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코아 Oct 01. 2024

6년의 만남 끝, 이별 그 후

2019.09~11


시간은 참 더디고도 빠르게 갔다.

일부러 더 몸을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아직은 질식될 듯한 그리움과 후회, 미련에 사로잡혀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렸지만, 생각보다 금세 증상이 사그라들었다.


친구들과 동기들을 자주 만났다. 억지로 웃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야.'

이 말을 자주 떠올렸다.

플라시보인지 진짜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정말 억지로라도 웃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이별의 아픔이 좀 옅어졌다.


템플스테이도 다녀오고, 연극도 보러 가고, 통영 여행도 다녀오고, 독서 모임도 나갔다.

'극 I' 성향인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해지는 만큼 뇌는 쉬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가 라는 생각도 했다.


자주 웃었고, 그보다 많이 울었다.

회사에서는 종종 '최근에 좋은 일 있냐'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빙긋이 웃었다. 그러고 돌아서면 울었다. 웃을 땐 정말 괜찮았는데, 가면에는 한계가 있었을까.

숨이 가빠오는 순간도 있었다. 후회와 그리움 끝엔 분노가 일었다.

'우리는 결국 왜 헤어져야 했을까.'

조기처럼 엮인 질문들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돌이켜 보면 전조증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1년. 우리가 이별을 유예한 시간은 1년이었다.

서로를 많이 사랑한 만큼 많이 서운했고, 많이 기대한 만큼 많이 실망했다.

기억은 미화된다. 내가 모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짜증이 치밀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그 후엔 바로 그래, 내가 문제였지.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킬 앤 하이드가 되었다.


하루에도 감정은 수백 번씩 엎치락뒤치락했다. 상담은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잘 갔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요? 코코아님?"

"조울증환자가 된 것 같아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어요."

"그럴 때마다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드나요?"

"아무도 절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요. 이 세상에 절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느낄까요? 코코아님 주변엔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동기도 있는데요."

"글쎄요. 그냥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구멍."


누구나 겪는 흔한 이별 증상이었겠지만, 내게는 첫 이별이었던 만큼 어떤 식으로 몰아치는 감정들을 다스려야 할 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주 아프기도 했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갔다. 집에 혼자 있으면 끝없는 생각의 고리 끝에 슬픔과 우울에 잠식되는 게 무서웠다.


시간은 참 더디고도 빠르게 갔다.

가슴에 뚫린 구멍은 조금씩 채워졌다. 서서히 하지만 분명 어제보다 오늘의 크기가 작아졌다.

여전히 많이 울었지만 강도와 시간이 줄었다.


첫 이별은 찢어지게 아팠고 지독하게 끔찍했으며 서럽게 그리웠다.


그리고 우린 다시 만났다.


"오랜만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