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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28. 2022

날씨가 참 좋아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04

    요즘 날씨가 참 좋습니다. 물론 밤낮으로는 서늘하고 낮에는 해가 제법 뜨겁지만, 그리고 저는 알레르기로 고통받고 있지만 말이에요. 밖에 나가거나 창문을 열었을 때 숨 막히는 더위나, 폐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공기도, 신경 써야 하는 황사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봄을 가장 좋아했는데 요즘은 가을도 제법 좋아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맛있는 과일이 많으니까요.


 따뜻한 햇살이 슬그머니 창 위로 내리쬘 때면 집의 고양이는 늘어져라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럼 그 옆에서 저는 뜨개질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 의자 뒤편에는 강아지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정신없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간간히 출국이나 다른 이런저런 서류 처리로 밖에 나갈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집에서 머무르며 동생이 출국 전에 만들어 달라는 스웨터를 뜨기 위해 정신없이 손을 움직입니다. 처음으로 취업을 했을 때 일 시작 전의 한 달은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친구들하고 술도 한잔해야 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도 만나야 했고요. 그런데 출국을 앞둔 지금은 약간 다르게 바쁩니다. 요즘 푹 빠져있는 것들 덕분에요.


 브런치에 글을 쓸 계기를 만들어준 관극이 그렇습니다. 특히나 제가 가장 애정 하는 배우들이 요즘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고, 저에게는 그 무대들을 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거의 '광기'라고 칭해질 만큼 자주 서울을 다니고 있어요. 대학로까지는 편도로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시간이 힘든지 모르고 다니고는 합니다. 가기 전에 괜스레 욕심을 부리느라 주말마다 서울살이가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신없이 하나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덕질이라고 하는 것이 참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들고 활기 있게 만들어주더군요. 어느새 공연은 저에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를 바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뜨개질입니다. 도안을 봐가며 한코 두코를 틀리지 않기 위해 뜨다 보면 어느새인가 저는 정신없이, 무아지경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가능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에 다닐 때도 늘 가방에는 뜨개질 거리를 들고 다니니까요! 하염없이 앉아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다 보면 참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저의 손이 참 가치 있는 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자연스레 자리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일상이 참 다정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아직 짐 정리도, 방 정리도 그 무엇도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고, 실감도 나지 않습니다. 8월 말 임시로 하던 일이 끝나고 11월 출국을 앞두고 있는 이 2달이 참 꿈같은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실감이 안나는 일뿐인 가을을 보내고 있는데 햇살만큼은 참 따뜻합니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가끔은 선득하게 느껴질지라도 선선하게 마음을 틔워주는 바람과 꼭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은 따뜻한 햇살이 많은 기억에 남을 가을입니다. 햇빛 아래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서 이 순간들을 보내보고 싶은 마음도 제법 드는 가을입니다.


 오늘 잠깐 서류 정리로 밖에를 나갈 일이 좀 있었습니다. 차 안이 뜨근한 게 제가 좋아하는 온도라 오늘만큼은 조금 말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이야기가 조금은 다정하지 못한 편이었으니까요. 저의 안녕과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기에 또 한 달 뒤면 그리워하고 있을 이 따근한 날씨를 위해 슬쩍 문장을 건네봅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아요라고


22.09.28 포근한 고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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