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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스 레드 Jul 27. 2020

PT 트레이너의 스킨십,
그린라이트인가요?

수강생 모집을 향한 치열한 영업전일까?

 PT 트레이너는 유니콘 같은 존재이다. 직장인 주변 생활반경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는 없으나, 헬스장이라는 특정한 장소에 방문하면 어느 순간 짜잔! 하고 등장한다. 그들 등장의 신출귀몰함은 가끔 게임 속 npc와 몬스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트레이너들의 독창적으로 단련된 신체는 그들의 존재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직장인 동료들 어디서 그들과 같이 산술적으로 골격근량이 체지방량을 압도하는 육체를 지니고 있는지. 항상 큰 변화없는 안정된 루틴을 사는 직장인들에게, 그들의 등장은 마치 쓰나미 같은 거대한 변화를 마주한 것과 같다.


 이 전설의 존재를 처음 실제로 조우한 것은 얼마 전이다. 회사에 몇 년 다니다 보니 몸과 마음이 시궁창이 되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 온 세상의 업무상 장난꾸러기들을 만나며 마음의 병이 들어가는 줄은 알았으나, 몸도 이 모양 이 꼴일 줄이야. 몇 년간 제대로 걷지도 않았던 몸, 매일 최소 8시간 화장실 갈 때 빼고 앉아있었던 행동패턴 덕에 있어야 할 곳에는 지방이 없고 복부로 전부 지방이 재배치되었다. 대학교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마 산지에 있는 대학교 덕에 자신도 모르게 생활 속 유산소를 실천했던 것 같다. 어쨌든 더 이상은 거울 속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커질 것 같아, PT를 과감하게 신청했다. 하루 한 시간이 아쉬운 직장인이니까 최소시간 동안 최고효율을 위해, 상대적으로 시간대비 칼로리 소모가 적다는 필라테스나 요가는 옵션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막상 운동하러 가서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전혀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렸다. PT 트레이닝의 넓고 심오한 세계. 묻지는 않았지만 본인보다 연하가 분명한 트레이너는 생활 속에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만날 수 없었던 울퉁불퉁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패션 역시, 신체단련을 위해 최적화된 것이었지만, 남성용 나시와 레깅스는 분명히 살아오면서 본 이성들의 그것과는 다른 비범한 것이었다. 물론 현대의 청년을 40대까지로 재정의 내릴 수 있다고는 하는데, 주변의 직장 동료들, 친구들은 이제 모두 슬슬 외적으로 아저씨, 아줌마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조건들을 하나하나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눈 앞에 조우한 트레이너는 오히려 세월을 두툼한 근육으로 무지막지하게 거슬러 올라간 듯한, 무언가 젊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화룡정점은 바로 스킨십. 예상치 못하게 불쑥 엄한 몸을 찌르는 그 손길이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조선인이자 직장인 여자로서 남녀 간 스킨십은 아직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민감한 급소를 건드리는 트레이너의 터치라니. 물론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회원의 한심한 자세를 보조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지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최소한의 스킨십도, 보통 우리나라에서 남자친구나 이성적 관계가 아닌 이상 흔하게 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트레이너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흔한 경험이 아니었던 만큼 머릿속에 스킨십 케이스 스터디가 덜 되어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스킨십에 대한 조건반사적인 반응으로 혼자 신명나게 북과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을 밤마다 의미없이 검색창에 PT 트레이너, 스킨십, 심리 등을 검색하게 된 것이다.

 

회원님, 오늘은 하체 하셔야죠~^^


 물론 영업, 서비스직에게 홀라당 넘어가지 말라는 교훈은 직장을 다니며 이미 마음속에 체화했었다. 그런데 이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니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속에서는 주관으로 해석하자고 난리였다. 그에 대한 근거는 이성적 호감이 아니고서야 어느 누가 남의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그만큼 살뜰히 챙겨주냐는 것. 오늘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에 회식에서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는지. 주말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업무나 경조사 말고는 크게 연락이 올 데도 없었는데, PT 트레이너가 보내는 시시콜콜한 카톡들이 실시간 마음에 날아와 빠르게 꽂히기 일수였다. 외롭고 건조한 직장인의 삶에 나타난 근육질 유니콘은 이렇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온 마음을 휘저으며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그러나 곧 이와 같은 일장춘몽에 살짝 금이 가게 되었으니, 어느날 다음 시간대 타 여성을 지도해주는 트레이너의 모습을 보면서였다. 그의 행동이 그녀를 대할 때와 본인을 대할 때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는 똑같이 젊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열성적으로 지도해주었다. 그녀의 생활에 대한 사려 깊은 질문들과 가끔씩 그녀의 몸을 조심스레 손끝으로 쿡쿡 찔러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와장창. 본인이 그에게 이성적으로 특별한 존재가 아닌지 혼자 의문을 가지고 있던 만큼 그를 보며 약간의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그에게 자신은 그녀와 동일한 사회적인 레벨의 개체에 불과했던걸까. 중요하고 소중한 회원님의 연장선상에서 혼자 파닥거리고 있는 가련한 여인들이라니.


 그래서 우선 어쩔 수 없이 이 관계를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PT 트레이너와 회원님이라는 경제력이 얽힌 사제관계로 시작한 것은 맞으니까. 또한 비록 이성관계가 아니더라도 비즈니스 관계를 통해 주변에 없는 이렇게 독특하고 훌륭한 존재를  조우하는 것도 또 재미있으니까. 그렇지만 솔직하게 이성적인 텐션이 있었다면, 훨씬 더 재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씩 이 관계의 변질을 바래본다. 그의 어떤 행동이나 대화가 본인한테만 특별하게 다르게 하는 호감행위는 아닌지 사사건건 의심하면서 말이다. 건강하고 훌륭한 유니콘님, 혹시나 저와 더 재밌어질 생각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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