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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Aug 29. 2024

영화를 통해 만난 내면 아이

인터스텔라

영화가 싫었다. 공포 영화는 무서워서, 재난 영화는 두려워서, 공상과학영화는 이해되지 않아서 싫었다. 폐쇄 공포가 있어 불 꺼진 영화관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이유로 웬만해서는 영화를 안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 인생도 하나의 영화와 같지 않을까? 때로는 무섭고, 두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화의 주인공이다.


생각의 범위를 넓히며 영화가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무섭다며 회피한 생각을 누군가는 들여다보고 만든 이야기였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뭔가 있을 것 같은 무서움이나, 태풍이 불 때 집이 날아갈까 걱정하는 두려운 생각을 붙잡은 사람들 덕분에 공포 영화와 재난 영화가 만들어졌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누군가의 삶을 궁금해한 이들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영화가 우리의 감정과 경험을 반영하는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상과학영화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조금씩 우주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행성과 항성의 차이도 모르던 내가 작년에 처음으로 '인터스텔라'를 끝까지 봤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이론이나 블랙홀 속 과거의 접속 등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그 복잡함 속에 빠져들었다. 특히, 주인공이 블랙홀에 들어가 어린 딸에게 정보를 전하는 장면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만약 영화처럼 진짜로 과거에 정보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궁금증도 생겼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도 매일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소통의 중심에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얼마 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면 아이에게 풍요를 주세요.” 지인과 대화하다 외롭고 우울했던 내면 아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내게 풍요를 입혀주라는 조언을 했다. 어떻게 풍요를 줄까 고민하던 차에, 친한 언니의 공황장애 경험을 들었다. 자다가 호흡곤란이 일어나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내 오래된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그 순간,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겁이 많던 나는 중학생 때까지 엄마 방에서 자다가 고등학생이 된 뒤에야 혼자 자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무언가에 놀라 눈을 떴다. 손을 더듬어 알람 시계를 찾았지만, 어둠이 짙게 깔린 방 안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시계를 찾아 시간을 확인한 뒤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겨우 내뱉는 호흡은 거칠었고, 어둠은 나를 더욱 짓눌렀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호흡을 내뱉으며 빨리 동이 트길 바랐지만, 시간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흘렀다. 무서웠다. 이대로 숨이 멈춰버릴까 봐 두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 같았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는 전환점이 있듯이, 내 인생에도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고통이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 며칠 뒤, 실마리를 찾았다. 남편과 술 한잔하고 이른 잠을 청한 다음 날이었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문득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과거의 나를 안아주기로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공황장애를 느꼈던 날을 떠올렸다. 집을 공사하는 날이라 친구네서 동생들과 함께 엉켜 잠들었던 날이다. 심장의 압박을 느끼며 뱉어지지 않는 숨에 놀라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는 내가 보였다. 옆에 누운 사람이 누군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새벽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다가가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자, 호흡하자. 천천히, 깊게 들이쉬고, 휴~~~.” 그 순간 나는 블랙홀 속에서 어린 딸에게 정보를 준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과거의 나를 도왔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만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답답할 때면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는 호흡을 하며 과거의 나에게 풍요를 주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며 속삭였다. 그리고 “고마워, 정말 네 덕분이야.”라고 말한 뒤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과거의 아픔과 외로움은 모두 이유가 있었다. 어린 내가 겪어낸 고통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더 나아갈 수 있게 했다. 만약 그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순탄한 삶이었다면 나태함에 빠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모든 장면은 의미가 있다. 슬프고 아픈 장면도, 기쁘고 행복한 장면도 모두 우리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이제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어루만져준다. 어린 내가 애써온 시간을 헛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려 한다. 과거의 나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내 인생이라는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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