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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Sep 12. 2024

'이름'이 주는 의미

수정. 맑고 투명한 구슬 같은 예쁜 단어 수정은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내 이름이었다. 이미 어려서부터 잦은 병치레를 경험했기에 오래 살라는 한자의 의미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남들은 예쁘다고 해주지만 한 번도 이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신체 발부 수지부모까지는 아니어도 내게도 뼛속까지 깊은 유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착함과 겸손을 노력하며 살았다.     

결혼 후에도 큰 며느리라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제사와 경조사를 챙기고 어른들께 인정받으려 노력했다. 조부모를 한 분도 뵌 적 없는 나는 어른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듯하다. 따뜻하고 포근한 할머니를 회상하며 노력했다. 치매 걸린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시외할머니까지 계신 남편을 엄마는 당연히 반대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니들을 통해 반대는 소용없다는 것을 아셨는지 안쓰러운 눈으로만 바라보셨다.     

치매 걸린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보살피셨다. 날이 추워질 때나 할아버지 몸이 편찮으실 때 할머니는 가끔 서울에 오셔서 한 달 이상 머무르셨다. 나는 종종 시댁에 방문해서 어린 딸을 업고 어머니를 도왔다. 기저귀 바꾸는 일과 식사를 도와드리고 위급상황에서는 아이를 업고 구급차를 타기도 했다.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명절에는 시댁에서 차례 지낸 뒤 할아버지 댁에 방문했다. 친정은 한 번도 못 갔다. 처음엔 당연히 못 가는 곳이었고 할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갈 수 있었으나 경제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이 아팠고, 남편의 대학 학자금을 갚아야 했고, 실직과 이직이 잦은 탓에 늘 쪼들렸다. 가난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 않았고 불평하면 어른들 걱정하실까 봐 참기도 했다.     


외할머니께서 이모님 댁에 방문하셨을 때는 집으로 모셔서 목욕도 시켜드렸다. 어려운 형편이어도 어른들께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않으려 애썼고 언제나 웃으려 노력했다. 돈으로는 부족해도 몸으로는 충분한 효도를 했다. 그러나 노력은 당연시되고 더 큰 노력을 바라는 시선이 압박으로 느껴져 서서히 거리를 넓혔다.  

  

“나 개명하고 싶어!”


고등학생인 딸이 어느 날 불쑥 내뱉은 한 마디에 콧방귀를 꼈다. 불평 많은 아이라고 무시한 몇 달 뒤, 인생에 위기가 닥치자 내 이름부터 바꾸는 이중성을 띄었다. 유교를 따르는 일은 즐거움보다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후였다. 나에게 목돈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작명을 위해 입금하고 며칠 뒤 몇 개의 낯선 이름을 받았다. 어색한 이름들을 한참 바라보다 ‘다미’에 시선이 머물렀다. 처음 듣는 이름이 어색하지만, 마음이 끌려 선택했다.     


바뀐 이름은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주변인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다미는 인스타를 시작하면서 자주 불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는 공간이 되어 준 인스타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에 정이 들었다. “이름 바꾸고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고 고민했다. ‘이름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개명한 뒤 늘 새로운 나에 대해 고민했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 절대로 후회하는 삶은 살지 말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순간들이 쌓였다. 스스로 정한 이름은 매일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 주었고 내 삶의 주체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 책상 앞에 앉아서 되돌아보는 과정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과거의 나로 돌아가기 쉬웠을 듯하다.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부터 지어주는 이유는 특별한 관계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닐까. 강아지, 고양이도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이름부터 지어주고, 자동차나 물건도 의미를 부여한 순간 특별한 이름을 붙여 준다. 이름은 관계를 이어주는 수단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개명 이후 모든 순간 의미를 부여하고 노력했다. 내 생각에도 스스로 정의한 이름으로 부르고 고정되어 행동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불안은 노력, 두려움은 욕구로 개명했다. 외로움이라고 이름 지어 줄 때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는데 고독으로 바꿔 부르니 훨씬 안정되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더 노력했고 두려움이 찾아오면 그곳에서 욕구를 찾았다. 미래가 두려운 이유에는 잘 살고 싶은 욕구가 담겨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미래는 평온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순간의 의미를 바꾸면서 매일 만나는 ‘오늘’을 들여다봤다. 약 3년 동안 만난 모든 오늘은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과거가 되어준 ‘특별한 오늘’의 의미를 고민하다 오늘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과거가 된다. 과거가 된 오늘을 그때의 오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오늘의 이름은 날짜였다. 9월 22일. 9월 23일. 모든 오늘에는 날짜가 붙었고, 모든 순간에는 시간이 붙었다. 어느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이유이다.     


오늘의 의미를 안 순간부터 모든 오늘의 이름을 소중히 새긴다. 이른 새벽 노트에 필사하며 가장 먼저 적는 날짜. 또박또박 써 나가는 하루하루의 노력이 쌓여 욕구가 현실이 되겠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랑의 장미, 동경 해바라기, 행복 민들레, 순정 코스모스, 상쾌한 기분 금계국, 화해의 개망초, 기쁜 소식 나팔꽃 등등.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모든 오늘은 나에게 매일 다른 꽃을 선물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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