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들고 내 뒤 좀 따라다녀!”
생활용품 가맹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어느 날, 퇴근을 10분쯤 앞뒀을 때 갑작스러운 외침이 들렸다. 혼자 계산대에 있던 나는 고개를 돌렸고, 목발을 짚은 50대로 보이는 남성은 입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손님들이 몰려드는 상황이었고, 귀찮은 일을 맡고 싶지도 않았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뭐? 그런 짓은 못 한다고?”
그는 화를 내며 천천히 계산대로 다가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따가운 시선이 더 뾰족하게 느껴졌다. 애써 다른 손님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마치 그 시선이 피부에 박히는 듯 불편함은 가시지 않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 줄 알아? 너 구하느라 그랬어. 그런데 그런 짓은 못 한다고?"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손님이 소리쳤다. 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를 구했다고? 언제? 어떻게? 억울함이 치밀었지만, 그저 차분하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계산대를 지켜야 해서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설명했지만, 그는 이미 듣지 않고 있었다. 매장 안의 모든 손님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얼굴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때 계산대에 있던 50대 여성 고객이 나서며 말했다.
"이 아가씨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남성은 그 여성에게도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뭘 안다고 끼어들어!"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나는 서둘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도와주려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고, 오히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8분이 한 시간처럼 흘렀고, 밖에 나간 직원과 사무실에 있던 직원이 동시에 카운터로 왔다. 그들은 상황을 파악하면서도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님이 밀려드는 카운터에서 도움을 청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층에 cctv까지 있는 사무실에서 몰랐을 리가 없었다. 대답할 힘도 없었고, 대답하고 싶지도 않았다.
억울함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나를 구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겠다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구인 광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동네에서 입맛에 맞는 회사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내 생각은 오류였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직 구인 광고가 눈에 띄었다. 이력서를 급히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이력서 제출하셨죠? 내일 면접 가능하신가요?”
나는 서둘러 대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다음 날,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이 직장은 꼭 잡아야 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복지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거리와 근무 시간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린 며칠 뒤, 드디어 입사 통보를 받았다. 그 순간 기쁨과 안도가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새로운 직장의 첫날, 대리점의 분위기는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일을 배웠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개인이 운영하는 대리점은 내부적인 문제가 많아 3주 만에 직영점으로 전환되었다. 근무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나는 본사 계약직으로 전환되었고, 급여까지 인상되었다. 갑작스러운 행운을 만났다.
업무가 안정된 어느 날 문득 "너 구하다가"라는 그 남성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불쾌하고 이해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날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면서 그 사건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음을 깨달았다.
때로는 가장 힘들고 불편한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여는 순간이 될 수 있다. 그 남성의 행동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일을 통해 더 나은 길을 찾았다. 생각해 보면, 그는 정말 나를 ‘구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