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간 -봄을 향해

서른에 만난 엄마의 텃밭 22

by 소라

부여에서 서울로 : 일상으로 가는 길

나는 버스를 오래 타고 가는 것을 좋아한다. 승용차는 너무 가까운 사람과 함께 타야 하고, 기차는 너무 빨라 창밖을 보며 멍 때리기 적당하지 않다. 적당히 흔들리며 적당한 빠르기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나도 감성에 젖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지독한 집순이지만,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집으로 가기가 왜 이리 아쉬운지 모르겠다. 일탈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일까. 혼자인 집으로 가야 하기 때문일까. 무엇이든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혼자인 게 좋으면서도 뒤에서 누가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산다.


엄마는 아빠 집에 다녀오면 힘들어했다. 잠을 잘 자지 못했으며, 며칠 설사를 하기도 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아도 일주일 정도 아빠 집에 있다가 오는 날은 넘어져서 치료를 받는 날이 여러 번 있었다. 일어나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아서 넘어지고 말았다며 붕대를 감은 손, 멍이 든 다리 등을 보여줬다.

아직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예민하게 신경 써야 하는 몸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집에 가면 안 돼, 아직은 아니야.’ 엄마의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도 같은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헤매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

엄마는 언제 일상으로 가게 될까 엄마는 여전히 병원과 아빠 집과 딸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산다. 떠나고 싶다면서도 가족 주변을 맴돈다. 엄마가 자신의 집이라고 느끼는 곳은 어딜까. 엄마도 나처럼 혼자 있고 싶은데도 함께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을 가지고 살까.

엄마가 아빠랑 만나기로 한 주말, 나와 가방을 봐달라며 엄마를 잡았다. 엄마는 쭈뼛쭈뼛 눈치를 보며 아빠한테 내일 가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당신이랑 놀아주는 거 피곤해, 안 와도 돼’라고 했단다. 엄마는 꼬아서 듣는 버릇이 있으니, 정확한 워딩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빠가 삐졌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엄마는 항상 아빠랑 있으면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아빠가 피곤하다는 건 상처를 받나 보다. 나랑 쇼핑하면서도 중간중간 ‘아빠는 내가 귀찮은 가봐’라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빠는 오지 말라면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해댔다. 둘 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 예쁘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 항상 엄마 아빠의 싸움은 큰 불 같다. 그래, 내가 죄인이다. 괜히 엄마를 잡아가지고는 집안에 분란을 일으킨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겠구나. 힘든 게 다 끝나면 편안히 몸을 누일 집으로.

그러니 조금만 참아 엄마.



움직이는 성에도 봄은 오는 가.


엄마의 텐션은 항상 높아 보이지만, 자신의 인생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보통 차분한 기분을 유지하지만, 자기 전에 생각하면 최종적으로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같지만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행복한 인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딸들에 대한 연민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 더 강한 사람이니, 좀 잘 살아야 할 텐데. 엄마는 영 자신 없어한다.


엄마도 나도 안정되지 않는 삶이란 건 확실하다. 나는 계약직이고 올해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전셋집은 만기가 1년도 남지 않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정규직이 되었을 때나 가능하지, 백수가 되면 꼼짝없이 아빠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언니한테 움직이는 성 같다는 이야기를 한지가 벌써 5년 전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인데, 내 상황은 여전히 같다. 2년마다 이사 다니고, 잘리면 뭐 먹고 살 지 걱정하는 삶. 모르겠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내가 봤을 때 엄마는 나보다 상황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인생이 구만리인 나보다 엄마는 이뤄놓은 게 많다. 사실 아빠가 살고 있으니 아빠 집이라고 부르지만 명의는 엄마 집이다. 엄마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이미 다 키웠다. 보험도 연금도 국가고시 면허도 있다. 나는 아무것도 없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내 몸뚱아리만 있다. 할 일은 많은데 가진 건 진짜 없다.

엄마는 땅도 있는데 둥둥 떠다닌다. 나보다 더 흔들거리면서 여기저기를 떠다닌다. 엄마가 어딘가에 도착해서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엄마는 부레옥잠이 아니라 사과나무 같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떠다니는 걸 못 견디는 것이다.


눈이 아닌 비가 왔다. 소나기도 가랑비도 아닌 비가. 일요일 아침부터 오는 비에 부침개가 먹고 싶어 졌다. 하루 종일 온다는데 하루 종일 참을 수는 없어서 냉장고를 뒤졌다. 냉장고에는 어제 버섯밥에 비벼먹을 달래장을 만들고 남은 달래가 있었다. 달래에 부침가루와 물을 넣고 전을 부쳤다. 달래전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떤 맛이 날까.

달래전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달래만 느끼고 싶어서 새우나 오징어도 넣지 않고 고추도 넣지 않았더니 조금 후회했다. 달래 뿌리가 씹힐 때만 달래를 느낄 수 있었다. 비도 오고 전도 있고 막걸리가 생각났지만 참았다. 아직 집에서 혼자 막걸리까지는 먹어본 적이 없다. 캔맥주는 괜찮지만 왠지 막걸리는 너무 술꾼 같이 느껴진다.

상을 치우고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하고 있으니 입 안에서 달래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봄 같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기어코 올 것이다. 그럼 봄을 피해 다니는 움직이는 성에도 봄은 오려나?


봄동으로 봄 주입식 교육


갑자기 배추전이 먹고싶어서 검색해보다가 요즘은 봄동 철이라는 걸 알게 됐다. 봄동전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사진에서도 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잔뜩 기대하며 봄동을 주문했더니 2천원에 한 포기가 왔다. 꽤 커서 이걸 어떻게 다 전 부쳐 먹나 고민했다. 세 장만 부쳤다가 순식간에 흡입해버리고 두 장을 더 부쳤다. 막걸리가 땡기는 맛이다.

봄동은 그래도 한 포기 그대로였다. 봄동을 처리하기 위해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한테 “봄동전 해줄게”라며 꼬셨다. 그래도 남은 건 겉절이를 할 생각이었다. 된장으로 양념한 봄동 나물도 먹고 싶었지만, 자취방엔 된장이 없다.

풋고추와 부추를 넣은 간장에 한 장 씩 부쳐낸 봄동을 줬더니 엄마의 리액션은 역시나 화려했다.

“나 풋고추 너무 좋아하는데~”

“와 너무 예쁘고 맛있게 생겼다!”


엄마는 요리해줄 맛이 나는 사람이다. 엄마는 정말 궁금했는지, 봄동전이 어떻게 이렇게 바삭한 지 물어봤다.

“반죽에 뭐가 들어간 거야?”

“뭐가 다른데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알았지? 부침가루에 튀김가루를 섞었는데. 엄마는 귀신이다. 부침가루를 사려다가 잘못 보고 튀김가루를 사서 결국 두 개 다 사게 됐다. 튀김을 만들 일은 거의 없어서 바삭하게 부치고 싶을 때 좀 섞어서 썼다. 엄마는 새로운 레시피를 얻게 됐는지, 신이 났다. 자기는 한 번도 전에 튀김가루를 안 섞어 봤다고. 엄마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많이 기뻐한다.

기름에 부친 전이 느끼할 것 같아서 술을 못하는 엄마에게 새로 사본 자몽주스를 따라 줬더니 또 신났다. 엄마는 봄동 겉절이를 담을 때도, 화이트데이라 회사에서 받은 초콜릿을 줬을 때도 또 또 신이 났다. 이렇게 놀고도 병원에 들어가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배신자이지만 봄동이 주는 봄기운만큼은 며칠 엄마의 속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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