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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Mar 09. 2024

[출산-고난편]아기 기저귀 갈고 아내 기저귀도 갈고

남편 되기 힘들어

대학병원에 도착하여 당장의 고비를 넘기자 남편의 간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제일 힘든 것은 화장실을 가는 것이었다.

화장실 가는데 챙겨야 할 준비물들 - 양손에 주렁주렁 수액 바늘에다가 조절기까지 - 을 챙겨야 했다.


게다가 기력이 없어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방 안에 있는 화장실인데도 마치 남쪽에서 산들을 넘어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정도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을 가려면 마치 멀고 먼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수많은 각오와 의지를 다진 뒤 여정을 시작한다.


그렇게 어기적 어기적 화장실에 도착하면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은 회음부 통증을 참고 간신히 소변을 본다.


그러고 나서 다시 기저귀를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딱 두 걸음 정도 내딛으면) 남편이 새 기저귀를 가지고 와서 갈아준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줄 때

나는 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응시했고,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임신했을 때 만삭의 몸으로 임신해도 나는 괜찮다며, 건강하다고 씩씩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그 자신감은 어디 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작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무력(無力)했다.

기저귀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고, 출혈로 인하여 눈앞은 아찔하고 잠깐 서 있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다행히 날이 지날수록 내 몸은 많이 회복되었다.

자연분만은 회복력이 더 빠르다고 하던데 정말로 나는 두 번 자고 일어나니 이제 더 이상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2박 3일 만에 아기와 산후조리원에서 재회할 수 있었고 나는 아기를 돌볼 체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래도 나를 도와주겠다고, 이번에는 아기 기저귀를 열심히 갈았다.


아내 기저귀 갈기를 졸업하자(양이 줄어 생리대로 넘어갔다) 아기 기저귀 갈기 미션이 시작되었다.



조리원 모자 동실 시간에

처음 맡아본 신생아의 똥은 향기로웠다.

(물론 이제는 향기롭지 않다.)

시큼하면서도, 내 자식 똥이라 그런지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하지만 육아 왕초보인 우리 부부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등에 땀을 뻘뻘 흘렸다.


특히 초반에는 똥을 싸서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또 대변을 보거나, 거기에 더해 또 소변을 볼 때는 정말 온몸의 땀구멍에 식은땀이 몽골몽골 맺혔다.


게다가 수유하는데 아기가 뿌우우웅(누가 들어도 똥 싸는 소리를 내면) 할 때는 마음이 다급해진다.

육아 왕초보 부부의 머릿속에는

"아기는 먹자마자 눕히면 안 된다. 트림을 시켜줘야 한다."라는 것과

"똥을 많이 쌌을 텐데 기저귀를 갈려면 눕혀야 한다."라는 두 가지 입력이 충돌한다.

결국 일단 먹이고 기저귀를 나중에 갈도록 하고 아기가 다 먹을 때까지 초조하고 (아기 대신 우리가) 찝찝하게 기다린다.



그러나 고작

기저귀 가지고 당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육아 선배들의 말처럼 조리원 있을 때가 천국이었다.



진짜 육아는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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