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로플 Jun 19. 2022

단출한 부녀의 저녁식사

부모님이 약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

토요일이었다.


엄마는 결혼식으로, 막내딸은 친구 약속으로 나가고 없는, 그래서 8살 먹은 강아지와 쓸쓸하게 혼자 집에 있을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녁 7시 무렵,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잠에서 막 깬 목소리였다. 식사를 하셨는지 여쭈어보니 아직 저녁 식사는 드시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와 다름없는 집이었지만, 습습하고 넓은 집에서 방금 잠이 깬 아빠의 모습은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 누구보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원하지만 그동안 가족과 데면데면 지내 온 시간들, 그리고 아빠가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뇌경색 후유증은 아빠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사람들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셨다. 뇌경색이 아빠를 지나간 후부터는 바깥 외출을 더 꺼리신다. 엄마와 동생 용돈을 줘야 한다며 은행에 들르는 단 하루, 40년 결혼생활 아빠의 첫 고정수입인 국민연금이 통장에 입금되는 날을 제외하고는 결코 스스로 먼저 나가는 일이 없으시다.


예전에는 아빠의 이런 모습이 싫어서 아빠를 설득해 보려고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빠의 이러한 모습은 내가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은 점점 약해지고 점점 쓸쓸해지는 아빠의 모습을 ‘나의 아빠’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배달을 기다리면서 일부러 안방에 앉아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눴다. 안방의  한쪽에는 아빠가 그동안 읽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안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아빠였지만, 오늘만큼은 국어 교사인 나도 읽기 싫어하는 어려운 책들을 두루 섭렵하는 지식인 아빠로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길어서 있지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많은 책들을 매일매일 꾸준히 읽으셨냐고 하니 아빠는 머쓱해하면서도 당신께서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을 소개해 주셨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건넨 둘째 딸의 감탄이 아빠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돈가스를 먹으면서는 아빠의 옛날이야기와 가족들 이야기를 했다. 거의 10년 이상을 항상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똑같이 말씀하시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들어드렸다.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목소리에 조금 더 생기가 돌았다.


식사를 거의 끝날 무렵에는 아빠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스마트폰 메시지를 켜면 메시지 옆에 항상 파란 점이 찍히는데 아빠는 그 점을 찍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원격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조종하는 것 같다고 하신다.


뇌경색 이후로 아빠는 사람들이 자기를 미행하는 것 같다고, 그리고 자신을 해치려고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하나뿐인 아빠가 피해망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마주해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설득해보려고 해도,  화를 내고 눈물 콧물을 흘려도 아빠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버지에게 ‘내 핸드폰도 새로 메시지가 오면 파란색 점이 뜬다’고,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것은 아니라고 먼저 운을 떼 보았다. 하지만 아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아빠의 휴대전화는 디지털 사회에 발맞추어 아빠를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조종을 시도하는 스마트폰이었다.


이성적인 설득을 포기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을 때 다시 전화를 걸지 마시라고.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전화를 걸게끔 유도한 뒤 개인 정보를 빼내 가기도 한다고. 게다가 자녀의 이름을 사칭해서 보이스 피싱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만 연락을 하시라고 당부드렸다.



그제야 아빠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항상 입맛이 없다고 밥을 남기던 아빠가 오늘은 고봉밥을 다 드셨다. 혼자 먹기 싫어 엄마가 올 때까지 배고픔을 참고 있다가 식사를 하셔서일까? 모처럼 자기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였을까? 어찌 되었든 오늘 아빠의 관점에서는 만족스러운 식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밥을 안 먹겠다고 떼쓰는 아이 앞에서 묵묵히 밥을 먹는 언니처럼, 입맛이 없다며 끼니를 거르는 아빠를 식탁으로 모시고 나와 아빠 옆에서 밥술을 떠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점점 약해지고 어려지는 아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작가의 이전글 책임감이 독이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