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한나라 원제 때 오랑캐에게 시집간 왕소군의 심사를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시로 표현한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에서 유래했다. 진영을 떠나 지금 우리 국민의 마음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가슴이 답답하던 차 ‘카톡’이 울렸다. 지인이 갑자기 춘천행을 제안하는 톡이었다. 창밖에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상념에 빠져 있던 차에 ‘훅’ 들어온 ‘벙개’라 얼떨결에 응했다. 기차 시간을 보니 마음이 급하다. 준비를 하는 둥 마는 둥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서 가까스로 경춘선 itx청춘을 잡아탔다.
차창 밖 가까운 눈발은 세상일처럼 어지럽게 흩날렸지만 멀리 원경에 쌓이는 눈은 차분했다. 세상일도 조용해지려면 멀리 차분하게 내리는 눈처럼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춘천행은 얼마만이던가. 서울서 불과 한 시간. 서울 시내 지하철 소요시간보다도 짧은 길인데 강원도라는 심리적 거리가 그간 발목을 잡았다.
춘천, 순우리말 봄내 옛 이름은 오근내
춘천역에서 바라본 춘천대교. 선사유적을 품은 하중도와 연결된다.
춘천을 순우리말로 봄내라고 부른다. 한자로 봄 춘(春), 내 천(川) 자를 쓰기에 따온 말이다. 봄의 강, 봄이 흐르는 고장이라는 의미로 치자면 봄내 춘천은 봄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춘천은 예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봄이 되면 북한강과 의암호 주변이 푸르게 변하며 꽃이 만발하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적 특징 때문에 ‘봄이 먼저 오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춘천 시민들은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봄내 시민’, ‘봄내 축제’, ‘봄내길’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춘천시청 시정 소식지 이름도 ‘봄내’다. 옛 지명인 오근내(烏斤乃)보다도 이제는 봄내가 더 많이 쓰인다. 오근내는 신라 문무왕 때 불렀던 춘천의 옛 이름이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고구려 때 불렀던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춘천이란 지명은 1413년(태종 13)에 처음 등장했다.
서울에는 오근내란 이름을 가진 닭갈비 전문점이 있다. 용산 백빈건널목 근처 본점을 가진 ‘오근내닭갈비’다. 근처에 ‘오근내2닭갈비’가 있고 출점을 하면 순번을 붙이는데 오근내4는 없다. 한때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선정된 명불허전인 곳이다. 춘천산 생닭 다리살만 이용해 포를 떠서 손님 앞에서 자르는 것이 오근내의 특징이다. 다른 곳은 대부분 손질된 채로 나온다.
서울 명동 본 딴 춘천 명동은 닭갈비 명소
닭갈비 고장 춘천의 대표적 닭갈비 거리인 춘천명동닭갈비골목 입구.
닭갈비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의 향토음식이다. 춘천은 닭갈비 고장답게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이라는 1968년에 조성된 특화거리가 있다. 말 그대로 명동에 있다. 춘천 명동은 서울 명동과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1960~70년대 춘천에서 가장 번화했던 중심가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요즘은 점포임대 플래카드가 곧잘 눈에 띄고 예전만큼 번화하지 않지만 그나마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이 명맥을 유지하면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곳은 닭갈비 전문점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여러 점포가 몰려있다. 우미닭갈비, 명동골목닭갈비, 명동1번지닭갈비, 빨강머리이모닭갈비, 명동산골닭갈비, 구미닭갈비, Hwang’s도깨비집숯닭갈비, 유미닭갈비, 혜정닭갈비, 춘천중앙닭갈비, 춘천본가닭갈비, 대청봉숯불닭갈비, 고려닭갈비, 원조남촌닭갈비 등이 자체 단체도 결성하고 분투하고 있다.
춘천 닭갈비 유명세의 든든한 뒷배는 양계산업
춘천명동닭갈비골목.[네이버지도 캡쳐]
춘천이 닭갈비로 유명세를 탄 이유에는 지역 양계 산업이 든든하게 받쳐줘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닭갈비 문화 덕분에 닭 소비량이 많아지자 양계산업도 발달했다고 하지만 양계가 많아서 닭갈비 식문화가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 순서상 맞다.
닭갈비가 처음 개발된 때는 1960년대 초반 춘천 중앙로에서 돼지고기를 팔던 김영석 씨로 알려져 있다. 한 날은 돼지고기가 떨어지자 급히 닭 두 마리를 사다가 양념구이를 한 것이 반응이 좋았다. 이후 김 씨는 닭을 돼지갈비처럼 포를 떠서 양념해 재웠다 구이로 선보였고 닭갈비 시초가 됐다.
당시 춘천지역에는 양계장이 많았다. 춘천은 강원도 내륙 지역으로 비교적 넓은 토지와 깨끗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런 조건은 양계 농장을 운영하기에 적합하고 가금류 전염병 관리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춘천은 오래전부터 양계 농가가 많고 닭고기 가공업도 발전했다. 경춘선으로 대변되는 관광산업과 연계되면서 관광객들이 닭갈비를 찾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양계산업 성장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닭갈비 골목으로 유명해진 춘천 명동거리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들을 위한 작은 식당들이 있던 골목이었다. 그중 2~3군데 식당에서 싼 가격에 닭갈비를 판매하던 것이 80년대에 들어서 점점 유명해지더니 지금의 닭갈비 골목이 형성됐다. 처음엔 숯불구이였던 것이 철판에 각종 채소와 매콤한 양념을 넣고 볶아 먹는 철판양념닭갈비로 변주가 생겨났다.
골목 가득 닭갈비 굽는 냄새 진동
춘천명동닭갈비골목을 채우고 있는 닭갈비전문점 간판.
춘천역 1번 출구서 중앙로로터리로 10여분을 걸으면 닭갈비골목 입구가 나온다. 여름 주말 저녁 골목에 들어서면 닭갈비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골목 가장 첫째 집 우미닭갈비가 나온다. 개업 55주년의 업력을 가진 곳으로 닭갈비 판을 깨끗이 물로 씻어내는 불판세척실을 따로 두고 있다. 이는 맛은 기본이고 위생을 앞세워 식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다.
유미닭갈비는 매콤한 양념으로 볶는 철판닭갈비와 숯불닭갈비 두 가지 조리법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숯불은 양념, 간장, 소금 세 가지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다양한 맛을 즐기는 식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춘천본가닭갈비는 3대가 50년을 훌쩍 넘게 이어오는 점포다. 신선한 계육만 사용하고 김치는 직접 담가서 내놓는다. 이곳 역시 숯불과 철판 닭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다. 메뉴 중 모둠삼색닭갈비가 인기가 좋은 데 이는 다름 아닌 양념, 간장, 소금구이 세 가지 맛을 뜻한다. 네이밍으로 식객의 입맛을 자극하는 나름 통하는 마케팅이다.
원조중앙닭갈비(간판은 이송금할머니의 춘천중앙닭갈비)는 ‘SINCE 1960년’이라고 써 붙여 놓고 은근 이 골목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대를 잇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 맛이 일품인 곳이다. 이곳 역시 이송금 할머니에 이어 2대째 이어져 오는 노포다.
자가제면 막국수 투박한 ‘강원도의 맛’
명동1번지닭갈비의 닭갈비와 막국수.
필자는 이날 닭갈비 골목 중간쯤 위치한 ‘명동1번지닭갈비’를 방문했다. 이 식당은 ‘춘천명동닭갈비 골목에서 식도락 여행객들이 즐겨 먹는 닭갈비와 막국수의 최고의 맛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고유한 양념과 요리법을 가진 맛있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 메뉴로 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특히 ‘닭갈비와 함께 곁들여 먹는 막국수는 메밀로 반죽하여 직접 뽑은 면을 사용합니다. 5남 1녀 가족 중 3명이 닭갈비가게를 운영하는 닭갈비 가족’이라는 홍보는 면을 좋아하는 식객의 구미를 한껏 당기게 했다. 명동1번지닭갈비는 농가와 직거래하는 춘천닭갈비협회의 고기를 사용한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눈발이 잦아졌다. 일행과 춘천명동지하상가와 춘천중앙시장을 둘러봤다. 칼국수면과 소면을 사려고 요선시장에 있던 요선제면에 들리려 했지만 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춘천중앙시장에서 황소표국수에서 칼국수면을 한 묶음 사 왔다. 며칠 후 마침 멸치 다신 물이 있어 감자 좀 썰어 넣고 칼국수를 끓였는데 면이 윤기 있고 쫄깃한 게 식감이 참 좋았다. 춘천행 ‘벙개’의 소소한 전리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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