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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May 29. 2024

길의 매력, 걷기의 매력

올레 걷기 축제(3)

길을 걸으며 기억에 남은 풍경들이 몇 개 있다. '놀멍쉬멍' 정신을 자꾸 상기시키는 아름다운 풍경과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평소 한적하다 못해 조용했을 길가로 갑자기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지자 한 삼춘은 귤을 따다 나온 듯한 모습으로 급하게 종이에 '한 봉지 2천 원'을 휘갈겨 쓰고 귤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냉큼 귤을 샀다. 귤을 산 사람들은 무거워서 얼른 먹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그 후로 길가에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으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삼삼오오 귤을 까먹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며 예쁘다고 감상에 젖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만의 속도로 걷기를 택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늦게 도착할 수는 있어도 길이 주는 모든 것을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돌담 너머의 귤밭을 구경하느라, 코스 중 일부인 오름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느라, 호숫가의 윤슬을 구경하느라,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오카리나 공연을 구경하느라. 길은 나의 발걸음 또한 자주 멈추게 했다.



오래 걸으며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이렇듯 다양한 풍경은 다리와 허리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다. 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길 자체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올레길을 만들며 하나의 코스 안에도 다양한 풍경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들었다. 그 말대로, 이번 올레길 13코스에는 숲길, 돌담길, 호숫가, 대나무길, 마을길 등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숲길을 열심히 걷다 보면 마을길이 나타났고, 또 마을길을 열심히 걷다 보면 어느샌가 대나무길을 걷고 있었다. 갈림길에서는 길이 예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을 정도니 걷는 즐거움에서 풍경이 차지하는 비율은 꽤나 큰 듯하다.


길이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삶에서도 다양한 국면이 있겠지만 모두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스쳐가는 길 위의 사람들과 잠깐의 이야기로 따스함을 나누고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잠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 길에서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값진 경험이 아닐까.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길마저 자세히 살펴보면 감탄할 것들이 있었으니, 그건 발견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길을 온전히 걸어내니 어엿한 올레꾼이 된 듯한 모습에 자부심이 들었다. 올레꾼으로써 동료 올레꾼들의 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올래패스' 앱을 켜고 들어가니 커뮤니티에 올레꾼들이 매일같이 각자 자기가 걸은 올레길 후기를 올리고 있었다.


"3일 차도 즐거웠습니다^^" 같은 후기를 올리는 아이디 옆에 완주꾼 14회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완주를 14회 한 올레꾼인 것이었는데, 게시글을 내려보니 각기 다른 횟수로 올레길 전체를 완주한 완주꾼들이 정말 많았다.


60대는 노인정에서 명함도 못 내미는 것처럼, 서울대에서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한 걸로 자랑하지 못하는 것처럼 올레꾼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올레길 전체 완주 1회조차 '애기 완주꾼'이었던 것이다. 완주는 무슨, 이제 막 첫 코스를 완주한 나는 또 한 번 올레꾼들의 길에 대한 진심에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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