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의 IMF 집단 트라우마
능력이 있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 그 척도는 개인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현실가능성이 좀 적더라도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이상형의 기준을, 누군가는 약간의 현실적인 기준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 최고의 미남이자 몸짱이며,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가문을 넘어 자수성가를 이룬 남자만이 능력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극단적인 기준인 것 같다. 따라서 꽤 범용성이 넓혀, 생활 속 매 순간 심각하게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느정도 경제력 기반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한다면, 이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매끼 대궐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산해진미를 먹지는 못할지라도, 가끔 소중한 사람들과 충분히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경제력을 가진 남자 말이다.
많은 2030 여성들은 이 능력있는 남자를 결혼상대로 주로 선호한다. 그런데 왜 하필 이 경제력이 다른 많은 이성적 조건들보다 최고의 조건으로 손꼽히는 것일까. 단순히 사랑을 위하자면, 눈 앞에 보이는 외모나 신체 같은 외적인 매력이 우수한 이성들이 더 즉각적이고 본능적으로 끌릴 것이다. 또는 정신적 자극을 유발하며, 자신의 지친 영혼을 달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이성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기에 더 적절한 짝꿍이라고 판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력은 이런 본능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일차원적인 요소들을 넘어서 어떤 이유 때문에 가장 선호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히 이 사회적 선호는 때때로 본능적 선호를 압도하며 결혼의 가장 중요한 초기 필터링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많은 여자들이 본인 능력 대비 이상만 높아서,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줄 경제력을 가진 남자에 기생하려 한다고 보아야 할까? 즉, 분수도 모르고 자신과 사회적 레벨이 다른 남자를 원한다고 봐야만 하는 것인가. 그 말은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리다. 주거지 확보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다수 여성이 능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서울 전체 아파트 중위값이 10억에 가까워졌고, 평범하게 혼자 일해서는 더 이상 서울에 엉덩이 붙이고 오손도손 가정을 꾸리기 너무 어렵다. 아니 사실 불가능하다. 현실은 냉혹하고, 경제적 이상에 비해 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슬프지만 어느정도 사실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있는 남자를 원한다고, 분수도 모른다라는 말은 아무래도 상처가 되는 것이,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해 보았을 때 능력있는 남자를 원하는 그 이면의 복잡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재 메인 혼인 연령대인 2030에게 있어서 경제력이란 결국 가족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 2030 세대는 90년대 말 IMF라고도 불리는 외환위기에 유년기 또는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도산했고, 그래서 사실 그 당시 집이 망하거나 어려움에 처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국가 경제의 거대한 몰락과 사회의 변화 앞에 휩쓸려간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으며, 그래서 사실 외환위기에 닥친 가정사의 슬픈 기억은 누구 한 사람의 특별히 슬프고 특별히 아픈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했겠으나, 이것은 어쨌든 현 2030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기억, 집단 트라우마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로 아버지의 단독 소득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던 그 시기, 가장으로 대표되는 아버지의 경제적 몰락은 온 가족을 순식간에 우울로 밀어 넣었다. 개인의 잘못 여부를 떠나서 수많은 가장들이 경제력이 없어 가족 부양에 실패하거나 허덕였고 가정은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절망과 복구 과정을 보면서 자란 이들이, 현재 본인들이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긴 했지만, 그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경제력이 바로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 외상적 상처는 그들의 이상형을 능력있는 남자, 즉,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을 지닌 남자로 설정하게 만들었다. 속물적이라 돌팔매질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모두 더 이상 망한 가정의 흑역사와 고통을 다음 세대에게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는 어쩌면 여성들만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없다.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이 맞벌이를 원하고 있다. 이는 어느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이성 상대를 원하는 것이며, 여성들이 능력있는 남자를 원하는 것과 큰 맥락에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어떻게 보면 현재 대다수의 2030은 성별무관 평등하게 가난하다.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큰 빚 없이 온전한 집 한 채 얻기 어렵고, 원하는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에 경제력 수준의 상대적 격차가 너무 커졌다. 그래서 결혼은 이제 단순히 눈 앞의 매력적인 이성과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을 떠나, 궁극적으로 미래의 행복한 가족을 위해 엄중한 사회적 고려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남녀불문 쌍방의 능력있는 이성을 점점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혼인율, 출산율이 최악이라며 이 세대를 이기적이라 비난하는 동시에, 그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 그들 사이의 젠더, 성별 이슈에 있다고 몰아붙이는 것이 서럽다. 왜 서로가 당연히 남자가 좋고, 여자가 좋지 않았겠는가. 다만 2030의 집단 트라우마가 오히려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그들 대다수 마음속 깊은 기저에 흉터로 남아있음을 가아끔 시간이 있을때 이해해주면 좋겠다. 언제나 경제력은 곧 가족의 행복이었기에, 그들 모두 경제력에서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슬프게도 그들 스스로 충분한 경제력을 가지지 못했기에, 본능적 이성의 끌림과 욕망을 억누르며, 오늘도 결혼과 출산을 유예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