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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Jan 19. 2024

해녀는 못 말려

제주 축제 자랑 - 제주 해녀 축제(1)

해녀란 누구인가. 이들은 호흡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수심 10m까지 잠수하며 바다를 누빈다. 이들의 시간은 ’물때(조수간만의 차와 같은 바닷물의 주기적인 변화)‘에 맞춰 흐르고, 고무 잠수복이 없던 시절에도 ‘물적삼’과 ‘물소중이(전통 해녀복)’만 입고 한겨울 바다에 뛰어들곤 했다.


물소중이


그렇게 생계를 일구고 ‘학교바당(가난으로 학교 운영조차 힘들던 시절, 학교 바당을 지정해 이곳에서 난 해산물 판매 수익으로 교실을 짓고 학교 운영비로 사용했다.)‘을 지정해 자녀들을 키워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에 맞서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니 가히 제주도의 어벤져스라 할 만하다.


격동의 역사와 고난을 가로지른 해녀들의 희로애락은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라,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런 해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해녀 박물관에서는 매년 ‘해녀의 날‘인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끼고 주말 동안 해녀축제가 열린다.






해녀의 날 당일 축제장에 도착하자 풍성한 해산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전복협회에서 전복을 구워 무료로 나눠주고 있어서 도착하자마자 전복을 맛볼 수 있었고, 은갈치 축제 홍보를 위해 갈치를 나눠주는 부스도 있었다.


해녀포차에서는 뿔소라 구이와 해물파전, 성게국수 등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줄을 서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서 천막 안에서 해녀분들이 쉴새없이 파전을 굽고 면을 삶고 있었다. 해녀의 날에조차(아니, 어쩌면 해녀의 날이기에) 해녀들은 포차 안쪽에 쪼그리고 앉아 요리와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오늘이 해녀의 날임을 실감한 것은 축제 여기저기에서 해녀들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한 아저씨가 해녀분들이 모여 있던 테이블에 뿔소라 구이를 한 접시 사다주자 감사하다며 웃는 소리, 해녀인 네가 물 한 병만 공짜로 받아 오라고 등을 떠밀자 못 이긴 듯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는 오늘이 해녀의 날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어딘가에서 북과 장구를 치며 여러 명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포차 옆 공터에서 해녀들이 자체 제주 민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부르는 소리였다.


음악 소리를 따라갔을 때는 앞서 부르던 노래가 막 끝나던 참이었는데, 누군가 타이밍 좋게 “이어도사나!”하고 외치니 다 함께 ‘이어도사나’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이어도사나’는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나 아들이 이어도에 살고 있다고 위안하며 부른 제주 민요다. 이렇듯 슬픈 유래를 가지고 있지만 웃음으로 눈물 닦기의 민족답게 종국에는 흥겨움만 남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해녀들이 그물을 던지는 시늉을 하듯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당겼다가 하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구경꾼들은 그 몸동작을 따라 하거나 혹자는 자신만의 블루스를 추는 중이었다.


잔디밭에서 열린 간이 버스킹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지만 진짜 공연이 무대에서 시작될 참이었다.






해녀 삼춘들이 노랫가락을 뽐내는 해녀노래자랑 시간. 첫 번째 참가자를 부르기 전, 사회자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뽕짝 음악을 틀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굳이 유혹할 필요도 없이, 음악이 시작함과 동시에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듯 삼춘들이 여기저기에서 몸을 흔들며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못 이기는 척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힘겹게 나간 한 백발의 삼춘은 무대 아래쪽으로 나가자마자 골반을 튕기기 시작했다. 다른 삼춘은 양 콧구멍에 휴지를 꼽아 길게 늘어뜨린 채였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휴지와 말 그대로 한 몸이 되어 춤을 췄다.


주인공이 노래를 하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해녀들의 진짜 공연은 무대 바로 아래에서 펼쳐지는 중이었다.


해녀 노래자랑이 시작되고 처음 나온 삼춘은 성산 출신 40년 경력의 해녀였다. 무대에 오르기 앞서 파마도 새로 말고 나왔다는 삼춘은 첫 순서라 그런지 긴장한 채였는데, 두 주먹을 꽉 쥔 채 노래를 부르는 삼춘을 보니 떨리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모슬포 해녀 삼춘의 무대에는 모슬포 수산협회 과장님과 동료 해녀들이 무대에 함께 올라 현수막을 들고 열띤 응원을 펼쳤다.


덕분에 꽉 찬 무대구성을 보여준 모슬포 삼춘에게 사회자가 보기가 참 좋다며 모슬포 해녀들끼리 친하게 지내냐고 물었다.


삼춘은 “목숨을 봐 줘야 하는 일이니 가족처럼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 후로도 종종 동료 해녀들이 함께 응원차 나와서 무대를 빛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언더스테이지는 더욱 달아올라 음식을 하다 말고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낀 채 나온 삼춘, 은갈치 축제 홍보 부스에서 나눠준 어른 손바닥만 한 반짝거리는 은색 홀로그램 스티커를 이마빡에 붙인 채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삼춘이 추가되었다.


삼춘들의 흥과 열정은 토요일뿐 아니라 일요일까지 이어졌는데, 다음날 방문한 해녀축제에도 삼춘들이 직접 준비한 크고 작은 공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작년 축제 때 보았던 해녀들의 뮤지컬이 기억에 남아 또 하는지 묻기 위해 운영 요원들을 찾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듯한 학생 두 명에게 앞으로 있을 공연의 순서와 내용에 대해 자세히 물으니,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곤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희도 잘 몰라요. 그냥 어르신들 하고 싶으신 거 하는 거예요.”


그랬다. 해녀들을 위한, 해녀들에 의한, 해녀들의 축제는 어떤 것을 해도 괜찮은 못 말리는 해녀들의 어린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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