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의 겨울은 유난히 쓸쓸하고 추웠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위해 일기를 다시금 꺼내 읽으면서 그 순간의 감정들과 분위기가 환기되어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6년의 만남 끝, 이별을 선택했던 우리는 3개월 만에 결국 다시 만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쇼핑을 하고, 노래방을 가고, 평범한 데이트를 이어나갔다.
분명 웃기도 했고, 농담을 하며 장난도 쳤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을까.
영화 <연애의 온도>를 본 분들이 계신가? <연애의 온도> 속 장기연애 후 재회한 커플의 상황과 감정 그대로를 옮겨왔으나, 우리는 더 시니컬했고 더 날카로웠던 것 같다.
이별까지 하게 만들었던 앙금은 서로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처음엔 숨겼다. 숨겼다, 가 맞는 걸까. 어린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머리만 숨긴 채 자기 시야가 가려지면 본인이 완벽히 숨은 걸로 착각한다고 한다. 우리도 그랬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의 속이 들통나는 건 금방이었다.
아물지 않았던 상처는 다시금 서로를 헤집어 놓았고, 독한 말로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너는 그대로다 진짜. 어떻게 변한 게 하나 없냐."
"네가 더 심하지. 진짜 질리도록 싫다."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끝내지, 왜 다시 연락했는데?"
"내가 먼저 연락했다고? 헤어지고 제일 처음 연락한 건 너야."
"그래. 내가 미쳤었지. 네가 뭐가 좋다고 다시 만나자고 했을까. 끝이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진짜 다시는 보지 말자."
그렇게 돌아섰고, 며칠 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이 끔찍한 싸움을 다시 한 달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정말 끝이 났다.
내 첫사랑은 서로의 밑바닥까지 본 채로, 완전한 이별로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지나서일까.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 속 그의 모습은 자상하고 개구쟁이 같이 천진난만한 모습들이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 어떠한 조건도 보지 않고 오로지 서로만을 바라보며 가장 사랑했던 순간들. 이제는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린 그지만, 정말 고마웠고 많이 미안했다.
'내 기억이 미화된 걸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시절, 서로의 곁을 내어준 사람이기에. 나에게 사랑과 이별을 처음 알려준 사람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완전한 이별을 한 후, 나는 온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미 3개월 간의 예행연습(?)을 거쳤던 탓에, 처음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심장을 짓누르는 통증이 여전히 산발적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의 힘을 믿었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다.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를 가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그가 떠오른다. 그와 함께 갔던 밥집, 함께 걸었던 길, 같이 만나던 친구, 서로만의 시그널을 담은 단어들, 나를 바라보던 눈빛, 스치며 지나가는 향기, 온 세상 곳곳에 그의 체취가 묻어있다.
봄이 오고 꽃이 폈다. 여름의 상록수가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다. 미련과 원망, 서글픔, 아직 남은 사랑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곳을 미안함과 고마움이 채우며 그는 서서히, 아주 조금씩 잊혀 간다.
나는 첫 이별을 딛으며 많이 성장했다. 그는 내게 단지 남자친구가 아닌 어려운 시간을 함께 이겨낸 동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고찰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를 통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무수한 장점과 단점을 가진 인간이었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고,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아빠를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에 소름 끼치게 경악했던 순간도 있다.
6년의 가르침은 내게 어떤 상흔을 남겼을까. 상처는 옅어져 아물었고 그곳에 새살이 돋아났다. 나는 자아성찰을 하며 세상을 좀 더 올곧게, 그리고 정직하게 한 발씩 디뎌나가는 법을 배웠다. 물론 삐끗거리며 실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일어서는 법을 배웠기에, 탁탁 신발을 털고 발목도 좌우로 돌리며 한 번 스트레칭해준 뒤, 다시금 길을 걷기까지 조금씩 더 수월해지고 있다.
이제는 그저 과거의 기억이 되어 버린 그를, 새삼 브런치 글을 연재하며 다시 떠올리게 되니 새롭고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