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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Sep 24. 2024

6년의 만남 끝, 이별하다

2019.07~08


글을 썼다. 그 당시 내게 글쓰기는 자아실현, 미래를 위한 돈벌이의 수단 같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지만 그 보다 앞서 삶의 의지를 놓지 않기 위한 끈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22살부터 28살까지를 함께한 사람이었다. 내게도 그에게도 서로는 첫사랑이었다. 수많은 기억 속에 서로가 존재했고 많은 고난과 아픔을 함께 이겨냈다. 그 종착역이 이별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싫었다. 눈물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불쑥 찾아들었고, 그때마다 가슴을 짓누르는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세상이 무너진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는 문장을 몸소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었고 살아갈 방향성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일기를 보니, 나는 꽤 잘 버텨낸 듯하다. 티를 내지 않고 - 자주 울었으니 퉁퉁 부은 눈이 티가 나긴 했겠지만 - 회사생활을 성실히 했고, 동기들과의 저녁식사에도 주기적으로 참석했다. 영어스터디도 빠지지 않았고, 상담도 꾸준히 다녔다.


"선생님,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살 수가 없어요."

"코코아님은 그동안 많은 고난을 이겨냈잖아요. 지금 힘든 건 당연해요. 그 감정을 받아들이다 보면 차츰 괜찮아질 거예요."


시간. 그래. 내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잊기 위해서. 이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내게는 피난처가 필요했다. 동화도 썼고, 시도 썼고, 소설도 썼고, 수필도 썼다. 많이 응모했고 모두 낙선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 글이 없다면 희망이 없었으니까. 내가 살기 위해 썼다.


그 당시의 글들을 읽어보면 피 튀기는 살육현장이 따로 없다. 글에서 광기와 독기가 느껴진다. 그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참 처절하게 몸부림쳤구나 싶어 많이 안쓰럽다. 독립이 익숙하지 않았다. 행복할때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어렵고 아픈 순간들이면 전화를 걸고 도움을 요청할 상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때마다 다시금 마음이 저려오고 응어리로 꽉 막힌 쓰라린 속을 달래야 했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다. 시간은 내편이었다. 차츰, 아주 천천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는 홀로 서가고 있었다






5년이 흐른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쁜 꽃길만 걸으면서 상쾌한 피톤치드만 마시는 나날들. 그런 인생을 살면 좋겠지. 하지만 그런 삶은 없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어도 삶의 시련과 고난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 강도를 따져본다면 다를 순 있겠지. 하지만 원래 태어나는 순간 불공평의 저울에 놓이는 걸 우리 모두는 알지 않나.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보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 맞는 고비와 시험을 착실히 짊어지고 나아가고 있을 거다.


저 당시의 고난은 나를 또 다른 삶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게 성장시켰다. 홀로서기. 그건 내게 있어 꼭 이뤄내야만 할 과제였다. 내 짐을 떠넘길 사람이 있다는 것, 도피처가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개인의 감정을 전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은 내게 해악이었다. 나는 스스로 짐을 짊어질 수 있어야 했고, 도피가 아닌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를 가져야 했으며, 본인의 감정은 내 선에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 그것이 좌절이든, 고난이든, 기쁨이든, 행복이든 - 내 몸을 이루는 구성성분이 되어 미래를 열어줄 자양분이 된다고 믿는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시험에 놓이고, 사소한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매일 선택을 해가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삶의 종말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묵묵히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것, 나는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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