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와 심리학책 추천해 주세요.”
작년 가을, 갑자기 낯선 사람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업무차 잠깐 소통한 것 외엔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갑자기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답답할 때 연락 달라는 문자 때문이었을까? 알고 보니 딸보다 몇 살 많은 20대이다. 딸을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자로 책을 추천해 드릴 수는 없어요. 잠깐 통화하고 도와드릴게요.”
짧은 전화 통화 후, 좀 더 깊은 대화를 위해 줌 미팅을 제안했다. 낯을 가린다며 고민하는 그녀에게 업무시간이라 긴 통화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토요일 오전 약속을 잡았다. 줌 미팅은 전화나 오프라인 만남보다 시선이 덜 분산돼 집중하기 좋다. 줌은 넓은 공간에 있어도 관계를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토요일 이른 새벽 만나기 어렵다는 문자가 왔다. 실업급여받고 있으니 몇 달 동안 진로를 계획하면서 준비하고 싶은데 아버지께서 지인의 회사에 출근을 강요하셔서 밤새 울었다고 했다. 자기 생각대로 살고 싶다는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약속을 취소했다. 갑작스럽게 시간이 생겼다. 아니 원래 내 시간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허전하고 불편했다. 낯가리는 사람의 도와달라는 요청에는 용기와 간절함이 들었을 텐데.
내 처음이 떠올랐다. 나 역시 길을 찾고 싶었지만, 그때는 내가 찾는 ‘길’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허공을 휘젓듯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무엇을 도와 달라고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던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자로 대화를 이어갔다.
짧은 글을 주고받다 계속 뒤로 물러서는 그녀에게 응원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당기기만 하면 도망갈 것을 알기에 줄을 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문자는 이어졌다.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요?”
“괜찮아. 지금까지 잘해왔어. 나의 모든 경험은 자산이 될 거야. 난 나를 믿어. 아픔, 고난, 슬픔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결정돼. 나는 잘 걸어왔고, 앞으로도 잘 걸을 수 있어. 나는 나니까.”
용기 주는 메시지를 보낸 잠시 뒤 문자를 저장했다는 답변이 왔다. 나와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문자를 주고받는 일은 대화를 겉도는 듯했다. 약속 시간이 아직 안 되었으니 기회가 있다며 용기를 내라고 설득한 잠시 뒤 우린 대면했다.
카누 맛있게 마시는 방법을 아느냐며 운을 띄웠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답을 듣고서도 나만의 방법을 설명했다. 끓는 물에 카누를 타면 너무 진하고 썼다. 그러다 우연히 맛있게 타는 방법을 발견했다. 미지근한 물에 커피를 쏟자 스르르 녹아내렸다. 기다렸다 한 모금 마시는 커피는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커피 타는 방법을 찾은 뒤 나는 카누 마니아가 되었다. 정해진 답을 따르면 쉽지만 스스로 찾아낸 해답이 더 효과적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아직 실업급여받을 수 있는 기간이 몇 달 남았으니 충분히 고민하길 원했다. 방황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지난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다.
“무엇이 가장 어려워요?”
“잘하고 싶어요. 완벽해지고 싶어요.”
“만약 찰흙 덩어리로 꽃을 잘 조각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글쎄요?”
“그냥 시작해야 해요.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시작하면서 방법을 검색해야 교정할 수 있어요.”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시작을 망설이게 만든다. 과거를 돌아보며 ‘잘해왔다’고 인정하는 것과 지금 ‘잘해야 한다’는 기대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에, 스스로 잘했다고 받아들이면 후회와 자책이 줄어든다. 그러나 현재의 일에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면 불안감이 커질 뿐이다.
‘잘’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작할 때는 현재를 찰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만들고 싶은 미래가 있다면 지금부터 조각하면 된다. 바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잘’이란 함정에 갇히면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다가 포기하기 쉽다. 잘하고 싶다면 행동을 고민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낯선 나에게 용기를 내서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를 추천하고 싶어 링컨의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링컨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사람을 다스리는 기술을 깨닫고 난 뒤부터 말을 조심했다. 이후 부드러워진 링컨은 남북 전쟁 당시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패한 부하에게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편지를 썼으나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편지는 링컨이 세상을 떠난 뒤 서랍에서 발견되었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글로 표현한 다음 링컨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편안해졌을 것이다.
“‘부치지 않는 편지’를 써보세요. 누구에게든, 어떤 글이든 좋아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글로 쓰면 자기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마음도 편안해질 거예요.”
아버지는 무작정 싫다고만 하는 딸이 철없어 보일지 모른다. “싫어!”라는 단호한 말보다 잘 설명해드려야 한다며 원하는 상황이나 생각을 먼저 써보라고 권했다. 생각은 추상적이라서 바로 말로 쏟아내면 두서없기 쉽다. 생각은 머리가 하고 글은 몸이 쓴다. 몸이 쓰는 글에는 무의식이 하고 싶은 말이 섞여 있다. 글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신을 이해하고 아버지도 이해시켜 주기가 쉬워질 것이다.
잠시 후 자신을 칭찬하는 글을 쓰고 있다며 글로 표현하니 편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내 이야기를 이해해 줘서 고마웠다. 그녀가 글에 의지하길 바란다. 나 역시 글을 통해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글쓰기가 그녀에게도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힘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