기 전에 준비해 놓은 간식을 아랫목에서 먹으며 수다를 떨고 이웃집에 마실을 나가며 겨울을 보낸다. 동네 어르신들은 화투도 치고 술도 한잔 기울인다고 한다. 회계 업무를 하는 나는 여름휴가 기간이 가장 여유롭고 연말에 가장 바쁜 반면, 부여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은 겨울인 것이다.
가을에 수확한 감은 홍시나 곶감이 된다. 밤은 주로 쪄 먹고, 무나 배추 꽁다리를 깎아서 시원하게 먹는다. 팥죽을 쑤어 먹거나 수수팥떡을 해먹기도 한다. 겨울에 먹는 음식은 대체로 겨울에 나는 작물은 아닌 것 같다. 겨울 이전에 준비해놓은 것들을 누린다고 할까. 아마도 겨울에는 작물이 나지 않아서 비축해 놓은 것들은 먹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일하지 않고 먹는 겨울이 휴가처럼 느껴진다.
친구 중에 일 년에 해외여행을 꼭 1번은 가려는 친구가 있다.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설렌다고 한다. 그 친구는 해외여행에 쓰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일 년을 사는 것 같다. 무엇이 우선인지는 모르겠다. 여행을 다니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인지 회사를 다닐 힘을 모으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인지. 어찌 됐건 잘 쉬고, 잘 준비해야 또 내일을 살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무엇 때문에 사는가. 살기 위해 일하고 먹고 자는 건지,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돈을 모으다가도 왜 모으는 거지, 결국 쓰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진다. 얼마 전에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품 가방을 구입했다. 친구들도 하나 둘 명품가방을 샀고, 회사에서 여자 동료들끼리 하는 말을 주워듣다 보니 자연스레 명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일한 지 1년이 지나면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일 년 내내 모은 적금을 털어서 내 월급보다 비싼 가방을 손에 쥐었다. 이 조그마한 게 뭐라고. 내가 이거 하나를 사자고 일 년 동안 돈을 모았단 말인가? 가방을 사서 들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
그러던 와중에 부여의 겨울을 들으며 느낀 것은 정말 좋겠다는 것. 한가롭고 평온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나머지 세 계절을 땀 흘리며 살아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 인생 뭐 있냐, 편안하고 안락하면 그만. 그래도 명품을 구경하는 재미는 끊기 어려울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