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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스 레드 Jul 06. 2020

토익 학원에서
외모의 진리를 깨우치다

외국어능력과 외모간 아주 주관적인 상관관계 고찰

 푸릇파릇한 20대 초중반, 강남역에 위치한 영어학원에는 언제나 동년배 친구들이 우글우글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그 어학원은 많은 젊은 청년들이 취업과 자기 개발을 위해 여름마다 방문하는 필수 코스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대, 다양한 이성들을 모아둔 공간이다보니 원래 목적이었던 영어능력개발을 넘어서 이성과의 친목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인지상정. 가장 저돌적이고 정욕이 넘실대는 그 시기에 좁은 강의실안에 빽빽이 모여 앉은 다른 성별의 사람들이란. 그런데 끓어오르는 욕망과는 별개로 예상치 못한 현실의 냉엄한 진리가 꿈틀대고 있었으니, 바로 성적 매력과 지적 능력의 미묘한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두꺼운 교재들과 함께 강의실에 입장했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었다. 분명히 복도나 휴게실에는 얼굴만 봐도 마음과 몸을 설레게 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었다. 그런데 왜 이 강의실에는 뭔가 이성적인 훌륭함을 배제하고, 인류의 공통적인 훌륭함으로 가득한 동료들로만 빽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모두 다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는 훌륭한 분들이었으나, 이상하게 마음속 불꽃을 지르는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첫날만 그런 것은 아닐까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그 이후로도 내리 몇 주 동안 불타올랐던 욕망은 강의실 한쪽 구석에서 힐끔힐끔 같은 반 학우들을 보며 평화롭고 짜게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대학 동기가 입을 열었다. 토익 학원에는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레벨이 낮은 반에는 남녀 구분 없이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레벨이 높은반일수록 이상하게 그보다 외모가 아쉽다고. 당장에라도 성인군자인척 그 친구를 외모지상주의자라면서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그의 논리는 학원 내 현실을 너무나도 잘 담아내고 있었다.


토익학원 불변의 진리?


 시험을 목표로 하는 영어학원은 어느 정도 수강생의 영어능력을 기반으로 레벨을 나누고, 수준에 맞는 맞춤 학습을 지향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외국어 수행능력에 따라 반이 나뉘게 된다. 여기서 만약 외모와 외국어 능력 간에 특별한 관계가 없다면, 레벨에 상관없이 반마다 골고루 외모적인 다양성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얄궂게도 외모와 지적능력 간  뚜렷한 역의 관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혹시 지적인 훌륭함에 집중할수록 외적인 훌륭함이 쇠퇴하는 것인가? 물론 신체적으로 몇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책 속에 작은 알파벳을 읽다 보면, 하체비만이나 거북목, 시력감퇴 등으로 그 신체능력이 분명히 저하되기는 한다만, 실제 성적 호르몬의 원활한 분비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었을까.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 내심 슬퍼서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은 어쩌다 보니 자신도 꽤 높은 레벨 반의 일원이라는 점이었다. 냉정한 자기 비판력을 발휘하자면, 이 사태는 사실 쌍방과실에 가까울 수 있었다. 즉, 상대들뿐만 아니라 본인도 이성적인 외모열위를 통해 같은 반 수강생이 인류적 동지애를 키우는데 아무래도 기여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강의실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토익성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20대 초중반 그 당시 모두는 강남역을 이성을 만나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간주하고 싶어 했다. 어떻게 보면 언제든지 문란하고 방탕해질 유혹을 내심 감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강제적으로 클린한 상태에 놓여지는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더더욱 슬펐던 것은 여름 두세 달간 여러 이유로 열심히 참여했던 강의 후 토익스터디도 여자 절대다수의 놀라운 이성 비율을 자랑했다는 점이다. 확실한 여탕이었다. 분명히 동년배 나이대에 출생한 여자의 수가 더 적다던데, 왜 근처에는 모두 여성뿐이며, 성별만 다를뿐 여성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남성만 있었을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모든 슬픈 여정은 토익 고득점을 받으며 쓸쓸하게 종료되었다.


 지금도 강남역 근처를 지날 때마다 그 당시의 애끓고 시원섭섭한 기억이 솟아난다. 분명히 어느 대학강의에서인가 이제는 외모와 능력 모두 유전자 독식의 논리에 따라 우수한 한 인간에게 수렴하여 발현된다고 들었던 것 같다. 사회적인 우수인자들, 그들은 우수한 능력과 우수한 외모의 반복교배를 통해, 세대가 지나며 점점 더 능력이 훌륭할수록 외모도 훌륭할 확률이 높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카데미와 실제 현실의 갭이 아직도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이렇게 토익 학원은 어쩌다 보니 영어 그 이상의 놀라운 현실 자각 능력을 길러주었다. 안온한 가설과 냉혹한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고 깨우쳐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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