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다미 Aug 22. 2024

화 왔어?머물다 가

감정 받아들이기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뒤 부족함을 느끼고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내면을 이해하고 나와의 대립이 줄어들어 평온함이 가루눈처럼 쌓였다. 그동안 공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감이 차오를 즈음 온라인 교육을 들었다. 교육 들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도덕경을 소개해 주신 존경하는 분의 강력한 추천이라 받아보기로 했다.      


“다미님은 언제 화가 나나요?”

“저는 화가 없어요.”

평온함이 일상이 된 내게 던진 질문에 당연하게 답했다. 누군가의 자극에도 분하지 않았고 내면의 소용돌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실수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이미 오랜 내 잘못을 들여다본 터라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다짐한 뒤였다. 단지 남편과 의견대립은 있었지만, 그 또한 화가 아니라 단순한 대립이었다. 그는 화일지 모르나 나는 화가 아니었다. 그의 감정은 나에게 전이되지 않았다.     


화가 없다고 답한 뒤 “화를 인정하라”라는 강사의 말이 거슬렸다. 화가 없다는 내 말은 인정해주지 않고 화가 있음을 인정하라고 하니…. 어딜 가나 모든 교육이 주최 측의 이론을 바탕으로 진행된다지만, 없는 화를 자꾸 들여다보라는 말은 모순 같았다. 불신이 생겼을까. 이후 다른 질문에 나도 모르게 없다는 말이 몇 번 더 반복되었다.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네요.”

“........네? 그러네요.”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데 무릎 뒤 오금을 툭 건드렸다.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휘청거리고 심장이 불방망이 질을 해대자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웠지만 부정할 수도, 부정할 마음도 없어 바로 인정했다.  

    

이서윤의 《해빙》에서는 ‘있음’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해빙을 읽으며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데 언어는 ‘없음’에 머물러있었다. 화 없다, 돈 없다 등 없는 것을 드러내며 무엇을 얻고 싶어 했을까? 어쩌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없는 환경에서 이만큼 노력했어요. 인정해 주세요.’라는.     


비로소 내 안의 화를 인정했다. 화를 인정하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 순간 분출하지 않았을 뿐 내 안에선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고성과 주먹이 오가는 난투극만이 화의 표현이 아니라 작은 소용돌이도 화의 불씨였다. 만약 화가 없다면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나는 왜 화를 부정하려 했을까.      


화는 어떤 감정일까? 으르렁대는 맹수를 떠올렸다. 사자나 호랑이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포효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화에는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건들지 말라는 경고가 포함되었다. 만약 호랑이나 사자에게 포효가 없다면 하이에나가 눈치를 보려나?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화가 없다면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을까? 맹수의 포효가 모두 공격을 뜻함이 아니듯 화도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일지 모른다. 속으로는 조마조마해도 어깨 펴고 눈빛에 힘이 있으면 당당해 보이듯이 화를 내는 사람 앞에서는 조심하게 된다.     


화를 받아들였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받아들여야 했다. 억지로 밀어내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할 때 소용돌이는 더 크게 일어난다. 인정하라는 말을 밀어낼 때 이미 불평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처럼. 화가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평온과 즐거움만 있는 사람이라면 발전할 수 있을까. 안주하며 머물러있을 것이다. 화가 있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더 애쓰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는지. 푸른 하늘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바람이 불고 비가 와야 하고 구름도 있어야 하듯이 평온을 유지하려면 불편한 감정이 필요함을 알았다. 화는 잠시 쉼이 필요한 순간을 알려주는 장치가 아닐까.      


화를 글로 열심히 푸는 동안 내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불편함이다. 책상 앞에 더 앉아 있고 싶은데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귀찮은 마음이 내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말했다.

“화 왔어? 머물다 가.”

이내 평온이 찾아왔다.     


이 여정을 통해 나는 중요한 진실을 깨달았다. 화는 적이 아니라 동반자이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고, 성장하게 하며, 때로는 필요한 변화의 신호가 된다. 평온만을 추구하는 삶은 오히려 정체될 수 있다. 마치 하늘에 구름과 비와 바람이 필요하듯, 우리의 내면세계에도 다양한 감정이 필요하다.     


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나는 더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화가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환영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한 부분이며, 우리를 더 강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배운다. 그렇게 할 때, 더 깊은 자기 이해와 진정한 평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안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