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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Jan 04. 2024

 테우를 움직이는 힘

제주 축제 자랑 - 이호테우축제(2)

짝꿍에게 축제 첫날 나를 대신해 다녀와 달라는 부탁까지 한 건 이호테우 축제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였다. 이호테우 축제는 무려 문체부 선정 "K-컬쳐 관광 이벤트 100선"으로, 나도 몇 번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서 '소문난 잔치'에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에 축제 현장에 미리 다녀온 그는 앞으로를 내다본 듯 더위에 쓰러지지 않게 밥부터 든든하게 먹자고 제안했다.


축제장인 이호테우 해수욕장에 도착한 때는 한낮의 여름이었고, 살구빛 모래는 태양을 미친 듯이 반사해 그 자체로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해수욕장의 헐벗은 사람들은 바다수영을 즐기느라 바빴고 행사요원들도 더위를 피하는지, 테우 타기 행사장에는 테우 한 척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축제를 위해 차린 부스에서는 이호동 자원봉사자 분들이 축제 성황을 위해 소원 쓰기 이벤트나 테우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고 있었고, 심지어 기름을 두르고 지름떡을 구워 내시던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30도를 훌쩍 넘긴 더위에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담은 흰 천막 근처로 얼씬거리는 사람은 보기 힘들었다. 인근 카페로 피신하면서도 혹시나 올 관광객들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나마 잠시 후 원담 고기잡이 체험 시간이 되니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원담 고기잡이는 제주의 또 다른 전통 고기잡이 방식으로, 바다에 돌담을 둘러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하도록 해 손으로 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곧이어 성인 종아리 반쯤 물이 찬 원담에 양식장 광어가 골고루 뿌려졌다. 바닥에 붙어 잘 움직이지 않는 광어는 남녀노소 손으로 잡기에 제격인 생선이었고 사람들은 벌써부터 바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초등학생과 유아가 먼저 들어가서 잡다가 5분쯤 후에 성인들이 들어간다는 주최 측의 설명에 사람들이 온순하게 “네~”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5분 후 성인들의 입장 허가를 알리는 징이 울리자 오십 명은 되는 성인 남녀가 아이들이 물장구치던 원담으로 전력질주를 해 들어갔다.


그 자비 없는 몸짓에 아이들은 사색이 되었고, 수백 개의 팔과 다리(사람들은 거의 물속을 기다시피 하고 있었다.)가 물을 휘젓는 통에 원담 안쪽은 금세 흙탕물이 되었다.



그래도 바닥에 붙어 잘 움직이지 않는 습성을 가진 광어는 사람들의 손에 쉽게 잡혀 올라왔다. 그 사이에도 운이 갈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들은 울상이었다.


시무룩해진 조카를 위해 기꺼이 흙탕물을 후비던 삼촌은 “어어~?!”하며 조카의 기대 어린 시선을 끌었으나 두 손 엄지를 엮어 흔들며 나비를 낚았다고 능청을 떨었다.


조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미역만 손에 잔뜩 쥔 채 자리를 떠났다. 이쯤 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어 한두 마리씩은 잡아 떠났고 원담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만 남아 어딘가 우울한 분위기가 흘렀다.


원담 고기잡이에 성공한 사람들은 잡은 광어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줄을 섰고, 모래사장에는 간이 광어 손질 공장이 열렸다. 싱크대까지 설치된 그럴듯한 천막 안, 누군가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광어의 피를 빼고 있었고, 줄지어 늘어선 봉사자들은 저마다 뼈를 바르거나 초장을 짜는 등 각자의 임무를 다했다.


참여비 1만 원을 받았다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못해도 한두 마리씩은 건져 올린 광어와 손질비용을 감안하면 남는 게 없을 체험이었다.





원담 고기잡이 체험 후 테우 타기 체험을 한다기에 냉큼 줄을 섰다. 형형색색의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오르기를 기다리던 앙증맞은 아이들을 보니 발길을 돌리고 싶었지만 현장감이 담긴 글을 쓰기 위해 테우에 타고야 말겠다는 취재정신(?)으로 다른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테우에 올랐다.


테우는 갈옷을 입은 어르신 세 명이 붙어 밀어주고 끌어주는 힘으로 간신히 나아갔다. 한 분은 테우 위에서 장대로 바닥을 밀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분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배에 붙어 힘을 쓰고 계셨는데 중간에 어르신 한 분이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 발을 헛디디며 바닷물을 마시기도 했다.


보트로는 5초 만에 갔을 바닷길을 어르신들이 나무배를 밀고 끌며 5분여 넘게 가는 모습을 배 위에 타서 지켜보고 있으니 나이 든 부모님의 등에 철없이 올라탄 장성한 자녀처럼 느껴져 절로 숙연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탄 아이들은 어색해서인지 겁이 나서인지 얼굴이 굳어 있어서 테우 위에는 전반적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짧은 뱃길 끝 반환점을 돌아 해변가로 돌아가는 길, 해변으로 연결된 밧줄을 한번 끌어 보겠냐는 물음에 함께 배를 탄 아이들은 즐거워하는 기색 없이 서로 눈치만 봤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왠지 모를 책암감을 느끼며 냉큼 밧줄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장대까지 잡고 밀어보라는 권유에 벌떡 일어나 장대로 힘껏 배를 밀자 “힘이 좋네~!" 하는 어르신들의 격려가 이어졌고 때아닌 전완이두근 운동을 멈출 수 없어 내릴 쯤엔 팔이 후들거렸다.(그 후로 하나도 하지 못했던 팔굽혀펴기가 가능해졌다는 후문이 있다.)






테우에서 나를 움직인 힘은 책임감이었다. 테우를 경험해보지 못했을 관광객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에 온전히 참여하겠다는 책임감, 즐거우셨으면 좋겠다고 마련한 자리에서 즐겁고자 하는 책임감, 타인의 축제를 위해 팔 걷고 나선 분들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알고자 하는 책임감.


그렇다면 테우를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해변가에서 바다를 향해 나서는 테우는 사람의 힘으로 움직인다. 테우 위에서 장대로 바닥을 힘껏 미는 힘이나, 맨몸으로 파도에 맞서며 바다에 몸을 담그고 직접 테우의 몸체를 미는 힘이다. 그러니 테우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사람들의 힘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심 그 답이 ‘자긍심’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쨌거나 이호동 주민들이 지키고자 하는 전통인 제주의 고기잡이는 그들 덕분에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이호테우 해수욕장, 이호테우 빨강말 등대처럼 이호동과 테우는 한 몸이 되어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테니 말이다.


솔직히 이호테우 축제는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날이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들의 참여는 저조했고, 축제를 이끌어가는 이호동 분들 또한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나라 전체가 그러하듯 축제를 만들고 이끄는 사람들도 급격히 나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자긍심에서 나왔기를 바랐다. 그래서 더위 속에서 자리를 지키고 광어를 손질하고 테우를 끄는 것이 조금은 덜 힘들었기를 바랐다.


잊혀 가는 전통을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긍심,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는 자긍심, 20년 넘게 축제를 열어온 이호동과 이호동 사람들에 대한 자긍심.


테우가 만선의 꿈을 꾼다면, 이호동 사람들은 20년 전 처음 축제를 시작할 때 가진 꿈을 아직도 꾸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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