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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스 레드 Jul 20. 2020

커플들이 티파니에 줄을 선 이유

명품 주얼리 브랜드와 연인 관계의 상호보완성

 서울에는 약 10여 개의 Tiffany & Co.매장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나른한 주말 오후, 그 중  매장에 대기줄이 아주 길게 늘어있었다. 매장을 들어가기 위해서 언뜻봐도 최소 30분 이상은 대기해야할 것으로 보였다. 기다림은 질색일텐데, 재미있는 것은 짜증이 나기보다 설렘에 가득 많은 연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대기줄의 거의 절반 이상을 기꺼이 차지하고 있었다. 연인들은 아마도 커플링이나 웨딩링 또는 서로의 선물을 사려고 매장에 방문한 것 이리라. 그런데 왜 이 좋은 주말, 이 수많은 커플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줄을 서서 귀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 티파니에서 그러고 있는 걸까?


 혹자는 경제학 용어를 끌고 와서 쉽게 이 현상을 분석하려 할 수도 있겠다. 즉, 비싸서 잘 팔리는 베블 효과를 예시로 들어서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 커플링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있던 연인들이 브랜드를 고르는 과정에서 티파니가 다른 중저가 브랜드보다 고가의 브랜드이 때문에 선택한 것이라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연인들이 사랑을 위해 얼마나 많은 두뇌싸움을 하고, 그로 인해서 마녀사냥이라는 연애심리 프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었는데, 그들의 머릿속을 너무 단순하게 간주하는 것은 아닌가? 커플들이 그저 비싼 제품을 선호한다거나, 허세가 가득차서 티파니 제품을 사는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오히려 티파니는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내에서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대의 라인업도 많이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베블 효과만으로 설명을 하자면, 티파니가 아닌 평균 가격이 더 높은 타사 브랜드에 커플들이 훨씬 더 많이 몰려 있어야만 한다.


 이에 대해 아주 주관적인 입장에서, 오히려 연인들이 경제적인 방법을 취했다는 판단이 든다. 먼저 이는 절대 티파니가 저렴한 가격이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커플들의 사랑을 프리미엄 브랜드의 힘을 빌어서 제품의 형태로 증명하면서도, 그래도 고가 주얼리 브랜드 내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 용만을 지출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연인들의 추억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도록 물질화되고, 또한 그를 통해 타인들에게도 연인들의 관계와 행복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티파니라는 굳건한 브랜드 이미지는 그들의 사랑에 대한 타인의 의심을 방어한다. 누구도 글로벌 거대 기업인 티파니가 품질에 하자가 있거나 가짜 주얼리를 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인들의 커플링이 공신력이 있고 진짜인만큼 자신들의 사랑도 타인 앞에 진실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티파니가 그 심리를 마케팅적으로 악용한걸까? 에이 아니다. 사실 얼마를 지출했든 연인들의 관계가 그 과정에서 더 돈독하고 행복해지면 된 것 아닌가.


But stiff back or stiff knees you stand straight at Tiffany's 

-영화 Gentlemen Prefer Blondes 중 에서 (20세기 폭스)-


 이십대 초반 만났던 남자친구는 사귄지 얼마 안되었을때 커플링을 맞추자며 종로로 데려갔었다. 종로 3가 8번 출구 근처는 여러 귀금속 도소매 매장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주얼리 시장에 안목이 있고 훤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주얼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훌륭한 클러스터이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친구와 본인은 아무래도 훤하지 않았을뿐더러 주머니 사정도 뻔한 학생 신분이었다. 또한, 지금이야 종로가 익선동이나 북촌 등의 부상으로 힙스터들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으나, 그 당시에는 산업구역이나 도매시장에 가까운 이미지라, 커플링을 맞추는데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동네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직 사회를 모르는 쫄보 이십대가 동네의 분위기에 이미 주눅 들었는데, 처음으로 들어갔던 매장에서 주인은 바로 얼마까지 생각하고 왔느냐며 예산한도를 물었다. 그리고 어수룩했던 그 친구도 순순히 생각했던 예상 소비액을 말해주었다. 처음부터 확실히 지고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결과부터 말하자면,  들어갔던 바로 그 매장, 종로 상가 골목 초입의 첫번 매장에서 가장 저렴한 실버 반지를 맞췄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실 그 친구가 예산을 밝힌 이후로 그에게 부담이 될까봐 여러 반지를 둘러보는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본인 딴에는 개념있고 착한 여자친구 코스프레를 하느라고 불투명한 큐빅이 박힌 은반지를 골랐던 것이다. 슬프게도 그 반지는 그 친구와의 소중했던 기억들도 천천히 갉아먹었다. 제조사가 어딘지도 알 수 없고, 이상하게 품질이 낮은 듯한 큐빅반지 앞에 소중했던 그 친구와의 추억들도 저렴한 돈과 싸구려 물질로 치환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커플링을 맞추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도 그 친구의 잘못은 절대로 아니며, 그의 순수한 마음은 오히려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그와 나 모두 가난한 학생. 더 좋은 것을 살 수 없었던 것이 문제였고, 더 본질적은 문제는 뼛속까지 물질적인 본인이었다. 반지의 낮은 가치를 연인 사이의 의미에 투영해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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