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축제 자랑 - 제주 해녀 축제(2)
해녀축제에는 매년 해산물 경매 프로그램이 열린다. 작년 해녀 축제에 현금을 챙겨 오지 못해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쟁취하는 것을 보며 입맛만 다셨던 나는 미리 ATM기에서 현금을 두둑이 챙겼다.
일요일 아침부터 축제를 찾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기에 사회자가 해산물 경매가 시작될 것을 알리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경쟁자가 늘어나니까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으면 하는 옹졸한 생각을 한 것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주 축제 사회자는 백에 구십이 제주 사람이다. 그래야 삼춘들의 강한 제주 방언을 알아듣고 받아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경매 프로그램의 경우 삼춘들이 왜 자기 말은 안 듣냐며 항의하기도 하고, 경매가 한창인 와중 무작정 돈을 들고나가 구매를 요구하기도 하며, 심지어 돈이 없는데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모두 작년 해녀축제에서 실제 목격한 일이다.) 사회자의 위기대처능력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사회자는 첫 경매품으로 제주 수산협회에서 기증한 10만 원짜리 해산물 세트를 소개했다. 다른 경매와 동일한 방식으로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사람이 가져가는 식이었다. 3천 원이었던 시작가가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원으로, 3만 원으로 올랐다.
금액이 높아질수록 손을 드는 사람이 적어졌고, 결국 두 명의 삼춘만 남았다. 5만 원 이상까지 이어진 치열한 접전 끝 한 삼춘이 해산물을 쟁취하고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회자가 5만 원에 해산물 세트를 사 간 삼춘에게
“혹시 앞으로 기분 상해도 화내지 맙서”
하고 능청스럽게 당부하곤 경매 방식을 바꾼 것이다. 같은 상품에 대해 자신이 종이에 적은 금액을 맞추는 사람에게 경매품이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래 이거지!’
작년 해녀축제에서 이 혁신적인 경매 방식에 사람들이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낙찰해 가는지 목격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내가 이렇듯 속으로 쾌재를 부를 때 제주 삼춘들은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복식호흡으로 아무 금액이나 외치는 중이었다.
삼춘들은 사회자가 들을 때까지(혹은 듣건 말건) 손을 번쩍 치켜들고 금액을 외쳤는데, 금액이 좁혀질수록 발을 동동 구르며 목청을 높였다.
누군가 "삼만원!"하고 외쳤을 때 사회자는 "다운!"을 외쳤고, 그 후로도 가격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먼저 오만 원이 넘는 금액을 주고 해산물 세트를 사 간 삼춘의 얼굴은 (아마도) 붉그락푸르락 해졌을 것이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회자는 가격이 내려갈수록 엉덩이를 들썩이는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사로잡았다.
삼춘들이 벌떡 일어나 포효에 가까운 목소리로 금액을 외치는 동안 나는 그들의 기세에 입술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저들 사이에서 경매에 참여해 해산물을 따갈 자신이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우리네 일상과 직장생활에서 저런 복식호흡이 필요한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더군다나 나는 필요한 말만 하자는 주의의 내향형 인간이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 금액이나 외치는 상상만으로도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는 중이었다. 작년 경매에서는 오히려 현금이 없어서 방관자로 서 있었기에 입맛이라도 다시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냉철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외치면 되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문제는 다른 삼춘들의 목소리를 뚫고 나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소리를 높여야 한다는데 있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철학적인 생각으로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잠시 도피했다. 함께 온 친구라도 손을 들어보라며 재촉해 보았지만 내향형 인간인 그의 상황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두 명의 내향인은 두툼한 지갑을 주머니에 꽂은 채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그 후로 참여할 수 있는 몇 번의 경매 기회가 있었지만 삼춘들의 기세와 포효에 결국 입도 못 떼고 지갑만 만지작 거리다 경매가 끝났다.
먹고 싶던 전복이 나오지 않아서 그랬다며 애써 쓴웃음을 지었지만 깊은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는 법.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을 때마다 애써 뽑아 온 현금 때문에 두껍게 느껴지는 지갑만큼 실망감이 크게 느껴졌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매 후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축제장 옆 해녀 박물관에 들렀다. 마침 ‘제주해녀, 대한민국 독도를 지켜내다‘라는 이름의 특별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도 해녀들이 독도를 찾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라고 한다. 일제의 착취에 반발하며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펼치기도 했던 해녀들은 수탈을 피해 독도까지 물질을 나갔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품질 좋은 독도 미역을 채취하러 원정 물질을 가곤 했는데, 독도 미역은 길고 싱싱해 값이 많이 나갔다고.
독도 원정 물질은 개인의 생계를 위한 투쟁에서 시작했지만, 나아가 해녀들은 독도의용수비대의 경비활동을 도우며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도 힘을 보탰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기념하며 2022년 해녀들을 독도로 초청했다.
“독도야 잘 이시다냐, 다시 오난 눈물 남쪄!”
스무 살 무렵, 젊은 날 방문했던 독도를 다시 찾은 해녀들은 감회에 젖었다. 생계를 위해 원정 물질을 나갔지만 독도를 지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자긍심 또한 큰 힘이 되었다던 그들은 이번이 살아서 마지막 방문이 아니겠냐며 담담히 독도를 바라보았다고.
전시를 둘러보며 몰랐던 역사를 꼼꼼히 읽어내고 그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경매에 져서 허탈해하던 마음은 까맣게 잊은 후였다.
제주의 역사나 문화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해녀들은 언제나 무언가를 지키고 있었다. 동료 해녀의 목숨을, 가족의 생계를, 제주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그들은 알았을까. 큰 흐름 속에서 그들이 지켜낸 것은 2016년 세계문화유산이 되고야 만 자신들의 문화였고, 키워낸 수많은 제주의 훌륭한 자녀들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영토였다는 것을.
어쩌면 일평생 무언가를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이라 항상 간절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경매에도 이렇게 진심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향형 인간 둘은 돌아가는 길에 제 값을 주고 해산물을 사 먹었다. 해산물 경매에 필요한 기세와 복식호흡을 연마하기에 아직 우리는 연륜이 부족했다며 서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