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
에디터. 김윤선 사진. 김동규, 박기훈, 이병근, 최진보, 텍스처온텍스처 자료. 스테이폴리오
“부산에 사는 32세 시민단체 활동가 솔지 씨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답답한 원룸을 떠나 제주의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는 그는 여행 중 사람들로 붐비는 관광명소는 찾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지역의 작은 서점을 통해 제주의 숨은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클래스를 신청했다. 오늘은 우연히 만난 여행자, 지역민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서울에 사는 35세 회사원 희성 씨는 올여름 휴가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스테이를 예약했다. 1박에 30만 원 대의 다소 높은 가격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책과 영화를 맘껏 즐기고 조용히 욕조에 몸을 담가 사색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특유의 예스럽고 안락한 분위기의 한옥이라면 결코 아깝지 않은 가격이라 판단했다. 내내 숙소에 머물며 이따금 서촌 골목의 소박한 식당에서 건강한 음식을 즐기는 온전한 휴식이 이번 휴가의 테마다.”
더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머무는 곳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거나 지역에 동화되어 머무는 행위 자체를 여행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인식의 저변에는 2000년 중반부터 올레길과 저가 항공의 등장 등으로 급부상해 이미 하나의 키워드가 된 제주,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도시인의 감성을 자극했던 에어비앤비Airbnb가 있다. 호텔이나 집 안에서만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와 스테이케이션의 유행도 한몫했다. 호텔과 모텔, 그도 아니면 펜션 일색이었던 국내 숙박 업계에 ‘스테이stay’ 개념을 알리는 데 일조한 숙박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Stayfolio’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머무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곳’을 찾아드립니다.
스테이폴리오의 시작엔 ‘지랩Z-Lab’이 있다. 지랩은 건축학과 동문인 노경록, 박중현, 이상묵이 2014년 만든 건축사무소로, 설계부터 기획과 운영, 브랜딩을 포괄하는 회사다. 지랩이 만든 좋은 공간, 나아가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혼이 담긴 ‘머무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곳’을 모아 의미 있게 조명하는 채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로 이상묵 대표가 2015년 스테이폴리오를 창업했다. 스테이폴리오 이름에는 ‘스테이stay’와 ‘포트폴리오portfolio’를 결합해, ‘스테이를 큐레이션 한 포트폴리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커머스와 미디어의 컬래버레이션
스테이폴리오 웹사이트는 숙소의 스토리를 볼 수 있는 매거진 코너가 매출과 직결되는 예약 기능보다 강조되어 있다. 즉 커머스가 미디어 뒤에 가려져 있는 흔치 않은 구조다.
이에 영감을 준 것은 패션·라이프 스타일 온라인 편집숍인 29CM. 이름의 ‘C’는 커머스Commerce, ‘M’은 미디어Media를 뜻한다. 상품의 스펙보다 브랜드 고유의 가치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커머스와 미디어가 균형을 이룬 큐레이션 플랫폼을 고안한 이창우 전 29CM 대표의 생각은 이상묵 대표에게 높은 공감대를 샀다.
이 시대의 여행법
스테이폴리오가 큐레이션 하는 공간은 숙박 시설이라기보단 ‘집’에 가깝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집과 동네에 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의 분위기와 더불어, ‘살아 보는’ 경험이자, 소유보다 점유의 개념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이 시대 소비 주체인 밀레니얼에게 소구하는 바가 크다. 이 시대 우리에게 여행이란, 스테이란 무엇일까. 머문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더 나아가 집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막연한 질문에 하나의 해답을 얻고자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에게 대화를 청했다.
머무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숙소,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 하나요?
요즘 커피 좋아하는 사람 많죠. 맛보면 무슨 커피인지 단번에 알 정도로 준전문가급인 사람도 주위에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어떤 문화가 대중화되고 그 수준이 점차 상향 평준화되는 것처럼 숙박 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예쁘고 멋지게 꾸며 놓은 공간은 많아요. 전문가보다도 대중이 그걸 더 빨리 알아보죠. 그러니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시대예요. 그런 시대 속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기만의 관점과 색깔을 가졌는가’예요. 그걸 발견하는 우리만의 각막과 촉이 필요하죠.
스테이폴리오 웹사이트는 예약 기능보다 숙소 소개와 스토리텔링이 더 눈에 띄는 구조예요. 이런 구성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는 자사가 만든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를 오픈소스로 웹에 공개했어요. 힘들게 쌓아온 기술을 대가 없이 공개한 이유가 뭘까요? 궁극적으로 시장 선점과 확대를 위함인데, 전기차 발전이 더뎌 여전히 제조단가가 높은 상황에서 정보를 공유해 더 많은 기업이 함께 하며 발전을 가속하자는 취지죠. 이 생각에 백번 동의합니다. 스테이폴리오의 핵심은 콘텐츠예요. 설계 과정과 아이디어, 공간에 얽힌 이야기, 다양한 시각 자료와 정보를 잘 정리된 큐레이션을 통해 공유하잖아요. 그게 ‘플랫폼’의 본질이죠. 스테이폴리오는 ‘미디어 커머스’를 지향하는데, 우리가 단순 중개 사이트였다면 성장이 어려웠을 겁니다. (웃음)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게스트를 찾기 위해서예요. 소개 글을 읽고 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태도가 명확하게 다르거든요. 공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만든 의도는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는 게스트라면 숙소를 더 잘 이용할 수 있겠죠.
여타 중개 플랫폼과 차별점은 ‘지스테이ZStay’라는 자체 기획 스테이가 있다는 점인데요. 구체적인 기획 과정을 설명해주시겠어요?
지스테이는 지랩이 직접 기획과 설계, 브랜딩까지 총괄하는 프로젝트예요. 비유하자면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시리즈’와 같은 맥락이죠. 지스테이 숙소는 현재 30개가 있는데, 스테이폴리오에서 독점으로 중개하기 때문에 타 플랫폼으로부터 경쟁력을 가져요. 공간을 브랜딩하고 경험재로 바꿔나가는 플랫폼으로서 정체성이 공고해지고 있죠. 이제 건축주는 물론 건축가들도 저희를 찾아요.
호스트에게 구체적인 운영 프로그램을 제안한 사례도 있는 거로 알아요.
기획 단계부터 호스트와 함께 콘셉트를 잡은 사례가 많아요. ‘브리드 인 제주 Breathe in Jeju’는 요가를 테마로 한 스테이인데, 호스트의 처음 의견은 단순히 제주다운 집을 짓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땅을 보러 갔는데 ‘요가’라는 주제가 떠올랐습니다. 알고 보니 호스트가 오랫동안 요가를 해온 분이더군요. 이곳에선 호스트가 아침 7시마다 무료로 요가 클래스를 열어요. 이게 바로 저희가 생각하는 베스트 아이덴티티예요. 여기에서 확장해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 부부가 운영하는 팜 스테이 ‘송당일상 Daily Songdang’,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하루를 묵는다는 콘셉트의 북 스테이 ‘일독일박’ 등 경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스테이를 기획했죠. 이렇게 호스트의 관점과 색깔이 있는 스테이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합니다.
‘영혼 없다’라는 유행어가 있죠. (웃음) 스테이폴리오의 정체성은 결국 ‘영혼 있는’ 콘텐츠가 든 공간을 만들고, 찾고, 또 소개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마니아예요.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이라는 말로 다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쉘shell은 껍데기, 고스트ghost는 영혼이죠. 쉘이 작동하려면 고스트가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스테이폴리오는 쉘을 만들기도 하고 고스트를 찾는 일도 하는 회사인데, 살아 있는 고스트, 자기만의 콘텐츠로 이루어진 고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 혹은 장소를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시로우 마사무네(士郎 正宗)가 그린 동명의 만화 원작과 이를 기반으로 오시이 마모루(押井 守)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화두를 던지며 암울하고 어두운 인류의 모습을 그렸다. 전 세계적으로 SF 실사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호스트만의 철학과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겠네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생각과 철학에서 가장 큰 영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모든 호스트가 자기만의 생각과 철학을 갖기는 힘들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장소예요. 복합적인 아이디어를 쉘 안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이라야 하죠. 앞서 ‘브리드 인 제주’가 요가 테마를 구상하는데 장소의 분위기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요. 때로는 저희 스스로가 고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미 많은 경험과 운영의 노하우를 가진 숙련되고 진화한 고스트들이니까요. 제가 5년째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데, 가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오직 자연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죠. 몸과 마음의 휴식을 테마로 한 ‘와온waon’은 그 생각이 모티브가 됐어요. 뜨거운 온탕에서 바깥의 정원을 바라보는 장면이 제가 그린 첫 번째 씬scene이었죠.
인상적인 ‘고스트’를 가진 스테이를 꼽아주신다면.
‘탈로서울Taloseoul’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기존 스테이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에요. 서울 신사동의 조용한 골목에 있는 30년 된 빌라를 리모델링한 집으로, 호스트가 수년간 세계 각지에서 모은 알바 알토 디자인의 빈티지 아르텍Artek 가구와 조명, 오브제, 김환기 화백의 작품까지, 감도 높은 호스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북유럽의 생활 문화와 공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이죠. 거기 있는 가구를 판매할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계속 새로운 제품을 채워 넣어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겠죠. 앞으로 이렇게 진짜 고스트가 있는 공간이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
서울 불광동 주거지에 자리 잡은 ‘여정Yeojeong’ 역시 기존 스테이와 다른 결을 지녔어요.
‘여정Yeojeong’은 임태병 건축가의 ‘중간주거’ 연작 중 세 번째 작업인 ‘여인숙’ 2층에 마련된 1인을 위한 공간입니다. 중간주거는 집과 동네의 경계에서 유연하고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해 느슨하게 점유하며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주거 실험이에요. 본래 이곳은 ‘여인숙’과 그 근처에 있는 중간주거 두 번째 작업인 ‘풍년빌라’ 식구들을 위한 손님 방이기도 해요. 따라서 이곳에 머문다는 건 두 집 식구의 초대를 받은 손님 혹은 식구가 된다는 의미가 있어요. 같은 층에 있는 임태병 건축가의 사무실에서 숙소 열쇠를 넘겨받고, 풍년빌라 1층 스낵바 매점에서 웰컴 드링크를 마시고, 식구들이 추천하는 주변 맛집을 탐방할 수도 있죠. 여정은 호스트와의 교류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지속해서 좋은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선 운영과 관리가 관건일 텐데요. 거기에 드는 품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호스트나 매니저가 직접 운영, 관리하는 공간도 있지만, 저희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대부분 IoT 기술을 활용한 원격 무인 시스템으로 관리해요. 스테이바인더staybinder의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데, 문단속 확인과 게스트의 입실 알림, 냉난방과 조도 조절, 창문과 커튼 블라인드 조절, 가구와 서랍 여닫음까지 숙소에서 일어나는 상세한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요. 전력 공급 원격 제어로 화재를 예방하고 전력 낭비를 줄일 수 있죠. 스마트폰에 깔린 시스템으로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제어할 수 있어요. 물론 지역에 상주하며 청소와 기타 관리 업무를 하는 매니저도 있습니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숙소에 그런 첨단 기술이 내장되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웃음)
시국과 더불어 비대면이 중요해졌는데, 호스트로선 ‘직접 가지 않는다’는 편리함이, 게스트 입장에선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안전함에서 새로운 장점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핫 이슈중 하나가 자율 주행 자동차잖아요. 이런 기술 역시 좀 더 고도화되면 게스트를 스스로 인지하고 제어하는 고도화된 기술이 개발되리라 봅니다.
스테이폴리오가 큐레이션 하는 공간은 숙박 시설이라기보다 ‘집’에 가까워 보입니다. 스테이폴리오가 지향하는 ‘머무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스테이폴리오는 집에 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처음 내건 슬로건이 ‘살고 싶은 집, 머물고 싶은 집’이었죠. 이는 결국 ‘머문다’라는 개념과 ‘산다’라는 개념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여기에는 ‘다거점 생활 문화’라는 전제가 있고요. 가령 누군가 내 집에 여행을 와요. 그럼 그동안 나는 다른 집에 가서 사는 것이죠. 저희에게 문의나 의뢰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세컨하우스를 스테이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사는 집과 내가 호스트인 머무는 집을 가진 사람들이죠. 다른 예로 우리나라에 전세 제도가 있잖아요. 전셋집과 내가 호스트인 집 사이를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풀 안에서 맞교환도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이 개념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어드레스ADDress’라는 주거 구독 모델인데, 정해진 구독료를 내면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지방의 빈집이나 유휴 숙소를 고친 공간에서 무제한으로 머물 수 있는 다거점 코리빙co-living 서비스예요.
흥미롭네요. 그렇게 된다면 집과 스테이의 경계가 무색해질 것 같은데요.
같은 맥락에서 집도 휴대폰처럼 ‘개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휴대폰 고르듯 원하는 집을 골라 약정을 걸고, 할부로 돈을 내고, 약정이 끝나면 휴대폰이 내 소유가 되듯 집도 내 소유가 된다는 개념이죠. 휴대폰은 약정이 끝나면 내 것이 되고, 보상을 받아 기기 변경까지 할 수 있는데, 월세는 돈을 내면 끝이라니 억울하잖아요. (웃음) 그래서 가설을 세워봤어요. 자본가나 기업이 자투리땅을 매입해 건축가가 취향과 감성, IoT 기술이 집약된 집을 설계해요. 하나의 제품으로써 만드는 거예요. 애플이나 미니의 제품처럼 팬덤이 있어서 되팔아도 비싸게 팔 수 있는, 감가율이 낮은 집을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집과 땅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모든 재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이 되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거든요. 땅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개통하는 집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감가율 낮은 집’은 어떻게 짓죠?
먼저 저렴한 땅을 매입해 유저를 대상으로 펀딩을 합니다. 그 다음 프로그램과 설계안을 제안해 온라인 투표를 하고 예약을 받은 비용으로 공사를 해요. 추후 펀딩 참여자에 한해 거주나 숙박이 가능하도록 예약시스템을 활용하고요. 수익은 매입자금과 시설자금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4평 오두막인 ‘어라운드폴리 캐빈’은 제조가가 7000만원인데, 이걸 저렴한 땅에 놓는다면 감가율은 더 낮아지겠죠. 사실 지금 서촌에서 그 실험을 이미 시작했어요. 매입부터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죠. 이게 작동된다면 건축주가 없어도 사용자를 모아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이 증명되겠죠. 더 발전시키면 개통하는 집에 가까워질 테고요. 이 개념을 확장해 이런 개통하는 집이 여러 개 있다고 하면 유저는 약정을 걸고 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죠.
실제로 실행된다면 약정을 걸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얼마 전에 휴대폰 하나를 더 개통하면서 알게 됐는데, 휴대폰 개통이 금융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더군요. 그러니까 금융 신용도가 떨어지면 개통이 안 된대요. 개통하는 집의 약정 가부 역시 개인의 신용도로 판가름할 수 있겠죠. 결국 금융이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요즘 토스와 카카오페이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웃음) 신용 조회가 굉장히 간편하잖아요.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으론 어렵겠지만, 토스 같은 플랫폼을 통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촌에서 마을 전체를 호텔로 만드는 ‘서촌 유희’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죠. 어떤 기획인가요?
서촌 전체를 하나의 호텔이라고 생각하고, 서촌의 스테이와 여러 좋은 공간과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연결하려는 시도예요. 말하자면 ‘수평적 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개념은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에서 이미 많이 적용된 개념이에요. 특히 일본 하나레Hanare 사례에서 영감을 얻었죠. 일반적인 형태의 호텔은 게스트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객실이 층마다 마련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동하는 수직적 구조잖아요. 이걸 수평적으로 적용하면 길과 골목은 엘리베이터가 되고, 스테이는 객실, 동네의 맛있는 카페와 음식점은 호텔 F&B 시설이 되는 거죠. 저희가 운영 중인 ‘한 권의 서점’은 매달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서점이자, 호텔 리셉션이기도 해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서촌 도감’은 호텔 기프트 숍이죠. 여기에 라운지와 스파 등 호텔의 기능을 재해석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기획해 마을 전체에 연결하면 호텔보다 더 재미있는 경험이 일어날 수 있어요.
호텔의 기능이 마을에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네요. 다른 지역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주 조천 지역에서 적용을 고려하고 있어요. 현재 그곳에 7개의 스테이가 있거든요. 조천은 제주에서도 유일하게 개발이 더딘 곳이라 막지 않은 용천수가 23곳이나 있거든요. 용천수를 보호하는 동시에 거기에 스토리텔링과 콘텐츠를 불어 넣어 동네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스미는 여행을 주제로 만드는 게 참다운 의미의 마을 재생, 도시 재생이 될 겁니다.
머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높은 요즘입니다. 이 시대 우리의 삶에서 여행과 스테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더 나아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간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스테이든 집이든,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곧 여행이 될 수 있고, 그 공간이 경험재로서 역할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개성 있는 집이 탄생할 수 있는 선순환을 그려보고 있어요. 스테이폴리오가 그런 선순환의 가치 사슬에 좋은 영향을 주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테슬라 자동차를 처음 탔을 때 ‘회생 제동’이 걸린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전기자동차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반 내연기관과 다른 방식으로 자동차의 속도를 줄이는데, 제동 시 발생하는 물리적 힘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하고 브레이크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막습니다. 그 방식이 바로 회생 제동이죠. 액셀을 밟으면 배터리가 소진되고, 액셀을 떼면 회생 제동이 걸려 역추진을 하면서 배터리가 충전돼요. 그런데 액셀을 세게 밟았다가 떼면 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차가 섭니다. 그 순간 폭발적으로 충전이 일어나죠. 이걸 보고 떠올린 게 집의 ‘온 오프On off’ 개념이에요. 집 한 채가 있다고 쳐요. 그 집이 내가 사는 ‘집’일 때는 액셀을 밟은 ‘온On’ 상태가 되고, 다른 사람이 와서 ‘스테이’가 되면 ‘오프off’, 즉 회생 제동 상태가 돼요. 앞서 말씀드린 개통하는 집 개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결국 스테이와 집은 종이 한 장 차이고, 어떤 것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의미를 가질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간은 그런 곳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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