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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Dec 26. 2023

[특별 편] 오색만선기 테우, 풍성한 멜잡이를 꿈꾸다

제주 축제 자랑 - 이호테우축제(1)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 서울에 가 있는 짝꿍으부터 '이호테우축제' 첫날인 7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본인을 대신해서 가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들었다.


매달 제주도 축제를 찾아다니고, 축제에서 얻은 영감을 글로 옮기기 위해 고뇌해 온 노고를 알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글까지 써야 할 것이라고는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축제 첫째 날 일정을 브리핑해 주었는데 오후 6시부터 테우(제주의 전통 배) 진수식(進水式)을 시작으로 식전 축하공연, 개막식, 멸치잡이 재현, 해녀 횃불 퍼레이드, 불꽃놀이 등 일정이 가득했다.


금요일 저녁을 집에서 쉬면서 한가하게 보내기는 그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달력에 '이호테우축제'라고 일정을 기록했다. 


미리 알아보니, 테우는 제주도에만 있는 원시적인 고깃배의 일종으로 통나무 10여 개를 엮어서 만든다고 했다. 이호동은 예전부터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멸치잡이를 해 왔다고. 이 전통 어로 문화를 계승하고 이호동을 알리고자 2004년부터 개최된 것이 '이호테우 축제'였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이호테우해수욕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고, 서핑과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십여 명 남짓했다.


한가로이 여름을 즐기는 인파 사이를 헤집고 행사장으로 다가가니 나무배 위 차려진 고사상이 보였다. 나무배는 테우인 듯했고, 나부끼는 오색만선기를 보아하니 테우 진수식이라는 것도 결국 물고기 많이 잡을 수 있기를, 바다에서 죽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것일 터였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그 시절에 선조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다에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뿐이었으리라.



의식이 끝나고 진행요원들이 바퀴가 발명되기 이전에 그러했듯 바닥에 통나무를 줄지어 깔고 통나무의 굴림마찰력을 이용해서 테우를 바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앞에서 당기는 사람, 뒤에서 미는 사람, 그리고 통나무를 테우가 나아갈 길로 옮겨놓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땀을 흘리며 사회자 구호에 맞춰 테우를 옮기는 진행요원들 주위로 해수욕장 피서객들이 구경난 듯 몰려들었다.


필자를 포함한 구경꾼들은 손 하나 까딱 않고 테우가 진수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고,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테우는 힘겹게 바다 위로 옮겨졌다. 테우가 무사히 진수되니 풍물패는 이를 축하하듯 사물놀이를 시작했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해변으로, 물속으로,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개막식 다음 순서로는 해녀 횃불 퍼레이드와 이호테우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멜(멸치) 그물칠이 준비되어 있었다. 


과거 제주도에서는 테우를 이용해서 해안에 동그랗게 그물을 치고 해변에서 그물을 당겨 멸치를 잡았다고 한다. 이를 재현하듯 한쪽 해안가에서 테우가 그물을 놓으면서 빙 돌아 멸치 떼를 포위하여 반대편 진행요원에게 그물 원줄을 넘겨주었다. 사회자는 멸치를 잡으면 관광객들에게 나눠주겠다며 기세등등하게 이목을 끌었다.


이미 어둑해진 저녁, 무대에서는 그물을 당기는 사람들이 힘을 내도록 노동요를 불렀고 진행요원들은 멸치가 틈새로 도망갈세라 신중하게 그물을 걷었다. 미묘한 긴장감이 도는 순간이었다. 그물을 모두 끌어올리자 잡힌 멸치를 보려고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저기 미역이 붙은 빈 그물만 올라왔고, 기대했던 멸치잡이 재현은 멸치와 함께 구경꾼들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사회자는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둔 멜 튀김이 있으니 축제 일정이 다 끝나면 나눠주겠다며 아쉬워하는 구경꾼들을 달랬다.







축제 초반에 진수식이 끝나고 사물놀이가 한창일 때 필자는 진수된 테우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테우 위에 서서 노를 저어 나아가려던 진행요원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앞으로 가지 못하고, 해안선을 따라 옆으로만 이동하더니 결국 119 시민수상구조대 고무보트에 인양되었다.


선외기의 힘을 빌려 먼 포구로 옮겨지면서 점점 시야에서 사라지는 테우를 바라보자니 무동력선에서 동력선으로,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세대교체를 느꼈다.


지금은 어선이 있어서 적은 노동력으로도 많은 멸치를 잡을 수 있지만, 한때는 이곳 마을 사람들도 저 테우를 타고 멸치를 잡았을 것이다. 


테우로 그물 쳐서 잡은 멸치는 소금에 절여서 멜젓도 담가먹고 멜쌈밥, 멜회무침, 멜국, 멜튀김, 멜조림 등으로 요리해 먹었고 지금도 제주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파도에 맞서 노를 젓는 방법도 까먹었을 바닷가 마을이지만 진수식을 통해 풍어를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은 이 축제를 통해서, 조상의 마음처럼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오색만선기를 단 테우도 멸치를 한가득 잡는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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