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고와 동물의 판단 중 가장 극명하게 다른 부분이 무엇일까요? 저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에게는 '틀리다'라는 관점은 없을 거예요. 행위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동물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서 충실히 살아가지요.
19세기 초 리젠시 시대 영국, 연예 결혼은 '틀린 것'이었다.
반면,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을 믿는 능력'을 통해 다른 생물 종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거대한 사회를 구축해 왔다고 해요. 물론 히틀러와 같이 옳다고 믿은 잘못된 판단으로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을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상상에는 늘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역사적 흐름에서 봐도 개개인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사랑, 정의, 행복, 국가, 종교, 인간 등과 같은 거대한 철학적인 주제에 대한 옳고 그름을 구분해 왔습니다.
가령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연애결혼이라는 개념도 19세기 초반의 유럽 상류층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그 당시의 귀족들은 가문에 대한 의무로서 결혼을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사랑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의무를 다한 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가문이 정해준 상대와 결혼하지 않고, '사랑'을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의견은 '틀린 것'이라고 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함없이 늘 지켜야할 최소한의 권리인 '인권(Human Right)'이라는 아주 거대한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권'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자 최후까지 지켜야 할 정신이기 때문이죠.
인권에 대한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라는 가장 참혹한 인권 말살 현장에서부터 생겨났어요. 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19년 설립한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는 강제노동 금지, 결사의 자유, 차별 금지, 아동 노동 금지,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에 대한 10대 기본 협약을 정해 전 세계의 근로자들의 기본 원칙을 정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준수도 ILO에서 추진하는 어젠다 중의 하나예요.
엘리너 루스벨트가 세계 인권 선언 초안을 검토하는 모습
전 세계가 참여한 2차 세계대전 이후 개최된 1948년 제3회 유엔 총회에서 세계 인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UDHR)을 채택했어요. 참혹한 전쟁터에서 전 세계가 느꼈던 인권 침해의 사태에 대해 반성하고, 인권을 존중하고자 만들어진 이 선언문은 524개 언어로 번역되어 가장 많이 번역되고, 널리 퍼진 유엔 총회의 문건이 되었다고 해요.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국제 사회의 생각에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탄소중립, RE100 등 비교적 지표로서의 정의가 명확한 환경 분야와 달리, 사회(Social) 측면의 문제들은 여전히 논의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어요. 100년 넘게 논의해왔지만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의 세상은 20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세상이 디지털화되고, 소통이 확대되면서 생각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아직 인터넷이 확산되기 전인 1996년 나이키 공급업체의 아동 노동 이슈 - 지금이었으면 어땠을까?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다른 것'과 '틀린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옳은 행동'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른 행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예전에도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행동의 여파가 이제는 아주 빠르게(실시간으로), 거의 전 세계로 펴져나가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거예요.
지난 Covid 19의 팬더믹으로 전 세계가 고립되었을 때 각 나라의 대응도 제작각이었지요. 전염병이 확산되고, 시체가 버려지는 상황에서도 '자유'를 추구한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도시 봉쇄'를 택하기도 했지요. 문화권, 지역, 국가와 도시의 성격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권(자유)'과 '안전(봉쇄)' 사이의 폭력적인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내놓았지요.
기부 등 사회 공헌 활동은 포용성 측면에서 가장 널리 행해지고 있다.
그래서 기업들은 각자가 먼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자율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가장 먼저 기업들은 사회 공헌, 장애인 고용,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기반의 상품과 서비스 출시 등 포용성(Inclusion)에 대한 진정성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특정한 정체성으로 인해 더 많은 장벽을 경험함으로써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존중하고, 지원하고, 가치를 인정해 주는 환경을 만들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노력이 바로 포용성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의 무력 분쟁과 글로벌 경제 불황, 전염병 확산, 난민 문제 등 여러 이슈들로 인해 불평등, 차별, 비난에 대한 수위가 점차 커지고 있지요. 앞서 얘기한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 위기와는 또 다른 위기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자연환경도 너무 중요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는 사람과 조직, 지역 사회, 국가 등과의 관계 역시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우리나라는 인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인식이 매우 낮다.
이런 배경에서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비율, 소수자 고려 등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지요. 다양성이란 모든 개인 또는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차이를 망라하는 개념입니다. 인종, 민족, 국적,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교육, 결혼 여부, 언어,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정신적 능력, 신체적 능력, 스타일 등 '나 다움'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 포함되지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은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이점(advantages)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반대로 기회에 대한 장벽(barriers)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요.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차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기업의 정의에서 '수익 창출'은 가장 최고의 목표였어요.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이점이나 장벽'으로 인해 '수익의 차이'가 발생한다면 이를 기업의 경영진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전 세계로 퍼진 흑인 인권 운동 - Black Lives Matter
하지만 다양성에 대한 소비자나 정부, 지역 사회 등과 같이 다양하고 강력한 영향을 가진 이해관계자의 의견에 따라 다양성에서 오는 차이를 어떻게 고려해야 할지에 대해 기업들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성정체성, 종교, 신체 사이즈와 같이 다양한 다양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요.
미국의 주택개조 기업 홈디포(The Home Depot)는 조직 내에 다양성 최고 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를 두고 2021년부터 DE&I를 더욱더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해요. 또한 많은 분석 전문가들이 기업 내 다양성과 성과와의 긍정적 관계를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기도 해요.
Lush의 제품 홍보 모델 - 남성/여성, 백인/유색인종, LGBTQ 등 다양성을 반영한다.
최근에는 형평성(Equity) 이슈도 점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어요.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 이슈나, GS리테일의 젠더 이슈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집단 간 갈등은 '형평성'에 대해서도 기업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형평성은 사실 기업 차원에서 쉽게 정의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입니다. 아직 사회적 인식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종종 평등(equality)과 형평성(equity)에 대한 구분을 어려워합니다. 평등이 규칙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개념이라고 보면, 형평성은 사람들 또는 집단이 가지고 있는 불균형을 고려하여 규칙을 차등 적용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형평성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게 됩니다.
평등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동일한 받침대를 주는 것.
대부분의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정책이나 시스템을 만들 때 '평등'을 더 선호합니다.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지요. 형평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불균형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임 승차자(Free-rider)가 생길 수도 있고, 무엇보다 형평성을 인정하는 것이 결과(수익)에서 더 낫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업의 인식도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점차 형평성을 고려하는 측면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DE&I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면서 '공정함'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 이슈가 곧 기업 내부의 이슈로 직접 연결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기업에게도 사회의 정의(Justice)를 묻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우리 사회에는 인종차별, 계급주의, 성차별주의 등 다양한 장벽(barriers)이 존재합니다. 이는 사회의 자원과 기회 접근에 대한 장벽을 형성합니다. 이 장벽을 허물고, 각자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상태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의에 대한 접근일 거예요.
물론 기업 자체뿐만 아니라 기업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공급망과 지역사회, 고객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잠재 고객 등의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야 하고, 기업이 강조하는 DE&I에 대한 철학을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개선 활동은 아직 갈길이 멀어요. 하지만 우리의 인권에 대한 문제이니 반드시 해결해야만 합니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