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주연한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이 영화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Sierra Leone)에서 벌어진 내전을 배경으로 시에라리온의 RUF(Revolutionary United Front) 반군이 다이아몬드의 채굴과 유통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 채굴(採掘(캘(채), 굴(굴)), mining) : 땅 속에 있는 광물을 캐내는 것. 비슷한 말로 채광(採鑛, (광물(광))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상화폐를 새롭게 만드는 의미로 더 많이 쓰여요.
아프리카 대륙 동북쪽에 위치한 시에라리온 아프리카 대륙 동쪽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 사이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은 1961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하였으며,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지요. 하지만 시에라리온에는 다이아몬드, 보크사이트(bauxite), 철광석과 같은 각종 광물들이 풍부해서 정권을 잡아 부정부패를 통해 큰 부를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끊이지 않았던 곳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강제적이고 불법적으로 채굴된 다이아몬드의 거래 대금이 내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테러단체의 자금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니 하루라도 빨리 내전을 종식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인권 유린의 참상 위에서 얻어진 피 묻은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어려있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분쟁광물(conflict minerals)이에요. 분쟁 광물이란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나오는 시에라리온과 같이 내전, 테러 등의 분쟁 지역에서 채굴되는 광물을 의미합니다.
왼쪽 위) 주석 / 오른쪽 위) 텅스텐 / 오른쪽 아래) 탄탈륨 / 왼쪽 아래) 금 (광석상태로 채굴된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과 그 주변국인 우간다, 수단, 르완다, 부룬디, 잠비아, 앙골라, 탄자니아 등 중앙아프리카의 10개국을 분쟁 지역으로 보고, 이 지역에서 채굴되는 Tin(주석), Tantalum(탄탈륨), Tungsten(텅스텐)과 Gold(금)의 4대 광물을 분쟁광물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분쟁 지역에서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채굴되는 4대 광물을 분쟁광물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거예요.
아프리카는 전 세계 광물 자원 매장량의 30%를 보유하고 있고, 이 광물 채굴 비즈니스의 수익이 전체 GDP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광물은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분쟁광물 문제의 핵심 장소인 콩고민주공화국에는 탄탈륨을 얻을 수 있는 콜탄(Coltan, Columbite-tantalite)의 80%가 매장되어 있다고 해요. 또 다른 분쟁광물인 금도 전 세계 매장량의 25%가 콩고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중앙아프리카 10개국 지역에서 불법으로 채굴되는 분쟁광물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재앙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 광물의 판매 수익으로 1998년 8월부터 2007년 4월까지 10년간 540만 명 이상이 무력 분쟁으로 죽어나갔기 때문이지요. 무장 단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75% 이상이 광물 채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요. 분쟁광물 채굴에 7살의 어린이까지 동원되고 있고, 심지어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고도 2달러가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해요.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없이 말이에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는 분쟁지역 사람
분쟁광물은 블러드 다이아몬드처럼 광물의 채굴 과정에서 노동 착취와 학대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광물 판매의 수익이 무장 단체들의 자금으로 유입되어 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분쟁 지역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분쟁 지역의 광산에서 채굴된 광물은 세계 각지의 제련소와 정련소를 거치여만 하기 때문에 광산, 제련소, 정련소 모두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단위에서 감시와 검증을 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 유린하다(蹂躪(밟을(유), 짓밟을(린))-, trample) : 남의 권리나 인격을 마구 억누르거나 짓밟다.
항공, 농업, 자동차, 화학, 통신, 소비자 가전, 전자 장비 등에서 분쟁광물은 많이 쓰인다. 게다가 분쟁 광물은 자동차, 휴대폰, 컴퓨터, 항공기와 우주선, 반도체 등 현대 산업의 총아라고 불리는 첨단 산업에서부터 의료기기나 조명과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원료로 사용되고 있어서 국제사회의 협력이 없으면 분쟁광물의 판매는 계속될 것이 자명했어요. 그래서 국제사회는 분쟁광물에 얽힌 폭력과 인권 유린의 사슬을 끊기 위해 힘을 합쳤습니다.
※ 총아(寵兒(사랑할(총), 아이(아)), favorite) :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는 사람이나 물건
※ 총아(寵兒(사랑할(총), 아이(아)), favorite) :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는 사람이나 물건
※ 첨단(尖端(뾰족할(첨), 끝(단)), peak / edge) : 어떤 물체의 날카로운 가장자리, 뾰족한 끝 부분이 원뜻이나 '최첨단 기술'에서 처럼 가장 앞서 있는 지점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2010년은 분쟁광물의 축소에 의미 있는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국제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책임 있는 광물 공급망 실사 지침(Due Diligence Guidance for Responsible Supply Chains of Minerals)’을 채택하여 분쟁광물을 공급하거나 사용하는 기업이 스스로 분쟁광물 채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만들었어요. 또한 UN 안전보장이사회는 회원국들에게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수입하는 분쟁광물에 대해 공급망 실사를 하도록 촉구했습니다.
※ 초석(礎石(주춧돌(초), 돌(석), cornerstone) : 주춧돌. 기둥 밑에 받쳐 놓은 돌이 원래 뜻이나 무언가를 시작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을 이르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참고로, 초석(초석(초), saltpeter)이라고 불리는 비료나 화약의 원료가 되는 광물도 있어요
전 세계 무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은 2010년 7월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을 입법화했습니다. 이 법에는 분쟁 광물에 대한 규제 조항이 있어, 분쟁 광물의 수입에 대한 법적인 제재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2014년부터는 4대 광물을 사용하는 기업은 분쟁광물과 무관하다(Conflict-free)는 점을 미증권 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어요. 미국 주식시장의 상장사는 물론이고, 그 기업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전 세계의 기업들도 이 규제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2010년부터 본격화된 분쟁광물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운동 덕분에 2013년까지 아프리카 분쟁지역 무장단체들이 분쟁광물의 밀거래로 얻는 수익은 35%로 쪼그라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분쟁 지역 광산의 80% 정도가 무장단체와 무관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해요.
이후 유럽에서도 2017년 1월 EU 국제통상위원회에서 분쟁 광물에 대한 수입 규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법안을 채택했어요. 광물을 제련하고, 정제하는 업체들을 비롯한 주요 수입업체들은 공급원 실사 의무가 부과되었습니다.
분쟁 광물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제재는 더욱 확대되고, 강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분쟁 지역뿐만 아니라 채굴 과정에서 강제 노동, 아동 노동과 같은 인권 침해나 환경을 파괴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채굴되는 광물까지 감시하자는 의미의 책임광물(Responsible minerals)의 개념이 2016년부터 등장했어요.
분쟁의 자금줄이 되지 않고,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채굴된 광물
- 책임광물(Responsible minerals)-
포스코퓨처엠에서 관리하고 있는 책임광물 지 책임광물 개념의 등장에 따라 대상 지역과 광물이 훨씬 커졌어요. 책임광물에는 강제/아동 노동이 강하게 의심되는 인도네시아산 주석과 콜롬비아산 텅스텐도 포함되게 됩니다. 기업들은 4대 광물 또는 그 광물이 포함된 원자재나 제품을 수입할 때 반드시 분쟁광물이나 책임광물의 원산지와 광산에 대해 확인을 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분쟁광물 원산지 확인보고서나 인증을 통해 분쟁광물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어요.
분쟁광물과 책임광물과 무관한 광물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책임광물 글로벌 협의체인 RMI(Responsible Minerals initiatiative, 책임 있는 광물 조달 공급 연합)가 검증한 광산과 공급사에서만 원료를 공급받는 것이 좋아요. RMI에서는 2008년 설립된 국제기구로서, 분쟁광물과 책임광물이 채굴되는 국가와 지역, 채굴 기업 및 유통 기 등의 정보까지 회원사에 제공할 뿐만 아니라, 채굴 과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특히 전기차와 휴대폰의 배터리로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코발트도 RMI의 감시 대상입니다. 휴대폰과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면서 수요가 증가한 코발트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분쟁광물과 함께 부산물로 산출되기 때문이에요.
※ 부산물(副産物(버금(부)), by-product) : 주요 산물의 생산 과정에서 추가로 생기는 1차 상품이 아닌데도 상품 가치가 있는 물건. 이 뜻에서 확장되어 어떤 일을 할 때 부수적으로 생기는 일이나 현상의 의미도 가지고 있어요. 副는 버금(부)인데 주된 것이 아닌, 부수적인 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고민 없이 선택하는 다양한 용품들 속에 강제 노동으로 고통받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고통이 담겨있지는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더 싸고,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대가로 그들의 인생을 억압하는 것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