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불에 의지해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지금 그 손으로 땅을 파서 감자를 캤음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것은 신성한 노동이고 정직하게 얻은 식사였지." 이렇게 고백하는 고흐의 초기작 <감자 먹는 사람들> 속에는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전통과 현대 등의 두 가지 축이 혼재되어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캔버스에 유채, 82cm × 114cm, 반고흐미술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 속에서 실낱 같은 기름 등잔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빛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농부들 머리 위로 낮게 걸린 채, 그들의 머리 위를 감싸면서 지친 눈동자에 한줄기 빛을 던지고 있다.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목재 식탁 위에는 갓 구운 감자가 따스한 김을 내뿜고 있으며 등잔 빛은 그 위를 환히 밝히고 있다. 긴 노동에 지친 여인의 손길은 커피를 따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면의 평화를 표정에 머금고 있다.
화면을 향해 모습을 드러낸 채 앉아 있는 두 남자와 두 여자, 그리고 등진 채 앉아 있는 작은 아이. 그 아이에게서는 어둠을 감싸고 있는 빛의 광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지조차 불확실하게 보이는 실존의 비현실감을 볼 수 있다. 감자와 커피를 서로 권하면서 먹고 있는 그들의 손등 위로 빛이 잠잠히 비춰지고 있다. 여자 손인지 남자 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하고 굵은 손마디들에서 느껴지는 노동의 흔적들. 고흐는 농부들의 정직하고 진실한 노동의 손에서 아름다움의 빛을 발견한 것이다.
고흐는 1885년 4월에 이 그림을 완성했다. 그해 3월 26일에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았고, 며칠 뒤 3월 30일은 고흐의 32번째 생일이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고흐는 이 그림을 그렸으며,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화면의 왼쪽 모서리 위쪽 벽면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괘종시계는 가난한 농부의 살림살이치고는 제법 장식적인 외형을 간직한 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저녁 7시를 가리키면서 역사 속을 빛냈던 무수한 상징성들을 무언으로 들려주고 있는 듯, 화면의 왼쪽 모서리 위에서 전면을 주시하고 있다.
농부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일상의 저녁 7시, 고흐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던 저녁 7시, 고흐의 탄생을 알리던 저녁 7시, 2천여 년 전 예수가 열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던 저녁 7시, 그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이끌려 내려오던 저녁 7시,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의 길 위에서 만난 두 제자와 식사를 함께하던 저녁 7시. 그 시간들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머금은 채, 땡, 땡, 땡, 땡, 땡, 땡, 땡! 괘종소리로 울리며 다양한 함의들을 소리내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시간 속 이야기의 단서라도 되는 듯, 고흐는 괘종시계가 걸린 벽면 옆 약간 아래쪽에 작은 액자를 배치해 두었다. 액자의 중앙 위쪽에는 십자가의 형태가 희미하게 보이고 십자가 아래쪽 좌우에는 고난과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신성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은 인간 형상이 각각 그려져 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1-14, 목판에 유채, 421x311cm, 안트베르펜 성모대성당
네델란드 출신의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가 빛과 어둠의 영감을 고흐에게 주었다면, 루벤스는 고흐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을 통해 인체 묘사에서 느껴지는 역동적인 생동감과 부활한 예수가 지상에서 어떻게 임재하는지를 질문케 했을 것이다. 성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화된 예수가 아니라, 부활한 예수가 지상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고흐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그리스도>를 통해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화가로서 고흐는 부활한 예수의 일상성을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고난받기 전의 예수를 그린 전통적인 성화라면,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함께하는 부활 예수를 그린 현대적인 성화가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0, 880x70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장
고흐는 성경 속의 빵과 포도주를 가난한 농부들의 일상적인 식사 메뉴인 감자와 커피로, 예수의 실존을 등진 채 빛을 발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작은 아이의 모습으로, 천국을 죽음 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존재를 믿음으로 품는 자들의 일상 속에서 날마다 누릴 수 있는 것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렘브란트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에서 광채를 발하는 예수의 모습은 어둠을 뚫고 공간을 비춰주고 있으며, 두 제자는 예수의 빵을 받는 순간 사라져버린 그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렘브란트, 엠마오의 저녁 식사, 1648, 68x65cm, 루브르미술관 소장
빛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그 빛을 마음속에 품어야 할 것이다. 고흐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농부들의 저녁 식탁 속에 함께하고 있는 빛의 실존을 통해, 지극히 작은 자를 축복하는 신의 은총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모습은 믿음의 눈을 가진 자에게만 보여지는 비현실적인 실존임을, 등진 채 앉아 있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통해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손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손뿐만 아니라 더 깊은 원천으로부터 우리 영혼으로부터 용솟음치는 무엇이라네." 저녁 식사 시간 7시 종소리가 울릴 때, 시공간을 뚫고 들려오는 고흐의 외침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빛 줄기가 식탁 위를 잠잠히 밝혀주고 있는지를 의식하면서 말이다. 고흐는 <감자먹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진실의 빛을 밝히고 있는가' 질문하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읽기 - 진실한 노동의 손을 그리다 < 리뷰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