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인 Feb 15. 2021

삶을 깨닫다, 아시안 이민자 예술가 린디 리의 이야기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깊은 깨달음의 메세지들

필자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시드니의 미술관 중의 하나가 바로 호주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Australia)이다. 시드니의 서큘러키(Circular Quay)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진 속의 보이는 다리는 그 유명한 하버 브릿지이다. MCA 미술관은 오페라 하우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주에 린디 리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 다녀왔다.



공사 중인 MCA의 내부에서 바라본 서큘러키
현대 미술이 중요한 이유는 현대 미술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MCA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술가를 우선으로 하는 현대 미술관이 바로 MCA 미술관이다. MCA 미술관이 세워진 장소는 호주에서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바로 이 장소에서 호주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MCA 미술관은 예술가가 표현하는 방식을 존중해주고, 호주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함께 해주는 곳이기에 호주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린디 리(Lindy Lee)는 호주에서 4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예술가이다. MCA 미술관 3층에 린디 리의 단독으로 작품들이 전시가 되었으며, 필자는 이 전시회를 보고 중국인들은 린디 리를 무조건적으로 자랑스러워할 필요가 있다며 부러워했다. 이 전시회의 제목은 "이슬방울 속의 달(Moon in a Dew Drop)"이다. 린디 리의 전시는 필자의 생각 이상으로 인상 깊었으며, 필자는 전시회를 돌다가 중간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검은 머리의 이민자 여성 예술가로서 그녀의 작품들에 심하게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본인의 정체성을 저렇게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감탄했다.


린디 리라는 예술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던 건 작년에 논문을 쓰면서였다. 그중 예시로 린디 리에 관해서 글을 짧게 썼었다. 필자가 브런치에 맨 처음에 썼던 호주의 가장 큰 미술 공모전인 아치볼드에 대해 쓴 글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치볼드 공모전의 2019년 우승작의 그림 속 모델이 바로 린디 리이다.

Artist: Tony Costa, Lindy Lee, oil on canvas, 182.5 x 152 cm

https://brunch.co.kr/@z5217939/1



린디 리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태어난 중국계 호주 현대 미술가이다. 그녀는 호주로 이민 온 중국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의 미술은 호주 문화와 중국의 문화를 혼합하고, 그녀의 선불교 신앙을 탐구한다.


필자의 작년 논문 제목은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였는데,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 문화와 20대를 통으로 보낸 호주 문화를 합치면서 필자가 경험한 정체성의 혼란들과 문화적 혼종성, 그리고 작품들에 대해서 쓴 논문이었다. 필자의 모국어는 한국어인데, 필자는 어느새 한국과 멀어진 삶을 호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호주에서 검은 머리의 아시안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필자의 피해 의식 때문이라며,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그들이 호주 사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에 안 겪어서 모르고 하는 말이다. (백 퍼센트. 호주에서 항상 한국 사람들만 만나고, 작은 우물 안에 사는데 무슨 인종차별을 겪겠는가.) 세상의 인식이 바뀌면서 대놓고 그러는 건 점점 수그러들고는 있지만 슬프게도,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필자가 작년 초에 논문 주제를 정할 때, 아시안 여성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린디 리의 이야기들은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었다. 린디 리 또한 이런 인종차별 경험과 중국을 방문할 때에 중국인이지만 중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느꼈던 소외감을 그녀의 작업에서 문화를 융합하는데 관심을 갖게 했다. 그녀는 완벽한 중국인도, 완벽한 호주인도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저는 학교에서 유일한 중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성장할 때에 호주인도 중국인도 아닌 소속감이 없다는 것은 매우 큰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금발 머리의 소녀가 되길 갈망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린디 리는 자신의 중국인 정체성을 그녀의 작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류와 자연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는 철학인 도교와 선불교를 통해 그녀의 중국 조상들을 작품 속에서 탐구한다. 린디 리의 작품은 정체성, 문화적 진정성, 역사 및 영성(린디 리는 선불교를 통해 명상을 하기 때문에 그걸 작품에서도 나타낸다.)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저는 정말 철저히 서양인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중국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가진 문화와 개념이 중국이 아니라 서양이고, 제가 속한 곳은 서양이라고 선언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잠깐만 린디!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선언하고는 하는데, 소속이라는 건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저는 무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중국의 철학과 선불교, 도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그렇게 억압받고, 고통스러웠던 부분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작품에서 중국에서 와서 호주에서 이민자로서 살아온 자신들의 가족사진을 사용했다. 중국계 호주 예술가로서 린디 리의 작업은 다문화주의 나라인 호주에서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 즉 이민자를 뜻한다.) 경험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탄생과 죽음(Birth and Death)이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했던 린디의 조카 벤은 20세에 암 선고를 받았는데, 그녀는 조카에 대한 격려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벤이 아기였을 때의 사진을 포함해서 가족의 다양한 삶의 단계에서의 사진들을 이렇게 아코디언 책 설치물로 만들었다. 붉은빛(필자의 해석으로는 혈연, 피를 뜻해서 린디가 붉은색을 작품에 쓴 게 아닌가 싶다.)의 아코디언 책의 물결이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액체인 중국 잉크인 '먹'을 땅에 떨어트렸을 때에 먹이 땅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고 영감 받았다고 린디 리는 말했다. 이런 기법은 선불교도들이 수행했던 고대 중국의 '수묵화'를 참고한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하나의 시각적 표현에 관점을 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명상에서의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에 의미가 나온다. 린디 리 자체가 자아의 다양성을 조사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탐구하고 찾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청동으로 만든 조각들을 엮어서 만든 달이다.


Buddhas and Matriarchs (2020), Strange Condensations (2020)

달은 린디 리에게 있어서 무한대와 변하기 쉬운 성질을 의미한다. 달의 주기는 우주에서 무한하지만 이슬방울은 아침 해와 함께 증발해버린다. 린디 리는 이슬방울 속의 달의 이미지에서 시적 느낌을 찾았다. 이 전시회는 자아와 끝없이 자아를 찾아가는 프로젝트에 관한 성장기이다. 이 작품들은 이 순간을 만들기 위해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상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수용을 배우는 과정이다.



린디 리는 작업장에서 녹인 청동을 담고 있는 15kg의 국자를 바닥에 부어서 굳은 모양을 그대로 작품에 반영시켰다. 이것은 린디 리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풀어지는 선불교의 쇄신 행위(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는 행위)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모양 또한 수묵화에서 영감 받았다.


그녀의 작품은 우주의 마음에 의한 '우연성'에 있다고 한다. 즉, 그녀 자신이 의도한 모양들의 작품들이 아닌 자연스럽게 우주의 논리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Open as the Sky (2020)

이것 또한 우연성에서 나온 그녀의 청동 조각품이다.



Under the Shadowless Tree (2020)

파란색은 영혼의 색상이라고 한다.



Marking Time

금속판이나 종이 혹은 사진에 동그랗게 구멍을 뚫는 반복을 린디 리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순간을 만나기 위한 영원으로 향하는 행위라고 한다. 선불교에서는 영원이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이 순간뿐이라고 한다.



Conflagrations From the End of Time (2011)

그녀가 작업하는 모든 재료들에는 이미 풍부한 연관성들이 있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서 관객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린디 리의 질문은 정체성의 혼란에서 시작했지만 그녀는 세상의 모든 현상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에 대한 것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 자신의 본성은 단지 그녀의 정체성이 아니다. 정체성은 그저 작은 파편일 뿐이다.


두루마리 종이 같은 이 작품들은 납땜인두로 구멍을 내서 하늘의 별자리들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빛과 우주 배경에 펼쳐져 있는 별들과 닮았으며, 물로 만든 얼룩으로 인해 독특한 효과를 나타낸다. 시간은 인간의 삶의 순간적인 깜빡임에서 우주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린디 리는 이것을 중심에 두고 작품에 표현했다



Moonlight Deities

그녀는 이 작품을 만드는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마치 작품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과 관객의 그림자들이 서로 엉켜져서 섞여 있는데, 마치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 작품은 마치 그물 같다.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은 이러한 직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린디 리는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직물은 우주 그 자체이며, 그녀의 우주가 의미하는 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깊이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물처럼 서로 엉켜있으며 우리 자신을 구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Secret World of a Starlight Ember (2020)

이 작품은 MCA 미술관 밖, 바로 앞에 전시된 린디 리의 작품이다. 낮에는 이렇게 필자가 찍은 사진처럼 거울처럼 빛과 풍경들이 반사되고, 밤에는 작품의 작은 구멍들을 통해 마치 별빛들이 춤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구멍들은 대략 이 작품에 백만 개정도 되는데, 이 작품을 밤에 볼 때면 마치 무수한 별들이 있는 밤하늘을 올려보는 것 같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죽어가는 별이 수천 년 후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빛을 보낸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Photo: Anna Kucera

린디 리의 작품들은 재료가 가진 아름다움을 사용해서 관객들이 작품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자신의 존재와 인류를 축하하고 있다는 것이 린디 리의 메시지라고 한다.


필자는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 호주라는 국가가 어떻게 이민자들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문화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재 호주는 다민족 국가가 맞지만 린디 리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그 시기의 호주는 분명 백인우월주의 사회였다.)


그녀의 정체성은 그녀가 호주에서 성장할 때에 마음 아픈 일들을 일으키고는 했지만 그녀는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이러한 작품들을 창조했다. 이제 그녀는 여러 관점에서 살아왔던 이 경험들이 그녀의 삶에서 '놀라운 선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끝없이 설명할 수 있지만 결코 요약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들은 항상 설명을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를 만들고 창조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여 개 이상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것들은 우리가 쉽게 느끼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예술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는 이런 것들을 생명과 물질성에 가져와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이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회를 본 후, 개인적으로 필자는 앞으로 필자의 개인 작업들을 통해서 한국 문화와 호주 문화가 뒤엉킨 필자만의 유니크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로 했다. 린디 리는 필자에게 아주 훌륭한 예시이며, 필자는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아시아계 호주 여성 예술가로서의 희망을 찾았다.


필자 또한 호주에서 한국인의 뿌리와 문화를 가진 여성 아티스트로서 자랑스러워질 날을 기대해본다.






이전 10화 어린시절의 마음을 잡고있는 예술가, 린다 드레이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