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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다미 Sep 05. 2024

이해의 시작, 병실에서

쓸개 제거를 위해 대학 병원 응급실에 입원한 다음 날, 새벽녘이 되어서야 병실로 이동했다. 아픈 사람 우대정책인지 걸을 수 있는데도 침대로 이동시켜 주는 서비스는 어색하면서도 감동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눈만 말똥말똥 뜨고 천장을 보다 종종걸음 걷는 남편을 봤다. 침대 모서리를 꽉 쥔 손과 걱정 가득한 눈빛이 영락없이 엄마 치맛자락 붙잡은 어린아이 같았다. 못 본 척하고 이내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편의 처진 어깨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다. 내가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서운함을 참지 못하고 몇 날 며칠 입을 다문 덕에 밤중 외출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개인 시간을 못 가졌다. 어린 시절 친척 집에서의 학대받은 기억이 그를 어린아이로 만들었을까. 사실은 나도 어린아이였다. 세상이 무섭고 두려웠다. 외출을 스스로 멈춰놓고 남편을 탓했다. 자유를 줘도 갈 곳이 없었지만 사람 마음이란 요상해서 붙잡으면 불만이 더 생기는 법이다.


나를 걱정하고 있겠지. 누군가가 아프면 원망이나 미움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데 왜 그리 나를 안달복달하며 힘들게 했는지. 힘들었던 기억이 나서 그가 미웠다. 아니, 실은 고맙다. 나를 위한 마음 잘 알고 있다. 내 가슴에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밖으로 나돌 때 얼마나 불안했을까. 퇴원하면 조금 더 따뜻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와서 대낮처럼 밝은 복도를 지나 컴컴한 병실로 들어갔다. 6인 병실, 내 자리는 가운데였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남편은 집으로 돌아간 뒤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모두 잠든 새벽, 낯선 곳에서 숨죽이고 적응을 위한 호흡을 했다. 커튼이 빙 둘러쳐진 좁은 공간을 쓱 훑다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허전함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커튼을 젖히자 침대도 없는 텅 빈 공간이 나왔다. 화장지랑 물병은 보이는데 무슨 일일까. 남의 집 몰래 훔쳐본 것 같아 얼른 커튼을 닫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날이 밝아도 옆자리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 내 자리인데 커튼을 젖히면 작은 방만큼 넓어졌다. '이게 웬 횡재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과감히 커튼을 젖히고 자유로운 오른팔을 접어 베고 누워 하늘을 보니 병실에서 하는 신선놀음 같았다. 왼팔은 통증 해방 염원을 링거에 달았고 오른팔은 정신의 자유를 주었다.


다음날은 바빴다. 엑스레이 찍고 몸무게도 재고 간호사 선생님은 수시로 와서 혈압을 검사하고 수혈했다. 그 와중에도 시간만 나면 커튼을 젖히고 하늘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옆자리 주인은 이튿날 아침 돌아왔다.


"할머니! 호스 또 빼면 다시 묶여야 하니 빼지 마세요. 위험해요."
"으으~~끙"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할머니는 두 손이 묶여있었던 듯했다. 대답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간호사는 나갔고 조용하던 옆자리의 공간은 꽉 채워졌다. 기계 소리와 신음이 동시에 들려왔다. 사물놀이처럼 일정한 장단이 들리더니 잠시 후 "삐삐"하는 뾰족한 소리가 보태졌다.


어려서부터 기계음을 싫어했던 터라 불과 한 시간 만에 천국이 지옥이 된 듯했다. 심호흡하며 귀를 막고 다른 생각을 노력했다. '퇴원하면 삐삐삐~~' 생각의 틈 사이를 비집고 소음이 다시 들어왔다. '할머니 제발' 속으로 애원했다.


잠시 후 옆구리 호스를 끼우는 시술을 받으러 다녀왔다.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참고 식은땀을 한 바가지는 흘리고 온 터라 자고 싶은데 "삐삐삐" 일정한 경고음에 마음이 이지러졌다. 소리가 날 때마다 달려오는 간호사의 발걸음엔 바쁨이 묻어있어 참으려다 못 참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급히 달려온 간호사에게 소음을 얘기하니 죄송하다며 사과한다. 사과받으니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깊은 밤 통증이 심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만히 누워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는데 또 소음이 들렸다. 소음에 남편의 아이 같은 모습이 맥락 없이 얹히며 문득 할머니의 어린아이 시절이 궁금해졌다. 우린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이 있다. 할머니도 예쁜 아이였을 텐데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귀한 대접을 받으셨을 수도 있고 힘든 고난을 이겨냈을 수도 있다.


산소호흡기를 자꾸 빼는 할머니의 고집은 삶을 억척스럽게 개척해 온 의지인지도 모른다. 내 호흡은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담겼을 수도 있다. 할머니의 과거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불편함보다는 안쓰러움이 일자 소음이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먹고 쉬는 시간 퇴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고통을 호소하며 이유를 묻자 당분간 해줄 게 없다며 2주 뒤 재입원하라는 얘기를 듣고 짐을 쌌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짐을 싸 문을 나서는 데 또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힘내세요' 속으로 응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 짧은 입원 생활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남편의 사랑,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어린아이를 보게 되었다. 병실에서 만난 이 모든 경험들이 내 삶의 소중한 조각이 되어, 앞으로의 나를 더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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