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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Feb 16. 2024

아무튼, 글쓰기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양말을 읽고

출판사 위고에서 퍼내는 <아무튼 시리즈>는 특정한 어떤 것(아이템, 행위, 운동 등. 그 무엇이든)을 좋아하는 작가가 그 어떤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엮어 퍼낸 에세이 시리즈다. 시리즈가 60개도 넘고 <아무튼, 쇼핑>, <아무튼, 요가>,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등 범위도 다양하니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 한 가지쯤은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눈에 제일 처음 들어온 건 <아무튼, 양말>이었다. 내가 브런치에서 연재 중인 <6년차 직장인, 2억 모은 저축법>에서도 언급한 내용인데 나는 양말을 좋아한다. 패션적으로 생각해도 경제적으로 생각해도 양말은 소중하다. 나는 알록달록 원색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취향을 옷에 적용했다가는 자칫 패션테러리스트라는 별칭을 달고 다닐게 뻔하다. 그래서 남의 시선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그렇다고 또 엄청 고려하진 않는다.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옷은 상대적으로 평이하게 입고, 양말 원색 포인트를 주는 편이다. 그리고 양말은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훌륭한데, 물욕이 올라올 때 가방이나 옷으로 돌아가는 시선을 양말로 돌려 양말을 사는 편이다. 가방이나 옷에 비하면 양말 아무리 비싸도 10분의 1 정도밖에 안 하는 수준인데, 그 만족감은 10분의 9 정도로 꽤 크다. 휘향 찬란한 무늬와 오색빛깔의 양말을 고르고 있노라면 젤리와 사탕이 가득한 과자가게에 온 아이가 된 것처럼 마음이 몽글한 게 기분이 들뜬다.



그래서 <아무튼, 양말>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취향의 작가의 삶을 엿보는 게 즐거웠고, 몰랐던 양말 브랜드를 알아가는 게 뿌듯했다. 다음으로 끌리는 <아무튼, 목욕탕>을 집어 들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아무튼은 뭘까? 여러 가지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일 순위는 '글쓰기'에게 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글쓰기>


초등학교 1학년 때 써냈던 시 <노란 은행잎>이 학예회 출품작으로 뽑히면서부터 막연하게 작가를 꿈꿨다. 커서 아름다운 동화를 써내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정규교육과정 12년, 대학과정 7년(휴학 3년......)을 거치며 꿈은 낡고 쇠퇴했고 돈벌이라는 목적만 쫓아다니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새벽까지 자소서를 써 내려가던 이미 3년 늦은 대학교 4학년 취준생은 뭐 새로운 취업 소식이 없나 대학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다 우연히 대학 문학상을 발견했다. 시, 단편 소설, 서평, 수필 부문 각 응모 중이었는데 지루하던 일상의 단비같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렇게 자소서 쓰기를 잠시 중단하고 시를 써 내려갔다. 시는 20분도 채 안되어 완성됐다. 그리고 가볍게 응모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내가 시를 응모했다는 사실도 면접준비와 대학 졸업 과제에 치여 잊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시부문에 당선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상금을 받을 계좌를 달라는 내용과 시상식 일정이 함께 적혀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상금을 받았을 때, 시부분을 빼고는 모두 국어국문학과에서 당선자가 나왔다며 '어떻게 화학관데 글 쓸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시상해 주시던 국문학과 교수님께 들었을 때 나는 다시 다짐했다. 구석에 숨어있을 작가라는 꿈을 다시 꺼내보기로. 무겁게 꿈을 다시 품었다.


그때부터였다. 글을 꾸준히 쓰기 시작한 게. 취직을 하고 나서도 퇴근 후에, 주말에 틈틈이 글을 썼다. 신춘문예에도 많이 응모했고, 여러 공모전에도 수시로 응모했다. 결과는 모두 낙선이었고 낙담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금세 다시 회복하고 또 글을 썼다. 글쓰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문장이 안 나올 때면 머리를 쥐어짜기도 하고, 앞 뒤 인과관계가 안 맞으면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치기도 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글 쓸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숨을 쉬어지게 한다. 직장일에 압박을 받고, 인간관계가 뜻대로 안 될 때, 우울과 자책에 빠진 나를 구원해 주는 게 글쓰기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로 스트레스가 가득찼을 때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글로 써 내려가는 순간, 머릿속을 떠다니던 희뿌연 부유덩이들이 명확하게 카테고리가 나뉘며 정리된다. 나는 주로 '내가 해결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일'로 카테고리를 나눈다. 해결 할 수 있는 일들은 해결 방안을 하나씩 써나가며 돌파구를 찾아가고, 해결 할 수 없는 일은 최대한 머릿속에서 지우려한다. 어차피 내가 걱정을 하나 안하나 그것은 나의 의지를 떠난 논외의 일이므로.

고민이 있을때도 글을 쓰고, 감상에 젖었을 때도 글을 쓰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때도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내가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이 채워질 때 마다 삶의 자취를 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갸야 할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아직 아름답게 가공되지는 않았지만 갈고닦으면 귀한 보석이 될 원석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다.'는 심사평으로 평생 글 쓸 용기를 심어주신 국문학과 교수님의 말에 힘입어, 먼지 티끌에 불과할지라도 계속해서 글쓰기에 도전해 나갈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 출품 시 : 노란 은행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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