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프로축구단 대구FC의 숙원, 축구전용구장 개장

시민구단 대구FC와 함께한 20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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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구단 대구 FC와 함께한 20년 】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나는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당시 월드컵 개최 거점 도시들에 프로축구팀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었고, 대구에서도 시민구단을 창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금하여 팀 창단에 힘을 보탰고, 중학생이었던 저도 몇천 원을 기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창단된 팀이 바로 대구FC입니다. 역사가 짧고 재정 상황도 좋지 않았던 대구FC는 상위권보다는 하위권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가끔 신인 선수가 리그를 휘젓고 다닐 때가 있었는데, 마치 긁지 않은 복권이 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기억 속 최고의 '긁지 않은 복권'은 이근호 선수였습니다. 이근호 선수는 거의 혼자 힘으로 대구 FC를 상위권으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수 역시 출중한 활약을 바탕으로 아마도 이적료를 남기고 다른 팀으로 떠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팀이었지만, 우리 고장에서 K리그 경기가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가끔 경기장을 직접 방문하여 경기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 축구 전용 경기장이라는 새로운 세계 】


제 기억 속 축구 경기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거의 매번 승점을 따냈습니다. 지금은 예능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용수 선수가 당시 아시아 모든 팀들을 상대로 골을 쏟아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홈경기는 늘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대구에 살았기 때문에 직접 방문해서 경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TV 시청만큼은 빠짐없이 했습니다. TV로 축구 경기를 보면 늘 육상 트랙 안에 축구 경기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1) 저는 모든 축구 경기장이 그렇게 생긴 줄 알았습니다.


image.png 그림 1. 육상 트랙으로 둘러싸인 잠실종합운동장 전경. 관중석에서 선수 표정도 보이지 않던 그곳. https://www.munhwa.com/article/10055478



그런데 2002년, 우리나라에 월드컵을 개최할 만한 수준의 좋은 경기장들이 다수 건설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축구 전용 경기장'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 넓은 스타디움이 오직 축구만을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던 고장 대구의 월드컵 경기장은 제 기대와는 다르게 축구 전용 구장이 아닌 종합운동장 형태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그 이후 대구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하게 되었는데, 경기장 건설 당시 이런 대회 개최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육상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 2002년, 한 달 내내 축제였던 여름 】


대구 FC의 홈구장은 육상 트랙 한참 앞에 축구장이 있어서, 관중석에 앉아 선수들을 바라보면 표정조차 잘 보이지 않는, 관람하기에 썩 좋은 경기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림 2) 하지만 중학생 시절, 저는 이 축구장에서 대한민국 축구사에 역사로 기록될 만한 몇몇 경기들을 직접 관람했습니다.


image.png 그림 2. 2002월드컵과 2011세계육상의 무대. 하지만 축구를 보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https://www.yna.co.kr/view/AKR20110811064100053



먼저 월드컵 직전에 열린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한민국 대 프랑스 경기를 직관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0대 5로 패했고, 이후에도 비슷한 패배들이 이어지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으로 불리기도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대망의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대한민국 대 미국 경기를 직접 관람했습니다. (그림 3) 후반에 안정환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고, 골대 뒤 대형 태극기가 올라가던 위치에 서서 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의 소름 돋는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image.png 그림 3. 2002.06.10 한국 vs 미국. 안정환 골이 터진 그날, 22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 중.



2002년, 우리나라 전체가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달 내내 축제 기간이었습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입장했던 월드컵 입장권을 저는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 2019년, 드디어 개장한 대구 축구전용구장 】


대구에 살면서 가끔 다른 지역에 있는 축구 전용 경기장 탐방을 다녔습니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 관람을 가기도 했고, 경기가 없어도 축구장 근처 공원에 방문하여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구의 종합운동장에서 축구를 보다가 축구 전용 경기장에서 축구를 보니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었습니다.


https://brunch.co.kr/@smryuphd/23



그러던 2019년, 대구 도심에 있던 종합운동장이 리모델링을 거쳐 드디어 축구 전용 구장으로 개장했습니다. 대구 FC의 홈경기는 이제 월드컵 경기장이 아닌 대구 도심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역사적인 첫 경기를 직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4와 5)


모든 프로리그 시합에서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경기장을 처음 보러 온 관중들 입장에서는 경기장도 구경하고 많이 모인 사람들도 구경했을 것 같습니다. 초록초록한 잔디, 푸른 하늘, 하얀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 6) 제 고향에도 드디어 축구 전용 경기장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image.png 그림 4. 2019.03.09 DGB대구은행파크 개장전. 대구 최초 축구전용구장의 시작을 함께했습니다.
image.png 그림 5. 초록 잔디, 푸른 하늘, 선수들의 표정까지. 드디어 우리 고향에도 축구전용구장이.
KakaoTalk_20260201_184718206.jpg 그림 6. 축구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정말 평화롭습니다.



저는 2018년 2월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군복무를 위해 대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구를 떠나고 다음 해부터 이 멋진 경기장에서 축구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양가감정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전공의 생활을 할 때 이런 멋진 곳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에라도 대구에 이런 경기장이 생겨서 주말에라도 와서 경기를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시민구단 대구 FC는 점점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Dreams do come true"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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