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 털, 항상 그 털이 고민이다. 털털한 여자는 매력이 넘친다는데 왜 털 하나로는 매력이 될 수 없을까. 털이 이성적으로 매력을 줄 수 없다면, 종족번식에 기여할 수 없으니 애저녁에 유전자에서 자연탈락됐어야 되는데 참으로 야속하다. 다리, 팔, 겨드랑이, 수염, 그리고 소중한 그곳에 이르기까지 제모는 언제나 고민거리이자 숙명이었다.
게다가 특히 어느 좋은날 이성을 만나게 되었을때, 어디까지 제모를 해야 되는가는 일상의 난제이다. 대충 머리를 굴려보았을때 주로 욕망에 비례하여 제모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즉, 상대에 대한 자신의 이성적 감정이 제로에 수렴할수록 사회적 미덕을 지키는 선에서 제거 의식을 행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팔과 다리털 정도로. 겉에서 보기에 거북하거나 수북하지 않은 선에서 해결하는 것이 같은 인류, 무성욕의 대상을 만날때 충분할 것이다. 반대로 그와 극단에서, 욕망이 들끓고, 매력이 넘치는 상대를 만난다면 구석구석 꼼꼼히 그리고 가차없이 털을 도려내야 적절하다. 아름다운 그대와 정신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빠르게 가까운 사이가 되기 위해, 자신의 오픈마인드를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해, 머리부터 그곳까지 자신도 당연히 준비되어야 하지 않을까.
깎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이런 이론과는 달리 현실의 제모 케이스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오늘의 데이트는 적당히 괜찮은 남자이다. 아직 푹 빠졌다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외로운 요즘에 놓치기에는 아쉬운 것이 사실. 게다가 오늘 만난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적절하게 뜸을 들였는지 살짝 고민이 든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스킨십으로 달려들 시기라 간주하기에는 그놈의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아직도 의견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좋았을때를 완벽하게 대비하고 싶지만, 또 엄격한 자기비판과 유교걸 마인드가 솟아오른다. 신식 브라질 방식으로 소중한 곳도 아주 시원하게 준비시키면, 혹시나 보수적인 상대가 나를 너무 밝히는 여자나, 아주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오해할까봐 걱정되는 것도 매한가지이다.
또 이런 이성적 성욕의 관점을 넘어서, 자신의 일상과 커리어와 연관된 치열한 고민이 가세한다. 중용의 관점에서, 살짝만 다듬었다가 마치 늦은 오후 아저씨들의 턱에 자라난 솔 같은 수염처럼 그 끄트머리가 까슬해질 수도 있다. 한번쯤 모두 경험해보았겠지만, 까칠해진 그곳은 적절한 직립보행에도 매우 큰 방해가 된다. 삼보 걸을때마다 한번 고통에 시달린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므로. 또한 가까운 시일 내 주요한 행사나 직장 내 발표가 예정되어있다면, 걷기만으로 일상과 업무에 극심한 영향을 미칠 리스크를 절대 간과할 수도 없다.
이 놈의 털! 대체 오늘 그 남자는 어디까지 기대할 것이며, 나 자신은 어디까지 준비해야할까. 카톡으로 데이트 전에 미리 좀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안될까? 이렇게 스킨십의 치열한 눈치전에서, 오늘도 바로 그 제모가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