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날부터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그리고 유독 내 눈에 들어온 '성년의 날'이 있다.
지난 5월 20일 월요일 성년의 날이었다.
성년의 날,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하여 초록 검색창에서 그 정의를 빌려보자면,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주며, 성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하여 지정된 기념일"이라고 한다.
역사도 꽤나 오래된 전통적인 기념일이다. 고려시대 때부터 비롯되어 있다고 읽어볼 수 있었다.
나도 한때는 20살, 성년이 되었던 날이 있었는데기억조차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데 새삼 올해 5월의 달력에서 눈에 띄었던 성년의 날은 아마도 큰아들 녀석때문이었던 듯하다.
큰 아들 녀석이 법적으로도 이렇게 따져도 저렇게 따져도, 동서남북 위아래 다 훑어보아도 20살 성인의 줄을 넘어서는 날이니, 뭐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은 "엄마"로서의 의무감이 조금 생겼던 모양이다.
누구는 향수를 사준다니, 누구는 장미꽃을 준다느니, 누구는 뽀뽀도 해준다던데, 낯간지럽고 거리상 그렇게 해줄 수도 없으니 그냥 특별 용돈을 조금 주면서 축하한다고 전했다.
아들은 의외로 덤덤했다. "뭐.. 그게 뭐.. 어때서" 이런 반응이었다고나 할까.
괜스레 "엄마"의 의무감만 작동되었나 싶었던 머쓱했던 순간이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먼 훗날 서운 터라 말 듣는 것 보다야 뭐라도 챙겨줘 그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데 그 의미를 뒀다.
아들의 독립, 완성되어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얼마 전 4월 중간고사를 일찍 마치고 주말 사이 내려온 아들 녀석.
중, 고등학교 때 시험 스타일과 다른 대학교 시험에 "색다른 시험"이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아들.
교양 과목 1개는 시험 대신 과제로 대체한다는데 그 과제가 너무 어렵다면서 투덜댔지만,
그래도 '입시 시험'이란 압박감이 없으니 부담 없이 가벼이 시험을 치르고 밝은 모습으로 인물이 훤칠해져서 두어 달 만에 집에 왔다.
오랜만에 집밥도 먹고,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술도 진탕 마시며 외박도 하고,
그런 아들 해장 시켜준다고 복국까지 사 먹여 다시 기차를 태워 올려 보냈다.
내려올 때는 기차표를 못 구해서 입석으로 타서 내려오고 , 올라갈 때는 광클릭으로 취소표를 잡아 짜릿하게 기차도 타 보고 뭐든 지금 다 처음이고 신나는 시기이다.
"엄마 나도 아르바이트해 보까?"라고 물어보는 아들, 못 보던 두어 달 사이에 뭔가 많이 달라졌단 생각을 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생각이 기특하기만 했다.
"알바도 좋고 뭘 새로운 걸 배워도 좋고.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보다 뭐든 하는 게 좋아.
돌아보면 지금 1학년 이 시간이 제일 재밌고 좋을 시기야. 아들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고 즐겁게 대학생활 했으면 좋겠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세상 구경 많이 하고 다녀. 엄마는 알바도 좋지만, 알바보다는 즐거운 대학 경험치를 많이 쌓았으면 좋겠다."라고 조언도 해본다. 말없이 끄덕이는 아들 녀석.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반항적이었던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 3년이 지나가고 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통통했던 젖살도 빠지고 누가 봐도 훤칠한 대학생이다. 확실히 뭐든 마음먹기에 있나 보다. 부담이 없으니, 표정도 밝아지고 마음도 너그러워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엄마, 나 다음 주 주말부터 알바 시작할 거야. XX 음식점인데, 주말 토~일 요일만 하는 건데 생각보다 간단하고 괜찮은 것 같아." 목소리에 기쁨과 힘이 가득 차 있다.
"그래??? 잘됐네~~ 축하해~~ 뭐든 해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아들 파이팅!!"
단지 용돈을 채우려고 시작하는 게 아닌 스스로 시간을 쪼개어 무언가 해내려는 마음, 경제적으로도 뭔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듯한 목소리였다.
그저 기뻤다. 전화를 끝내고 청승맞게도 눈물이 조금 맺혔다. 그 순간 그저 기특하고 감사한 마음에 맺힌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